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화 Aug 06. 2024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없더라

5. 솔직해져도 괜찮아요(5)

조금 떨어진 카운터 뒤편에서 차마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바싹 마른 드리퍼를 정리해 넣던 이로미가 나지막이 한숨을 쉬며 읊조렸다.


“아, 어떡해. 울면 어쩌지.”


김은지와 나예가 앉아있던 테이블을 연신 흘끔거리던 이로미에게 냉랭한 목소리가 날아와 꽂혔다.


“한가하냐, 손님 테이블에 오지랖 부릴 여유도 있고?”

“절대 아니죠. 근데 아는 분이라 그런가 신경이 쓰여서요.”

“……”


날아왔어도 진작에 날아왔어야 할 타박이 도착하지 않아 눈을 희끔하게 뜬 이로미가 진태하를 보았다. 그제야 비로소 퉁명스러운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왜, 또 잔소리 안 들으니까 서운해?”

“서얼마요.”

“액센트까지 넣어가며 대답할 건 또 뭐냐?”


못마땅한 투로 받아치는 진태하를 물끄러미 보던 이로미가 혀끝을 살짝 빼물었다 쏙 집어넣었다.


“사장님은 언제부터 내 일은 이거다 싶은 확신이 있으셨어요?”

“갑자기?”

“그냥요. 저는 그냥 이거다 싶으면 밀어붙이잖아요. 근데 그 확신이 어려운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많은 것 같은 게 아니고 대부분 다 없어. 니가 완전 특이한 거야.”

“그런가…”


드물게 생각에 잠긴 얼굴로 이로미가 입을 다물었다. 서버에 올린 드리퍼에 원두를 담던 진태하가 심상하게 말했다.


“세상에 시작점부터 확신과 함께 달리는 사람이 어딨겠냐.”

“흠…”

“내가 여행을 유난히 많이 다녔잖냐?”

“그러셨댔죠.”

“응. 정말 별사람 다 만났지. 나이 오십이 넘어서 인생이 허망해서 사직서 던지고 오로라 한 번만 보면 좋겠다던 사업가 아저씨도 봤고, 공부하는 게 너무 싫어서 무턱대고 휴학했다가 스페인에서 아직도 짓고 있는 건축물 보고 크게 감명받고 전공 아예 틀어버린 애도 봤지. 것뿐인 줄 아냐,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갑자기 현지 아줌마들 하는 무슨 공예 배우고 싶다면서 몇 달을 들러붙어 사는 사람도 봤다.”

“근데요?”

“무어…나도 잘은 모른다만, 크게 방황하고 헛살아 보는 것도 나쁘잖은 것 같다 싶더라고. 결국은 돌고 돌아 다 자양분이 되는 것 같고.”


이로미가 픽 웃으며 드립 주전자를 내밀며 가볍게 말대꾸했다.


“에이, 사장님. 그래도 한창 인생 혹한기에 내몰린 사람한테 그런 말 하면 화만 돋울걸요.”

“그야 그렇지. 그리고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더라. 그건 누가 말해서 아, 그렇구나 하는 게 아니어서.”

“결국 몸으로 깨쳐야 하는 얘기다 뭐 그런 걸까요?”


진태하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흘긋 오른쪽 어깨너머로 옆을 살펴본 이로미는 답이 없는 이유를 금세 납득하고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느다란 물줄기가 천천히 휘돌며 드리퍼의 선을 타고 내려가 원두를 부풀리고 있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가늘고 일정하게 떨어지는 모양새가 평소 조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진태하의 모습과 몹시도 닮아있었다.      


***      


“으아아아…”


앓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동시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무참하게 허물어진 흙더미를 보며 낑낑대는 이로미를 최현욱이 위로했다.


“원래 처음엔 다 그래요. 한바탕 전쟁이지 뭐.”

“아니…이거 되게 쉽게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잠깐 방심하면 와르르야…”

“물레 처음 할 땐 원래 다들 어딘가 심오한 추상 작품 만들고 그래요.”


최현욱은 성심껏 위로한답시고 한 말이었으나 별로 위로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껏 시무룩해진 이로미가 불퉁스럽게 투덜댔다.


“쌤, 위로가 아닌 거 아시죠?”

“그럴 리가요. 한 번 더 해보면 잘할 거예요.”


첫 도전의 무참한 실패에 상심한 이로미 대신 김은지가 다음 순번으로 나섰다. 일단 해보면서 익히겠다는 이로미와는 사뭇 다르게 입속으로 계속 뭔가를 되뇌는 것이 아마도 아까 최현욱이 기억하라며 일러준 몇 가지 팁인 듯했다. 물레 앞에 앉은 김은지가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최현욱이 바로 그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오른손바닥에 힘을 좀 주고, 버텨야 돼요. 너무 단단하다 싶으면 물을 좀 축여줘 가면서 가운데로 모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김은지를 뒤에서 보고 있던 수강생들의 어깨가 덩달아 잔뜩 힘이 들어갔다. 다들 초심자인 것은 매한가지니 긴장하는 것이 당연했다. 팽팽해진 분위기를 감지한 최현욱이 부러 느슨하게 힘 빼는 소리를 했다.


“몇 번은 망쳐봐야 감을 잡죠. 첫판부터 성공하려고 너무 힘주고 있으면 더 안 돼요.”

“진우 씨는 첫판부터 잘할 것 같은데요. 손 야물잖아요.”


자리에 없는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렸던 김은지가 순식간에 가라앉은 분위기에 놀라 말을 더듬었다.


“저기…진우 씨 뭐 안 좋은 일 있어서 못 온 거예요?”

“아, 그게요.”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섣부르게 입에 담아서는 안 될 타인의 내밀한 사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함께 특정한 시간대를 공유하는 사람끼리는 알아도 될 만한 사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미묘한 화제일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예민한 예절의 감수성에 의해 판단되고 쉬이 평가받는 시대이다 보니 자리에 있던 모두가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 머뭇머뭇 서로의 기색만 살피는 시선만 빠르게 오가는 사이에 윤소은이 먼저 말을 꺼냈다.


“할머니가 편찮으신 것 같았어요. 병원에서 우연히 봤는데 많이 놀란 것 같더라고요.”          

이전 11화 누군가는 필요로 하는 재능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