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차려주는 대로 먹는 게 도의

질리지 않는 김치찌개

by 담화

주말은 항상 힘들어.

특히 너희 아빠처럼 매 끼니를 '영양학적으로 균형 있게 잘 먹어야 한다'라고 입버릇처럼 되뇌는 사람하고 같이 사는 사람(그게 바로 나예요)은 종종 님,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데 이제라도 식품영양학과에 진학하셔서 그 훌륭한 '영양학적으로 균형 있는 식사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업에 매진해 보심은 어떻겠냐고 진지하게 조언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곤 하지.

여기저기서 백세시대를 운운하는데 인생 후반부를 위해서 참 적절한 직업 조언 아니니? 아, 내가 지난번에 너희 아빠는 김치찌개가 김치랑 물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해맑게 물어봤다는 얘길 해줬었구나… 그래(먼 산).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다 갖추고 살겠니. 한숨…


그럼 오늘은 김치찌개를 끓일까.


세상엔 수많은 비법의 김치찌개가 있지. 엄마도 김치찌개 잘 끓이는 분들의 저마다의 ‘한 수’를 사사한 바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오…’했던 건 이거였어.

돼지고기 비계와 김치, 고추장 한 숟가락을 충분히 볶아준다는 것. 물론 센 불로는 안 돼. 얼마 안 되는 기름기 때문에 다 타버리기 일쑤거든. 약불에 두고 김치와 김치국물 조금, 고추장과 준비한 삼겹살 같은 부위의 고기를 넣고 여유 있게 볶아봐. 그럼 고기 지방이 녹아서 김치와 같이 엉기면서 냄새가 바뀌는 순간이 오거든. 약간 날것의 고기 냄새랄까 그런 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소한 냄새로 바뀌어.

물론 처음부터 재료들을 한꺼번에 볶는 게 꽤 어려울 순 있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골고루 익혀야 한다는 부담감은 덜어내고 ‘볶은 향을 빼낸다’는 정도의 가벼운 느낌이면 딱 좋아. 김치랑 같이 볶은 고기, 거기에 소량의 김치국물과 고추장을 같이 볶았으니 그대로 떠서 두부라도 하나 삶아 같이 먹고 싶은 충동이 들 수도 있을 텐데 조금만 참고! 이제 물을 붓는 거지.

신나라 푹푹 부어버리면 김치가 샤워하고 나온 물맛만 나게 되니까 조심조심, 재료가 딱 잠겨서 머리가 보일락 말락 한다 싶을 때 멈추는 거야. 찌개맛이 푹 밴 두부가 좋으면 이때 얄팍하게 썬 두부를 반모쯤 넣어도 좋아. 그리고 뚜껑을 덮어주고 불을 키워줘. 냄비 바닥 지름을 넘지 않는 선에서 크게. 그러다 제법 요란하게 뚜껑이 덜거덕 거리면 그때 불을 낮춰주는 거지. 그리고 세월아 네월아… 외면하면 안 되고, 가끔씩 들여다봐주는 거야. 김치가 얼마나 노글노글해졌는지. 그건 어떤 상태인지 말 안 해줘도 많이 먹어봐서 알지?

그쯤 되면 제법 두껍게 썰어 넣은(찌개용이라고 하면 정육점에선 두툼하게 썰어줬을 거야) 고기도 굉장히 부드럽게 익어.


참치 버전도 뭐 크게 다르지 않아. 근데 참치는 워낙 기름이 많아서, 기름기를 조금 따라버리고 쓰는 쪽이 좋긴 해. 물론 어떤 참치는 기름 대신 물이 들어있기도 해서 그건 잘 봐줘야 해. 물기라면 꽉 짜주는 게 좋겠지, 추가적으로 참기름을 넣어 볶더라도 말야. 거의 끓어가는 시점에 대파를 어슷 썰어 올려주는 것도 좋아.

아, 그런데 김치찌개엔 고기와 김치 말고는 다른 부재료를 넣지 않는 쪽을 (두부 제외) 추천해. 이미 너희 입맛이 그렇게 길들어 있기도 하지만, 특히 양파를 많이 넣으면 좀, 애매하게 달아지거든. 양파의 단맛이 꼭 필요한 음식도 있긴 하지만 엄마는 찌개는 단맛이 나는 걸 극도로 저어하는 입맛이고 아마 너희의 입맛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


옛날에 엄마가 광화문 근처를 출퇴근하듯 들락거렸을 때 말야… 굉장히 좋아했던 김치찌개 집이 있었는데, 그곳에선 김치찌개와 항상 계란말이를 같이 먹을 수 있었거든. 그 맛의 기억이 얼마나 강하게 각인이 되었으면, 엄마는 여전히 김치찌개를 끓이는 날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당연한 듯이 계란말이를 하게 되더라. 또 그게, 맛의 밸런스가 끝내주잖아. 매콤한 찌개국물에 폭신하고 부드러운 계란말이는 진짜 누가 만들었는지 환상의 조합이란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지. 다만 계란을 극도로 혐오하는 선이가 그 맛을 알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울 뿐… (그리고 지금 막, 그런 거 별로 알고 싶지 않거든, 하는 목소리가 자동으로 귓전에서 울렸어)

깁스 풀었으니 오늘은 뭐 맛있는 걸 해줄까 고민 좀 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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