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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바써니 Aug 19. 2021

문제에 대한 선택

가족을 등지고 나와 지낸 지 1년 정도 되어갈 때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너무 과민반응 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나만 참으면 우리 가족에게는 별문제가 없었을 텐데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내 손목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동생을 저지하느라 늘어나버린 힘줄은 내가 무거운 것을 들거나 손을 조금만 무리하게 써도 눈에 띄게 튀어나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계속 도드라져 보였다. 지금은 상태가 좋아져서 비교적 거슬리지 않지만 처음에는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 정도로 필사적이었다고. 동생으로부터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때 그렇게 사력을 다하지 않았느냐고. 손목은 그날의 내가 과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을 해주고 있었지만, 참지 못한 내가 문제라고 때때로 자책했다. 그렇게 ‘내가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그 뒤로 작년까지 줄곧 “가족들이랑 안 보고 살아요.”라는 내 말에 사람들은 의아해하거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음 말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다. 굳이 그 뒷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그러다 올해가 되어 처음으로 “잘했네요.”라고 답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선택 잘 했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한 명, 또 한 명 만나게 되면서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깊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그건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예요. 혼자 겪고 있는 일이 아니에요.”라고 알려주는 사람들을 통해서 딸로서, 특히 장녀로써 내가 겪었던 일과 느꼈던 감정을 다른 듯 비슷하게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혼자 안고 있을 때는 이게 무엇인지 어디가 잘못되어 있는지 모호했던 것들이 조금씩 대화를 통해 분명하게 보였다.

그렇게 다른 시야를 갖게 되니 과거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게 더없이 위험하게 느껴졌고, 과거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지금에 안도감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데 누구의 눈치나 허락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무엇을 하든 나에게 묻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믿는 것을 오직 나를 위해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아빠와 남동생과 살면서 나 이외의 타인, 특히나 생물학적으로 남자인 사람과 사는 것도 그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결혼에 대해서도 급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이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가족관계, 선택이 필요한가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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