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언제나 달걀

언제나의 계란볶음밥

by 담화

안녕, 선, 진&준.


엄마가 갑자기 왜 이런 걸 쓰기 시작했는지부터 얘기해야겠다, 그치?


엄마가 최근에 또 크게 다쳤잖아. 그래서 계속 반찬을 사다 먹고 밥을 시켜 먹고, 나가서 사 먹고…

이런 일이 계속되다 보니까 너희한테 지금까지 엄마가 어떤 식으로 음식을 했는지, 어떻게 하면 엄마가 만들던 것하고 비슷한 맛을 내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지 방법을 가르쳐 주긴 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엄마도 그랬거든. 아빠랑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가지고 너무 뭐가 해 먹고 싶은데 할머니한테 매번 전화를 걸어서 ‘엄마, 그거 어떻게 만들어? 어떻게 하면 엄마가 하던 거하고 비슷한 맛이 나?' 물어보는데, 이게 엄마가 물어볼 때마다 대답해 주는 할머니도 힘들고 물어보는 엄마도 힘들고 서로 못할 짓이더라고.


그래서 엄마는 그냥 미리 다 써놔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


안 그래도 선이는 이제 집 떠나서 생활하다 보니까 엄마가 해주던 밥이 많이 그리운 것 같은데, 언젠가는 너도 네 손으로 밥 해 먹고 그래야 될 거 아니야?


그리고 진이는 지금도 벌써부터 제법 요리를 하긴 하지만 그래도 너도 특별히 좋아하는 거 있잖아. 엄마, 나 뭐 해주면 안 돼? 하고 물어볼 때도 가끔 있고. 입이 짧은 준이는 말할 것도 없겠다.

그럼 뭐부터 얘기를 하는 게 좋을까 생각을 했는데 당장 뭔가를 만드는 것보다도, 엄마 어릴 때 얘기를 하나 해줄게.


엄마가 어릴 때 어떤 특정 재료를 어떤 방식으로 요리해서 만들어 달란 식으로 굉장히 할머니한테 요구를 많이 했었나 봐. 근데 할머니는 엄마의 그런 요구가 뭔지 알아듣기 힘든 것도 좀 있었던 것 같아.


예를 들면 할머니가 한동안 엄마가 어른이 돼서도 두고두고 얘기하던 게 있었거든.


엄마가 어렸을 때 할머니한테 그렇게 허구한 날 엄마 계란 차오스 줘, 차오스 줘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게 도대체 뭔지를 모르겠다고. 어쨌든 계란이 들어간다는 거 하나 알아들을 수 있는데, 그래서 그냥 계란 차오스 하면 계란을 넣어서 뭐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어 줬나 봐.


뭐 계란찜이라든가 계란 볶음밥이라든가 그런 거.

그러면서 너희가 굉장히 어릴 땐데, 부엌에 있는 엄마한테 마침 우리 집에 와 계시던 할머니가 또 그 얘기를 하시더라고.

도대체 너 어릴 때 그렇게 말하던 계란 차오스가 대체 뭐냐고. 뭘 해달라고 한 거냐고.

근데 정말 이상하지.

30년이 지난 일인데… 거의 30년이 지난 거였지.

엄마가 엄마도 모르게 그냥 대답이 탁 튀어나가는 거야.


"아니 엄마 그거 계란 저어달라고! 계란 저어서 달라고. 밥에 날계란 넣고 저어서 섞어달라는 건데 그걸 못 알아들어줬던 거야? 엄마 맞아? "


근데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에 엄마도 굉장히 놀랐다?

왜냐하면 할머니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그 말이… 그 음식에 대한, 어떤 굉장히 강렬한 열망? 욕구? 그것도 아니면 식욕, 그런 게 엄마한테 계속 남아 있었던가 봐.

그러니까 그거를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던 할머니에 대한 원망 그런 거 말이야.


그렇지 않고서는 엄마가 30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서 그 음식의 정체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또렷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거든.

물론 지금의 엄마는 계란 차오스 같은 건 먹지 않아. 줘도 안 먹을 거야, 아마. 그런데 애들은 날계란을 왜 그렇게 좋아할까?

잘 모르겠네. 그러고 보면 좀 신기해. 선이는 계란을 너무 싫어하잖아.

계란 비린내가 난다고. 그래도 곧잘 먹는 건 계란볶음밥, 그건 또 엄청 좋아하잖아. 사실 별 대단한 재료가 들어가는 요리도 아닌데. 그런데 계란볶음밥은 사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맛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 같긴 해.


엄마는 가끔 프라이팬이 더러워지는 걸 감수하고서 하는 일이지만, 계란을 부치다가 살짝 익을 만하면 간장을 넉넉히 달궈진 프라이팬에 쫙 뿌려서 계란 프라이가 간장을 다 먹어버리게끔 할 때가 있거든.

그러면 간장이 소위 폭향이 되어서 굉장히 맛있어져.

그렇게 부쳐낸 계란 프라이를 넣고 참기름 넣고 통깨 많이 넣고 밥 넣고 섞은 다음에 맛있게 먹는 거야.

오죽하면 선이는 수능 보는 날 도시락으로 이걸 싸 달라고 했잖아.

다른 엄마들은 엄청나게 맛있는 걸 잘도 싸주던데 엄마도 그래서 뭐, 엄청 잘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제법 괜찮게 싸줄 생각도 있었는데 선이는 꼭 이 계란 볶음밥을 고집을 했었지.


갑자기 그 생각이 난다. 엄마가 지금 손이 온전치 못해서 반찬도 제대로 당연히 하지도 못하는데, 그런데 계란 프라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엄마도 오늘 점심은 계란 프라이 하나 부쳐서 밥 어설프게 섞어서 그렇게 먹어볼까 해. 맛이 있었으면 좋겠다.


근데 오늘 저녁은 또 나가서 먹어야 할 것 같아. 미안해. 엄마 이제 드레싱 교체 하러 병원 가야 하는데 진짜 가기 싫다. 소독할 때의 그 끔찍한 통증에 체면이고 뭐고 너무 아파서 펑펑 울었는데 그 짓을 또 해야 하다니 진짜 싫다. 우리 저녁에 무사히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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