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원, 글자들의 수프
대체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타인들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듣기 좋아한다. 다만 그것이 그 책을 읽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방식의 말하기와 글쓰기일 때에 한정해서,라는 단서를 붙인다. 그저 책을 요약한 정보라면 이미 인터넷 서점에도 책 소개의 달인들인 MD들이 제공하는 훌륭한 정보가 넘쳐난다. 다소 편파적이고 개인적이며 사적인 취향이 두드러질수록 재미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도 또 다른 조건이 붙는데, 서평이 아니라는 전제하에서만 그렇다. 사실 나도 서평과 리뷰와 독후감을 혼용해서 쓰는 경우가 많긴 한데 엄연히 말해 서평과 독후감은 다른 장르의 글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책을 참고하면 좋다.
여하간.
아닌 글은 아니라고 따끔하게 지적하는 것이 출판시장의 건전성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렇게 말할 용기가 있냐고 묻는다면 무한 말줄임표 뒤에 숨고 싶은 것이 비겁한 진심이다. 일단, 한 권의 단행본이라는 완결성 있는 형태의 저작물을 낸다는 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 진심으로 이해하는 입장에서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독자의 적지 않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행위임을 전제할 때 어떤 책들은 간혹 악덕을 저지르기도 함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 경험이 없지도 않고. 그러니까 이쪽저쪽의 심경이랄까, 그런 것을 다 이해하고 공감하는 입장에서 내가 취하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비겁쟁이의 입장이란 이런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최소한 내가 좋았던 책들에 대해서 쓰자. 그럼 됐지 뭐. 실로 간단하고 자기 합리화 쩌는 결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이런 이야기도 본 적 있다. 리뷰를 쓰려면 책 이야기나 하라고, 사적인 얘기는 왜 끼워 넣어서 본질을 흐리느냐(다행히 내가 받은 댓은 아니었다)는 댓글이었는데 그걸 보자마자 내가 했던 생각은 이거였다.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을 쓴 글에, 읽은 사람 본인(의 솔직한 감상과 생각과 책에 관련된 직간접적 경험 등등)이 드러나지 않으면 그게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소개와 도대체 뭐가 다른가... 안 그렇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저자가 드러나는 글들, 그 저자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글들을 애정한다. 다른 곳에서 읽을 수 없는 내용이 담뿍 담긴 글은 늘 시선을 당긴다.
그런 책이 여기도 한 권 있다.
(물론 엄청나게 허술하긴 하지만) 기억을 뒤져봐도 요 근래 들어 이만치 즐겁게 읽은 독서일기가 없었던 것 같다. 저자는 프랑스 요리를 하는 셰프이고, 열렬한 독서가이다. 저자의 약력과 독서일기라는 책의 주요 컨셉을 조합해 보면 몇 가지의 '아마도 이러한 내용이리라 짐작되는' 키워드 몇 가지의 조합이 떠오르는데 그런 지레짐작이 무안하게도 결코 두껍지 않은 이 책은 그 얄팍한 기대를 모조리 깨부쉈다.
그건 아마도 직간접적으로 쌓아 올린 그의 내공이 결코 짐작가능한 깊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고.
우리는 사람이건 책이건 처음 만나는 누군가를 앞에 두고선 제가끔의 이런저런 예측을 하게 마련이고 그 기대가 산산이 깨어져 나갔을 때 신선한 충격과 더불어 즐거움을 느낀다. 예측 불가능한 상식파괴의 이벤트나 인물은 늘 사절하고 싶지만, 일반교양과 윤리의 테두리 안에서 클리셰적 예측을 부숴주는 상대를 만나면 즐겁지 않을 수 없는 거 아닌가.
불판에 고기를 올려 굽다 사이좋게 나눠 먹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다 느닷없이 함께 둘러앉아 같은 온도의 밥을 나눠 먹는 세상을 꿈꿨다던 벽초 홍명희 이야기로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기도 하고, 매해 식당을 찾던 노년의 부부 중 남편이 홀로 남게 될 아내가 혹 찾아오거들랑 대접을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남긴 부탁을 바라보다 문득 제 입었던 옷을 입혀 묻어달라 신신당부했다던 「소나기」의 어린 소녀를 떠올린다.
쉽고 직관적인 수사로 심금을 울리는 시를 쓴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인용하며 포도 이외에 어떤 것도 첨가하지 않으나 시처럼 태어나는 와인을 이야기한다. 그 어떤 이야기에서도 책과 음식 이야기 사이의 거친 이음매가 보이지 않아서 진심으로 감탄했다. 더불어 이런 사람이 만드는 음식이란 대체 어떤 맛일지가 몹시 궁금해졌다.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닌 글조차 이렇게 능란하게 단어와 단어의 간격을 조였다 풀고 소재를 적재적소에 풀 줄 아는 사람이, 그의 주전공인 요리에서는 도대체 어떤 결과물을 만드는지 궁금하지 않은 게 이상하지 않겠는가.
주말의 식사는 형용사와 부사 없이 명사와 동사로만 이루어진 문장과도 같다. 화려하지 않고 간결하다. -57쪽
니스 기차역 앞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은 지중해풍의 은은한 겨자색이다. 노란색 광장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문득 로맹 가리의 소설 속 한 장면과 함께 3년 전 그것을 모티프로 만들었던 '글자들의 수프'라는 이름의 메뉴가 떠오른다. 단호박과 오렌지를 넣어 오랜 시간 끓인 '글자들의 수프'는 소설가 로맹 가리를 오마주한 메뉴였다. 당시 같은 색이지만 전혀 다른 두 재료를 배치한 것은 그가 가진 두 개의 이름 때문이다. -116쪽
남회귀선을 지나는 공정한 햇살과 산맥과 대양 사이 공평한 고도는 칠레의 포도알에 수많은 단어를 새긴다. 과거에는 분명한 '무엇'이었을 무기물과 유기물 분자가 잘리고 분해되어 자신의 본모습을 감춘 채 뿌리를 타고 올라와 포도알 사이마다 알알이 스민다. 이 맛과 향의 단어들은 땅과 하늘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안데스 마푸체 농부들의 발소리에 그 어미가 서서히 변형되어 적당한 품사로 바뀐다. -125쪽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만의 시점으로 책을 이야기하는 글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책 이야기를 하는 건 좋아하지만 딱히 어떤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게 지금 이 순간 몹시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