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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바써니 Aug 10. 2021

손주, 돈, 집안일

무언가를 배우는데 흥미가 없었던 동생 덕분에(?) 내가 짤막하게라도 예체능 사교육을 경험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만큼 ‘기대’라는 무게에 짓눌린 것도 사실이었다.     


아빠는 동생에게 쌓이는 불만이 있어도 강하게 밀어붙이거나 불같이 화를 내진 않았다. 동생이 취업만 한다면 딱히 바라는 것도 없어 보였다. 동생에게 결혼 이야기를 하는 것도 듣지 못했다.     

반면 나는 대학에 들어가고 남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하자 아빠의 은근한 3단 콤보 압박이 들어왔다.

“요즘 아빠 친구들은 손주 보느라 바빠서 잘 놀아주지도 않더라….”

21살의 여름방학, 느닷없는 이 말을 시작으로 결혼과 손주에 대한 압박을 비롯해 얼른 취업해서 살림에 보탬이 되라는 눈치와 설거지, 청소, 식사 차리기, 장보기 같은 집안일에 대한 부담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대학 졸업 후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조금씩 내 용돈 정도는 벌기 시작했다. 덕분에 작업료가 들어온 날에는 내 돈으로 장을 봐다 식사를 차리기도 했지만, 아빠는 내 직업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단행본 일러스트 작업 때문에 하루에 18시간씩 일하는 나를 보면서 아빠는 “그게 신선놀음이지, 일이냐?”라고 할 정도였다.

아빠 눈에는 종일 앉아있으니까 힘들지 않아 보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단행본 마감을 위해 두 달 가까이 강행군을 이어오던 나는 최종 원고를 보낸 후 기어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로 인해 일찌감치 건강을 잃었지만, 아빠는 병원에 자주 다니는 나를 못마땅해 했다. 돈 아깝게 병원을 뭐 하러 그렇게 자주 다니냐며 꾸중을 들었다. 내 돈 내고 다니는 병원조차도 눈치를 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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