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바로 부추전
시월이 이젠 거의 다 갔어, 준아, 진아, 선아. 오늘은 거꾸로 한 번 불러볼게. 그런데 진이는 이렇게 해도 가운데 저렇게 해도 가운데네.
끼니를 잘 넘기는 걸 지상최대과제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중요한 과업으로 여기는 엄마한테 가장 부엌에 서 있기가 좋은 계절을 묻는다면 그건 단연코 봄과 가을이야. 이제는 둘 다 우리나라에서는 존재감이 몹시 옅어진 계절이지. 어떤 사람은 봄가을에 제철을 맞는 맛있는 식재료가 많아서 그러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대답은 그럴 리가요, 에 가까워. 사실 엄마가 모범적인 대답을 하는 성격도 아니긴 하잖아?
진실은 이런 거지. 요리하면서 환기시키기 좋은 계절이어서요. 너무 T적인 대답인가. 하지만 그게 사실인 걸 뭐 어떡해.
여름은 너무 더워서 부엌에 서 있는 것 자체가 곤욕스럽고 겨울은 너무 추워… 물론 봄가을에 나오기 시작하는 계절 한정 식재료들이 맛있기도 하고 이 계절을 맞아 점차 맛이 오르는 애들(?)이 많은 것도 부정할 수 없긴 하지.
이렇게 말했으면 가을에 딱 떠오르는 식재료로 뭔가를 만드는 게 합리적이고 흐름을 훼손하지 않는 전개겠지만… 미안해, 클리셰 전개 좀 깰게. 가을에 맛있어지는 건 좀 나중에 얘기하고, 오늘은 부침개. 왜냐면… 엄마가 좋아하니까? (말이 안 되면서 말이 됨)
기름에 넣었다 뺀 음식들은 하나같이 맛있지. 오죽하면 신발도 튀기면 맛있어질 거라는 말이 있겠니. 다만 건강에는 썩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랄까. 아니, 생각해 보니 단점이 또 있긴 하다. 가스레인지 주변이 아주 난리가 나지.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워두면 요긴한 부추전을 부쳐보자고요.
부추전… 하면 엄마는 늘 할아버지가 생각나. 할아버지는 아주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난 분이어서 음식을 가리거나 남기거나 하는 일에 매우 예민한 분이시지. 너희도 알다시피 외할머니가 엄청 요리를 잘하시잖아.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너무나 좋아하시는데, 지금은 기저질환 탓에 드시면 안 되는 음식이 되었지만 젊으셨을 때 이걸 아주 좋아하셨어. 이게 부침개가 맞기는 한가 싶을 정도로 부추를 빽빽하게 썰어 넣고, 홍고추도 조금 썰어 넣은 반죽에 가장 핵심이 되는 바지락살을 듬뿍 다져 넣은 그런 부추전을.
문제는 엄마가 지금은 잘 먹지만, 당시엔 안 먹었던 바지락살을 소심하게 모조리 발라냈다는 것이고,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면서도 그걸 모조리 모아 드시면서 맛의 ㅁ자도 모르는 한심한 것- 이런 표정을 짓고 계셨다는 거 아니겠니. 흑흑.
그렇게 내도록 이게 부추전인가 부추밭인가 모르겠다 싶은 걸 부추전이라고 굳게 세뇌당하고 자란 엄마가 대학생이 되어 모 대학가의 술집에서 ‘부추가 듬성듬성한’ 부추전을 처음 영접하고서 얼마나 눈이 동그래졌을지를 상상해 봐.
내가 확고하게 이것은 A다,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음식이 다른 모습을 하고 나타났는데, 막상 입에 넣어보니 음…? 하게 되는 그 순간을. 그때 엄마는 큰 깨달음 하나를 얻었어. 아, 같은 이름을 달고 있어도 그 음식을 만들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가 아닌 거구나. 물론 엄마는 그날 이후로 부추밭 버전 부추전을 기꺼이 마음속의 고향 식탁에서 내버렸지(이 자리를 빌려 엄마 미안). 엄마가 추구하는 부추전의 미학은 안타깝게도 할머니의 추구미(味)와 같지 않았어… 자녀가 항상 키워주신 부모와 뜻이 일치할 수는 없는 거야, 엄혹한 진실이지. 그래서 엄마는 항상 너희의 뜻을 존중해 주잖아. 그게 다 일찌감치 이런저런 경험의 축적에서 얻은 깨우침 덕분인 거지.
