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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Kyoo Lee Nov 01. 2020

우리가 SUV를 좋아하는 이유 (by 이진규)

벌써 5년을 함께하고 있는 우리의 두번째 차


정답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짐 나르는 능력?에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시애틀로 유학 와서 지금까지 몇 번 이사를 했는데, 모두 우리 집 차를 이용해서 짐을 날랐습니다. 그때 이사는 차로  몇 번 왕복, 이전 이사는 몇 번, 지난번 이사는 몇 번.. 이렇게 기억을 떠올리면서 우리 부부의 살림살이가 또 짐이 얼마만큼 늘었는지 혹은 줄었는지 가늠을 해보기도 합니다. 첫 이사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 동네에서 몇 블럭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했었는데, 아마 그래서 작은 차로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이사할 엄두가 났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시애틀에서 우리 부부가 살았던 집과 이웃, 그리고 이사 이야기입니다. 글의 제목에서 많이 벗어난, 매일의 삶의 터전에 대한 기억이 될 것 같습니다.




#1. Shoreline


저의 직전 글에도 등장했던 우리의 첫 집 사진입니다.

봄에 몇 학교에서 어드미션을 받고, 어느 학교로 갈 것인지 결정이 끝나갈 무렵, 당시 그 학교를 다니고 있던 분과 연결이 되어서 그분의 친구의 아파트 리스를 넘겨받게 되었습니다. 집과 함께 살림살이들도 얼마의 돈을 지불하여 넘겨받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매력 있는 부대시설(amenity) 하나 없었던 낡은 아파트였지만,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내내 살았던 원룸 생활이 살짝 무료했었던 저에게 방도 두 개나 있고 TV와 소파까지 있었던 시애틀에서의 첫 집은 정말 별세계였습니다. 저는 카펫 바닥도 너무 좋아해서 집안 곳곳에서 뒹굴거리며 즐겁게 지냈습니다.


이 집에서 가장 좋았던 공간은 우리 부부가 책상을 나란히 하고 함께 창밖을 보며 공부할 수 있었던 책방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방이 두 개였던 집은 이 집이 유일했는데, 덕분에 이때에는 침실 이외에도 책방이 있었습니다.

왼쪽이 아내의 책상
오른 쪽이 제 책상입니다

각자 앞을 보고 공부하다가 사진과 같이 문득 마주 보기도 하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갓 유학 온 두 사람이 늘 버거웠던 학교 공부의 부담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었던, 이 집 거실 너머로 보이던 나무들과 이 집에서 함께 먹고 웃었던 많은 친구들이 지금도 많이 감사합니다.

거실에서 보이는 풍경이 참 평화로웠었는데 제대로 담아낸 사진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이 첫 집에서 4년을 살다가 학교에서 가까운 시애틀로 이사 오게 되었습니다.   




#2. Seattle - 85th St.


시애틀의 두 번째 집은 어느 미국 아주머니 댁의 2층이었습니다. 아내의 대학원 동기 가족이 살던 2층을 그 가족이 졸업 후 귀국한 다음에 저희가 이사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두 번째 집을 구할 때 고생을 좀 했습니다. 마음에 들었던 아파트에서는 소득 증명을 하라고 하는데, 둘 다 학생이어서 번번이 이 단계에서 거절을 당했습니다. 한국에서 유학 오는 부부에게 집의 리스와 살림살이를 모두 넘기기로 약속이 되어있어서 이사 나가는 날을 바꿀 수 없는 저희에게는 참 낭패였습니다. 그때 감사하게도 그 아내의 동기분 생각이 나서 아주머니 연락처를 받아서 연락을 드려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주머니께서도 2층이 비어있어서 이제 광고를 내야 하나 하며 기도하시던 중이었다고 하시며,저희를 참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그렇게 아주머니를 처음 만나고 돌아오며 보았던 35th Ave 의 나무들이 어찌나 아름답게 보이던지, 지금도 그 길을 지날때마다 생각납니다.


"12" 는 시애틀의 미식축구팀 Seahawks 의 팬들을 상징합니다. 공격팀 수비팀이 각각 11명인 이 스포츠에서 "팬들이 12번째 선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 두 번째 집에서의 생활은 정말 새로웠습니다. 주인아주머니와 저희 부부 이외에도 이 집의 각 방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몇 있었고, 모든 사람이 가족과 같이 지내고 싶다는 아주머니의 뜻을 따라,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식사 준비를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했습니다. 그러니만큼 그로서리 등 생필품도 함께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상당히 저렴한 그 방세에 식료품, 휴지 등등의 모든 생활용품이 포함되어 있는 셈이 되어서 정말 미안할 정도의 대접을 받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아주머니의 자녀들이 근처에 살고, 각 방에 사는 사람들이 바뀌어가고, 각자의 가족과 친구들이 방문을 하게 되면서 우리 부부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참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 어머니"와 같았던 아주머니의 삶을 통해 정말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우면서, 우리 부부도 자랄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로 늘 풍성했던 식탁의 교제
평화로운 뒷 마당. 언제나 공 던지며 함께 놀았던 강아지 (라고 하기엔 좀 큰) "Hook"도 그립습니다.
날이 좋은 여름날엔.

우리만의 주방을 가지고 한국 음식을 마음껏 만들어 먹고 싶은 마음과, 종종 밤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던 교회 모임이 혹시 이 집의 다른 이들에게 불편했을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에, 1년여를 살고 이사를 나오게 되었지만, 지금도 친구들과 이야기 나눌 때 자주 등장하는 이"아주머니 집"에서의 삶은 늘 그리운 순간들입니다. 이제는 장성하여 출가한 자녀들같이, 아직 한 동네에 사시는 아주머니를 가끔 찾아뵙습니다.


