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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짱이 Apr 26. 2018

죽어서도, 그리움 때문에 거기에 머물고만 싶다면

<고스트 스토리>

Dark Rooms - I Get Overwhelmed


살다 보면 종종 지금보다 어렸을 시절의 공간들을 그리워하곤 한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라서, 가끔 시간을 내서 그곳엘 간다. 거기를 거닐며 익숙한 공기에 흠뻑 취한다. 그렇지만, '그때'의 거기와 관계 맺는 건 아닐 테다. 관계 맺는 건 '지금'의 변해버린 공간이기 때문에, 그리고 거기를 살았던 어린 내가 더 이상 아니기 때문에, 이제는 묘한 단절감을 느낀다. 물론 동창이나 은사님을 만나거나 공간에 묻은 흔적들을 음미하며 과거를 간접적으로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도 흔적도 그 공간을 떠난다.


내가 만약 죽는다면 얼마나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을까? 그 그리움 때문에 자꾸만 주변을 맴돌며 사람들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

사후세계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죽은 사람이 현실과 소통할 수는 없다. 당신 곁에 있다고 외치고 싶어도 (그게 가능하더라도) 도달될 수 없을 것이다. 죽어서 귀신이 된다면, 우리는 오직 세계의 견자로만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스트 스토리>는 이러한 단절감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영화이다. C와 M은 교외의 어느 집에서 오손도손 살고 있는 부부이다. 그러던 어느 날, C가 교통사고로 죽는다. 옛날 공포영화에 나오는 귀신처럼 하얀 천을 둘러 입은 C는 저 너머의 세계로 가지 않고 현실에 남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그는 귀신이 되어 그녀의 곁을 지킨다.

그러나 M은 옛 연인을 잊기 시작한다. 결국 그녀는 이사를 가게 되고, 홀로 남겨진 C 그녀가 떠나기 전 벽 속에 남긴 쪽지를 꺼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 영화는 한 공간에 머물며 그녀와의 순간을 그리워하는 어느 귀신의 여정을 그리는 로드무비이다.

그녀가 남긴 쪽지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시간들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영화의 템포는 굉장히 느리다. 카메라는 피사체에 오래 머문다. 특히 M이 파이를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4분 동안 장면 전환 없이 지속된다. 강박적으로 파이를 먹으며 슬픔에 잠기는 M과, 멀리에서 하얀 천을 뒤집어쓴 채로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는 C의 모습을 4분 넘게 바라보며, 상실감과 단절감, 쓸쓸함을 음미하다 못해 '언제 끝나는 거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감독은 이 영화의 테마가 'C의 시간에의 여정'인 만큼, 그러한 영화의 테마를 느낄 수 있도록 롱테이크를 찍었다고 한다. C의 사적 시간을 담아내는 극사실주의적인 장면이기도 하지만, 관객만 볼 수 있는 귀신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기이한 장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괴리감으로 인해, 우리는 이 영화가 다루는 '시간', 다시 말해 귀신이 되어버린 'C의 시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단초를 얻게 된다.



C의 시간은 선형적인 시간(과거-현재-미래)의 틀에서 벗어난다. 중간중간에 그에 대한 단서들을 제공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추하면서 이질적인 시간의 흐름을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재구성된 시간은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 흔적의 나타남과 사라짐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다 보면, 지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면서도, 나아가 그것에 대한 무상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미련이라는 감정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깨끗이 잊지 못하는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나오는 게 미련이니까. 과거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일 수도 있고 과거의 모습에 대한 부끄럼과 후회일 수도 있지만, 결국 이 모든 것들은 과거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에서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도 '미련'이라는 감정에 관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그녀가 남기고 간 쪽지를 읽고 싶은 욕망은, 그 쪽지가 아직도 그녀가 그를 잊지 않았다는 증표라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쪽지를 기다리는 것도, 그녀를 기다리는 것도, 결국은 그녀와 함께 했던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오는 것이다.

결국 <고스트 스토리>는 미련이라는 감정과, 그것으로 촉발되는 기이한 여정, 그리고 그 여정을 가득 매운 쓸쓸함과 무상함을 어느 귀신의 모습을 통해 그려내는 영화이다. 마치, 마땅한 약을 구하지 못해 끝없이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앓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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