그러니까 엄마가 전수해 줄 수 있는 건 어쩐지 허전한 부추의 여백의 미가 두드러지지만 그 자리를 다른 재료가 메우는 그런 버전이야. 당연한 얘기지만 너희는 여기에 또 너희만의 최애 식재료를 넣어서 만들어도 돼. 음식 하는 재미란 건 원래 그런 거야, 알겠지.
반죽물을 먼저 만드는데, 물과 부침가루의 양은 1:0.8 정도 비율로 해주는 걸 추천해. 반죽물은 뭐랄까… 로션보다는 약간 묽고, 물보다는 끈끈하게 흐르는 느낌이 있는 정도로 점도를 맞춰주면 좋아. 여기에 계란 하나 깨 넣고, 소금 간 아주 약하게 해 주고. 초간장 안 쓸 거면 소금 조금 더 넣어도 괜찮긴 한데 아직은 간 잘 맞출 자신 없지? 그러면 안전코스를 택하는 게 좋고.
양파와 부추의 양은 양파가 1/4개 들어간다면 부추는 마트에서 파는 한 봉 분량에서 2/3 정도로, 3센티 정도 길이로 썰고 오징어는 1/3마리 정도로 맞춰줄까. 반죽물과 비율 맞추기 힘들 텐데 너무 빡빡하게 가득 찬다… 는 느낌만 아니면 돼(부추밭 그만). 그리고 홍고추 한 개는 필수로 다져서 넣어주기. 이거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가 맛에 참 많은 차이를 만들거든.
이제 반죽을 부쳐낼 땐데 주의사항 하나.
아마 틀림없이 코팅 팬을 쓰게 될 텐데, 불에 오래 달궈서 기름을 두르는 거 이거 하지 마. 이건 무쇠 팬이나 스테인리스 팬 쓸 때나 그렇게 하는 거지, 코팅 팬을 그렇게 썼다가는 코팅 다 망가지는 건 둘째치고 안 좋은 물질 생겨. 아주 잠깐만 중약불에 달궈서 기름 충분히 두르고(응, 다이어트가 중요하면 부침개를 그냥 먹지 마. 쪼잔하게 기름 한 스푼 둘러서 부침개가 맛있게 구워질 거라고 믿는다면 그냥 안 먹는 게 나아…) 두 국자 정도를 둘러주는 거지… 혹시나 오해할까봐서 말하는데 여기서 두 국자는 기름이 아니야, 반죽이지!!
중요한 건 소리를 잘 듣는 거야. 기름이 거칠게 퍽퍽 튀는 소리가 나면 안 돼. 뭐랄까… 트레몰로 같은 예쁜 소리가 고르게 나야 돼. 그런 소리가 나는 온도로, 그렇게 열이 유지되는 상태로 구워야 맛있어져.
기억합시다, 맛있는 부침개는 고운 트레몰로 소리가(비유입니다, 비유) 나는 기름 온도로.
온도가 너무 세면, 가장자리가 타기 일보직전인 듯해 뒤집었어도 가운데는 허여멀건한 반죽색 그대로인 경우가 왕왕 발생하니까. 기름 쓰는 요리는 무조건 불 세기 조절이 관건. 알겠지?
자꾸 뒤집다 보면 찢어지기 일쑤니까 딱 한 번만 뒤집을 수 있게 색깔 잘 관찰하는 것도 잊지 말기로 하자.
이렇게 조금 공들여서 부쳐내면 접시에 옮겨 담는 것으로 끝. 수고했어, 오늘도 밥 한 끼 잘 먹고, 좋은 하루 보내! 잘해 먹었다고 사진 한 장 찍어서 보내는 것도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