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선 계단을 오르며(7)
들뜬 낯으로 공방에 들어서던 김은지가 인사를 하려다 말고 멈칫했다. 지각은 아니어도 아슬아슬한 시각에 맞추어 도착하던 이진우가 먼저 와서 부지런히 자리를 정리하다 말고 김은지를 발견하고 고개를 꾸벅 숙이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 탓이었다.
“일찍 왔네요, 진우 씨?”
“선생님이 알아서 다 해놓으셔서 몰랐는데 의외로 공방에 할 일이 많더라고요.”
아무렇지도 않게 씩 웃으며 하는 대답을 듣다 말고 김은지가 고개를 휙 돌려 이진우를 쳐다보았다.
“공방에 할 일?”
“네. 그게, 저 여기서 일하기로 했거든요.”
“정말요?”
김은지는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 묻고 싶은 표정이 역력했으나 곧 수업이 시작할 시간이라 주섬주섬 제 작업물을 가져다 놓고 자리를 정돈했다. 그 사이에 윤소은과 이로미가 차례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김은지가 슬쩍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으나 이진우가 일찌감치 도착해서 이런저런 잡일을 거들고 있는 것에 두 사람은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싶었다. 큰 변화는 아니라 해도 자신이 어쩐지 조금 소외된 듯한 기분에 움츠러든 김은지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눌러두었다.
“다들 일찍 오셨네요, 여러분. 진우도 수고했고.”
김은지가 다시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현욱이 수강생들에게 반말을 하는 법이 없고, 호칭 또한 나이에 관계없이 항상 깍듯하게 ~ 수강생님, 혹은 ~씨, 하는 식으로 불러왔기 때문이었다.
이진우가 나이가 어리기는 해도 항상 진우 씨, 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급작스러운 호칭의 변화를 감지한 김은지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눈치챈 최현욱이 뒷덜미를 쓱쓱 문지르며 객쩍게 말했다.
“별건 아니고요, 점점 공방 일이 많아져서 일손이 필요해서요. 진우가 함께 일하기로 했어요. 같이 일하려면 아무래도 제가 말을 편하게 하는 게 서로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러셨구나… 그럼 진우 씨가 선생님 제자가 되나요?”
“글쎄요, 하는 거 봐서.”
말끝에 최현욱이 슬그머니 웃으며 이진우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한주 전만 해도 최현욱이 하던 자잘한 일들을 도맡을 생각인지 이진우가 빠르게 유약을 꺼내와 테이블 위에 쭉 늘어놓았다.
“어머, 전에 없던 색깔들이 있어요.”
“시험 삼아 써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이로미가 재빨리 오렌지색 유약을 골라 제 앞에 놓았다. 이로미를 지켜보고 있던 김은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굽고 나면 카페 간판 색이랑 비슷할 것 같아요. 혹시…?”
“진짜요? 노렸는데, 다행이다!”
너무 해맑은 반응에 도리어 당황한 김은지가 되물었다.
“정말로 카페에 갖다 드릴 거예요? ”
“엄밀히 말하면 샘플 제공 형태가 되겠죠?”
“네?”
씨익 웃은 이로미가 한 손에 제 앞에 있던 초벌구이된 접시를 들어 보이며 자랑스레 말했다.
“뭐, 처음부터 그럴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닌데요. 만들다 보니 카페 시그니처 플레이트 같은 거 만들어서 쓰면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우리 사장님이 눈이 인공위성 꼬리에 붙어있긴 하지만 맘에만 들면 지갑 훌렁 여는 타입이거든요. 사장님을 일등 고객 삼으면, 그것도 재미있고 엄청 보람 있을 것 같아서요.”
헤실헤실거리며 하는 말에 말문이 막힌 김은지가 고개를 힘겹게 주억거렸다. 표정은 영 동의하기 어렵다는 듯해 보였어도.
“참, 마지막 수업 오실 때는 다들 버려도 되는 헌 옷 같은 걸 꼭 가져오셨으면 좋겠어요.”
“앞치마요?”
“아뇨, 앞치마는 안 돼요. 입고 계신 걸 완전히 다 덮을 수 있는 거면 좋겠는데. 단추나 지퍼 올릴 수 있는 그런 거요.”
“뭘 시키시려고요?”
웬만해선 최현욱의 수업진행에 크게 의문을 표하는 법이 없었던 윤소은도 호기심 반 놀라움 반을 섞은 표정을 지었다.
“설마, 흙을 바닥에 깔아놓고 구르기라도 시키시려고.”
“구르기는 아닌데… 조금 비슷할 지도요?”
말을 아끼는 최현욱의 목소리에 기대감이 섞였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발견한 영상 하나가 그의 시선을 붙잡았더랬다.
외국의 도예 강습을 부분 촬영해서 공유한 장면처럼 보였던 그 영상 속에서, 강사로 보이는 여성의 리드 아래 수강생들이 차례로 물레 앞에 서서 성형 중이던 기물을 한 사람씩 다가서서 와락 끌어안는 영상이었다.
대화도 없고 영상 밑에 붙은 캡션도 없었건만 최현욱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기물을 끌어안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포옹이 남긴 흔적을 보면서 누군가는 울었고 또 누군가는 웃었다. 입고 있던 옷들은 엉망진창이 되었어도 표정들은 오래 묵힌 무엇인가를 씻어낸 것처럼 하나같이 후련하고 맑게 개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대체 저것을 무엇에다 써먹을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기기묘묘한 형태를 가진, 굳이 말하자면 오브제라고밖에 부를 수 없을 것 같은 완성품을 바라볼 사람들이 어떤 얼굴을 할지, 최현욱은 훤히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같은 영상을 세 번 정도 반복해서 돌려보던 최현욱은 그가 마지막 수업에서 꼭 함께 해야 할 작업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뒤늦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