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있으면 정말 도움이 되나?

요리책의 효용성에 관하여

by 담화

점심시간이네. 선이는 공강조차 없는 빡빡한 수업 시간표 덕에 어쩐지 팩 음료 하나 움켜쥔 채 점심을 넘기고 있을 것 같고, 진이랑 준이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있으려나. 엄마는 늘 그렇듯 열한 시 조금 지난 이른 시간에 점심을 먹었어. 여섯 시 반이 조금 되기 전에 아침을 먹어야만 하는 생활을 삼 년 넘게 하다 보니 식사 시간이 전반적으로 빨라지더라.


웃기고 슬픈 얘기지만 점심을 먹다 보면 저녁은 또 뭘 해야 하나, 항상 그런 고민을 하게 돼. 그건 엄마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어서 참 많은 엄마들이 엄마 비슷하게 살더라고.

한식이 또 좀 손이 많이 가냔 말야. 5년 전에 미국 살 때, 엄마의 인도인 친구가 (치과의사 이모, 기억 나지?) 경악 반 감탄 반을 섞어서 엄마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어. 한국 엄마들은 끼니때마다 그 엄청난 개수의 사이드디쉬는 물론이고 메인디쉬까지 어떻게 해내는 거냐고.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냐고 묻는데 진짜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를 모르겠는 거야. 그래서 약간, 뭐랄까 겨울 내내 줄에 널려 있던 동태 같은 눈을 하고 이렇게 대답해 줬어.


"With Nike spirit, I suppose..."


한 10초간의 정적뒤에 플레이데잇에 함께 참여 중이었던 준이의 친구 엄마들은 물론이고 온 대륙의 아줌마들이 포복절도했더랬지. 그런데 그거 말곤 생각이 안 나는 걸 어떡하니. 뭘 어떻게 해, 그냥 하는 거지. 정말이지 무심 시크한 대답 말고는 어울리는 답이 없을 것 같아.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잔인무도(?)한 식문화가 발달했는지 참 의문은 의문이야. 다만 엄마는 그런 입맛에 길들여졌고 그렇게 먹는 걸 좋아하는 1인이다 보니 정말로 저스트 두잇 하게 되는 것뿐이고. 그것도 그렇지만 아주 간단한 것이라도 내가 만든 뭔가를 입에 물고 절로 행복한 웃음을 짓는 사람을 보고서도 요리하는 걸 싫어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아.


어쩌면 요리를 그럭저럭 좋아하고 잘하게 된 건 엄마가 인생 최초로 애착을 갖고 거듭 펼쳐보곤 했던 책이 요리책이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


어렸을 때,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너희 외할머니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최첨단이라 할 만한, 바인더 형식으로 만든 세 권의 요리책을 갖고 계셨어. 제목은 무려 세계 요리 대백과. 여기서 한 번 더 엄마의 어린 시절 유명한 혀짤배기 소리를 자랑하자면, 이 책은 엄마의 대단한 발음 덕분에 <언나 마딛겐니 책> 이라는 굉장한 별칭을 갖고 있었어.


사전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각 권마다 한국, 중국, 그리고 서양의 요리를 각각 나누어 망라하고 있는 대단한 요리책이었지. 그러나 평범한 어린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엄마도 한식이나 중식엔 별 관심이 없었지. 매번 사진 구경에만 정신이 빠져서 닳고 닳도록 넘겨본 것은 첫 번째권인 서양 요리 백과였으니까.


도대체 무슨 뜻인지도 모를 휘황찬란한 이름을 갖고 있는 그 요리들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맛을 가진 음식일 것만 같았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거야말로 무조건 왕좌를 차지하게 되어 있는 법 아니겠니. 원래 제일 맛있는 고기는 만화 고기잖아. 알지, 그거. 뼈다귀에 도톰하게 살이 잔뜩 붙어 있어서 와앙 하고 이를 박아 넣고 잡아뜯는게 제맛일 것 같은 환상의 고기 말야. 그러나 아마도 육즙이 뚝뚝 흐르고 적당히 질깃하며 탄력도 있을 그 고깃살을 맛볼 수 있는 사람은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도 영원히 없을 거 아냐. 슬픈 일이지. 아니, 기쁜 일인가. 아무튼 요지는 이게 아니니까 넘어갈까.


예를 들면 비프스튜, 뭐 이런 건 그래도 좀 해먹을 수 있지 않나 싶은 요리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꼬꼬뱅은 대체 무슨 맛이 날지 상상조차 안 가는 거야(너무 오래돼서 그 책에 실려 있던 요리들은 기억도 잘 안 나서, 지금은 그냥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다른 요리 이름을 가져다 붙였어).

