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맛도 육지의 맛도 아닌

따끈한 미역국은 언제 어느때나

by 담화

연휴를 앞둔 주라서 그런가, 평일이어도 보통 때의 평일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월요일이야. 각자의 자리에서 좋은 하루 보내고 있을까, 어린이가 아니지만 여전히 어린이처럼 느껴지는 S, 중간고사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J1, 연휴 코앞에 둔 목요일에 단축수업 한다고 신난 J2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 생각이 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 같아. 우리 주말에 미역국 끓여 먹었잖아, 아빠 생일 있어서. 엄마는 항상 생일 미역국을 끓일 때마다 약간의 의문 플러스 미약한 분노를 느끼곤 해 (웃자고 하는 말).

어릴 때야 어쩔 수 없다지만, 미역국은 생일 당사자가 본인의 어머니께 끓여다 바치는 게 맞단 말야. 안 그러니? 미역국 먹어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귀빠진 사람이 미역국을 얻어먹는 걸까… 엄만 어렸을 때부터 유구하게 이 점에 의문을 표해왔으니까 왜 나이 먹고서야 거기에 태클 거냐는 말은 하지 말아 줘.


아무튼, 미역국이 맛있는 건 사실이지. 그치만 그렇게 미역국을 좋아하는데도, 웬만한 배리에이션의 미역국을 다 먹을 수 있는 엄마조차도 미역국에 진저리를 치게 되는 때가 도래하고야 말았으니 그건 바로 막내 J의 탄생 이후 몸조리 기간이었지. 이전에 먹었던 미역국은 그냥 맛있는 미역국을 좀 질리게 먹는구나 싶은 수준이었다면 이때 먹은 미역국들은 약간 해괴하다 싶을 정도였어. 아무리 몸보신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렇지, 이걸 먹으라고. 진짜, 진심인가. 그냥 나중에 업보빔 세게 맞으면 안 될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으니까.


엄마가 한동안 미역국이라면 진저리를 치게 된 건 아마 다 이때의 강제적인 미역국 섭취와 적지 않은 관련이 있었으리라 봐. 아무튼 그러다가 결국 미역을 다시 퐁당 물에 담가 불리는 걸 꺼리지 않게 된 건 미역국을 유난히 좋아하는 너희들 덕분이었겠지. 입맛이 어찌나 아롱이다롱이인지 얘가 좋아하는 건 쟤가 죽도록 싫어라 하고 쟤가 또 좋아하는 건 요놈이 또 웩하고 혀를 내밀고. 엄마는 진짜 세상에서 제일가는 쓰리디 직종이야. 에휴. 그 얘기는 대충 넘어가고.

그런데 그런 셋이 동시에 다 좋아한다? 어떻게 자주 끓이지 않을 수가 있겠어. 그리고 밥상에 우아하게 앉아 수저질할 여유 따윈 없는 영유아기의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엄마에게 미역국에 적당히 말아놓은 찬밥 한 덩이는 빠르게 허기를 해결하고 다음에 닥칠, 뭔지는 모르지만 좌우지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에 대비할 수 있게 해 주는 훌륭한 음식이었지.


미역국을 맛있게 끓이는 데는 당연히 미역이 중요해. 미역 다음으로는 국간장도 중요하고, 간장으로만 간해도 맛있긴 하지만 소금을 약간 섞어서 간을 맞추면 하나로만 맞췄을 때보다 미묘하게 맛있어져. 왜냐면 짠맛의……뭐라고 할까? 선명도가 올라간다고 하면 좋을까. 간장으로만 간을 맞추었을 때보다 미뢰를 정확하게 타격한다고 하면 이해가 쉬우려나. 간을 맞출 때 이것저것 섞으면 풍미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그 옛날의 유명한 드라마 장금이에서 나왔던 말처럼 ‘그리고 있는 맛’을 구현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맛을 가진 재료를 섞었을 때 맛이 선명해지고 좋아지는 거거든.


처음에 참기름에 불려놓은 미역, 적당히 썰어둔 고기와 다진 마늘을 넣어 볶다가 예의 잘 볶아진 향이 올라오거든 물을 맞춰주고 끓여. 센 불에 끓이다가 나중엔 약불로 놓고 오래오래 끓여도 좋아. 오래 얼마나? 라고 물을 것 같아서 말해주자면, 한 시간 훌쩍 넘어도 괜찮아. 대신 물이 줄어드는지 어쩌는지 확인은 종종 해주어야겠지.

미역국은 원래 첫날에 끓이면 맛이 덜해. 이틀째는 되어야 미역이 제대로 우러나기 시작하니까 사실 정말 맛있게 먹으려면 부지런을 꽤 떨어야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겠니. 그러니까 어딘가 밍숭한 맛이 나는 미역국을 퍼먹으면서 맛있어질 거야, 분명히 내일은 내가 원래 아는 그 맛이 아는 미역국이 될 거야 수십 번 되뇌는 거지.


참기름에 볶아 끓이는 미역국 말고, 고기만 따로 삶아 끓이는 미역국이 원래 맞는 거긴 한데 이게 좀 더 대중적인 맛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 이제는. 참, 그리고 무를 조그맣게 나박나박 썰어서 같이 끓이면 맛있어. 이건 옵션이지만, 엄마는 항상 이렇게 끓였으니까 참고만 하라고.


짭조름한 미역국 한 그릇만 있어도 밥 한 공기는 어떻게든 넘어가잖아. 다른 대단한 반찬이 없어도 말야. 엄마는 어렸을 때 미역국을 끓이는 커다란 냄비를 보면 할머니한테 경단을 빚자고 그렇게 발을 구르곤 했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어서 너희도 틀림없이 좋아하겠거니 하고 그 귀찮은 경단을 힘들게 빚어서 넣고 끓여줬는데 반응이 시원찮아서 ‘…’하고 고민 좀 했던 기억이 난다. 참, 사람 입맛은 어찌 그리 다른지.


참, 미역국 끓이는 엄마 옆에 와서 엄마 생일에는 내가 미역국 끓여줄게, 했던 J1양, 고마워. 엄마가 그 말 꼭꼭 접어서 마음속에 넣어놨어. 나중에 받아먹으려고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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