엄마는 지금도 생각나. 글자를 그럭저럭 판독할 수 있었을 때, 신중하게 재료를 살펴보고 이건 어떻게든 우리 엄마가 공수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 그 무거운 책을 들고 득달같이 부엌으로 달려가서 엄마, 나 이거 해줘, 하고 졸라댔던 어린 시절이. 그리고 거의 30년이 흘러 너희가 엄마의 빽빽한 요리책 서가를 뒤져 포스트잇을 사방천지에 발라놓은 책을 들고 달려와서 엄마 나 이거 먹고 싶어! 를 외쳤을 때, 무심결에 엄마 미안을 중얼거렸던 것도.


일본의 어떤 유명한 서평가가 이런 재미있는 말을 했거든. 실용서의 가치는 실제로 그것을 만들어 보고/실천해 보는 일에 있지 않고, 다만 이제 내가 이것을 만들고 싶을 때/실천하고 싶을 때 언제든 실행에 옮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심적 안정감에 있는 것이라고.

바로 그거야. 그런 차원에서 한 권 두 권 쟁여놓기 시작했던 요리책이 어느 순간 너희의 눈에 띄면서 그건 엄마에게 어마어마한 부담을 안기는 그 무엇이 되어 버렸지. 그럼에도 엄마는 너희가 산더미 같은 요리책을 마룻바닥에 어질러 놓고 엎드려서 페이지를 넘기며 즐거워하는 걸 보는 게 좋았어.

내가 모르는 요리의 이름을 흝어보고 사진을 보며 맛을 상상하고, 조리법을 읽어보다가 이렇게 만드는 방법이 길고 힘든 걸 과연 엄마가 해주긴 할까... 하고 조금 의기소침해하는 걸 보는 것까지도 재미있었거든. 요즘으로 치면 육아라이브랄까.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였는데.


그런데 요리책은 다른 실용서에 비해 확실히 효용성이 높은 책이긴 해. 엄마의 경우엔 그랬어. 특히 뭔가를 잘해 먹고 싶은 의욕은 큰데 방법론을 하나도 모르는 경우에는 정말로 큰 도움이 되거든. 그러니까 처음에는 한두 권 정도 구비해 놓고 몇 개를 따라 만들어 보며 충분히 연습을 쌓은 다음, 조금씩 내 입맛에 맞게 간하는 재료로 맞추어 가는 응용 단계로 넘어가면 돼.

너희 수학 공부할 때 * 라이트 실컷 풀다가 나중엔 **라벨로 넘어가는 것과 비슷하달까. 물론 이것도 타고나는 감각의 영역이 있어서, 굳이 부단한 연습을 쌓지 않아도 저절로 맛의 밸런스를 '이븐'하게 알아서 잘 맞추게 되는 천재들이 없진 않지만 요리 둔재 중의 둔재로 태어났어도(얼마 전엔 밥경찰이라는 신박한 표현도 본 기억이 나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서 한참을 고민했는데. 너흰 알아?) 이것도 결국은 하다 보면 늘어. 그러니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습해서 스스로 밥 한 끼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차려 먹는 어른이가 됐으면 좋겠어.

추천하자면, 초심자 입장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건 볶음밥 종류고, 그다음이 특별한 전처리 과정이 들어가지 않는(마리네이드 같은) 일품요리. 그리고 일상적으로 먹는 찌개나 전 같은 것, 생채무침 종류인 것 같아. 조림 같은 건 쉬워 보이는데 사실 조금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야. 불조절이 관건이거든. 그리고 요리를 어렵게 만드는 건 사실 팔 할이 불조절이야. 이건 요리책에서는 설명으로만 나와 있고 결국 무수한 실패와 경험으로 익히게 되는 부분이라, 사실 많은 실패를 겪고 결국 난 요리 적성이 아니야! 하고 부엌을 울면서 뛰쳐나오는 (;;;) 불상사를 종종 초래하는 종목이거든. 아무튼, 그 카테고리에 속하는 음식 몇 가지만 익혀 놔도 무궁한 변주가 가능하지. 경우의 수 계산은 하지 않을게. 엄마는 수학이라면 아주 질색이거든.


있잖니, 우리 집에 요리 백치는 너희 아빠 하나로 족하다고 생각해... 아니 도대체 어떻게 엄마가 20년이 넘게 그렇게 잘 먹여줬는데 아직도 김치찌개를 김치에 물만 넣고 끓이면 된다고 생각할 수가 있어? 너흰 이러지 말자...


근데 왜 계속 변죽을 울리는 이야기만 계속하냐고. 담엔 약간의 팁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볼게. 사실 이미 세상엔 좋은 요리책이 너무 많아서, 그냥 전반적이고 두루뭉술하지만 가끔은 필요한 이야기를 적고 싶었어. 엄마까지 뭘 만들려면 몇 그램에 몇 티스푼, 이럴 필요는 없잖아. 그보다는 말하자면 매실장아찌를 담그기 위해 매실을 깎아 도려낼 때 손이 아프면 어떤 편법을 쓰면 되느냐 뭐 그런 게 더 요긴하지 않을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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