그리고 이 집에 있는 동안 아내는 졸업 후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저는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3. Seattle - 65th St.


시애틀에서의 세 번째 집 역시 친구의 소개를 통해 얻게 되었습니다. 집주인 할아버지에게 oo의 친구라고 하니 그러면 말할 것도 없이 good people 일거라며 얼른 이사 들어오라 하셨지요.


이 집 역시 하우스였는데, 저희 부부가 아래층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아래층은 전형적인 "mother-in-law apartment" 였는데요, 하우스 아래층을 주방과 욕실이 따로 있는 독립된 집과 같이 만들어서 가족들이 방문하면 사용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전의 아주머니 집과는 다르게 완전히 독립된 생활을 하게 되었고, 집의 현관까지 따로 있어서, 집주인 부부를 마주칠 일이 적었습니다. 늘 위아래로 서로의 소리를 어느 정도는 듣고 살았지만요.


이전 아주머니 집에 정말 모든 것이 이미 다 있었고, 커피머신, 토스터 등 많은 것을 공유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그나마 조금 있던 살림살이들을 모두 팔거나 기부하고 그 집에 들어갔었는데, 이제는 그런 살림살이들을 하나씩 사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때, 지금도 쓰고 있는 식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지인이 고맙게도 공짜로 주신 식탁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우리의 마음에 쏙 드는 식탁을 발견하게 되어, 시애틀 생활 중 처음으로 새 가구를 사게 되었습니다.

양쪽으로 늘어나기도 하여 조금 무리하면 8명까지도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예쁜 나무 식탁입니다.

이제야 이 글의 제목과 연결이 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식탁을 산 것 까지는 좋았는데, 나르는 일이 문제였습니다. 100불에 달하는 비싼 운반비를 내지 않으려면 가구 매장에 가서 차로 픽업을 해 와야 하는데, 우리의 첫 차로는 어림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때 교회 모임 어느 분이 흔쾌히 가구 매장으로 함께 가주셨고, 덕분에 식탁을 집으로 나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차가 SUV 였는데, 뒷 문을 열고 의자를 앞으로 제치자 광활한 공간이 생겼고, 식탁 정도는 여유 있게 들어가던 그 날의 경험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그 기억 덕분인지 그로부터 1년 여가 지나서 차를 바꿔야 하는 시기가 되자, 우리 부부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그때 그분의 차와 똑같은 모델을 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후로 그 차로 이사고 하고, 정말 편하게 많은 물건들을 나르고  또 차에 넣고다니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에게 SUV는 이사할 때 우리 차로 나를 수 있는 물건들의 범위를 확 넓혀준, 정말이지 신세계였습니다. 그 감격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서 아마 다음차도 SUV를 살 것 같습니다.


이 글 제목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이게 다인데, 쓴 김에 시애틀에서의 집 이야기를 계속 써보려 합니다.


반지하라 그런지 콩벌레가 나오기도 하고, 창문 밖으로 보이던 사물의 높이가 낯설기도 했던 이 집에서의 삶이 익숙해질 무렵, 집주인 부부가 집을 팔게 되셨고, 저희는 또다시 살 집을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창문 넘어 보이는 풍경이 ground level 입니다.
이 집에서 사는 동안 아내가 고맙게도 요런 깜짝 선물을 주기도 했습니다.

 



#4. Seattle - 95th St.


Backyard에 반해서 살기로 결정한 이 집은 집주인이 다른 곳에서 살면서 집 전체를 세를 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이전 집과 비슷하게 mother-in-law unit으로 만들어진 아래층에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위층에서는 세 개의 방에 각각 학생 및 직장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윗집에 살던 분들과 별다른 교류는 없었고, 공동 세탁기를 사용할때나 전기가 나가서 두꺼비 집을 내렸다 다시 올릴 때 양해를 구할 때 정도만 마주치고 살았습니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더더욱 뵐 기회가 없었지요.


이 뒷마당에 반해서 이 집을 고르는 실수를 했습니다 ㅠ

 지금 돌아보니 몇 가정이 함께 캠핑도 할 수 있을 만큼 고르고 넓고 잘 관리된 뒷마당이 참 좋았었습니다. 그곳에서 테이블을 넓게 펴 놓고 교회 친구들과 바비큐를 하던 기억은 지금도 참 흐뭇합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 구워 먹었던 고기가 지금도 제일 맛있게 기억됩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


나누기 상당히 부끄러운 이야기인데요, 이 집에는 주방이 집 밖에 따로 있었습니다......

처음에 mother-in-law unit으로 꾸밀 때에는 주방이 필요 없었다가 렌트를 주려니 필요해져서 급하게 만든 것 같았습니다. 저희 방 문 밖에 있는 세탁실의 공간을 반으로 나눠서 주방을 따로 만든 것으로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크게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막상 살아보니 식사 준비를 하며 또 식사 후 그릇들을 주방으로 나르기 위해 번번이 문을 열고 신발을 신고 나가야 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불편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망치듯, 계약기간 1년을 채우고는 그 집을 떠났습니다.


나중에야 듣게 된 일인데, 아내가 그 집 주방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제 철없는 선택 때문에 아내가 그렇게 오래 힘든 시간을 보냈다 생각하면 지금도 화끈거립니다.


그 후로 다짐을 하나 했습니다. 절대로 내 마음대로 집을 결정하지 않겠다고.

지금도 같은 마음입니다. 저희가 언젠가 집을 살 때가 되면 저는 철저하게 결정에서 빠질 것입니다. 저의 조건은 화장실이 최소한 1.5개는 될 것. 딱 이거 하나입니다. 책 방(손님이 오면 게스트룸이 되기도 하는)과 주방의 아일랜드는 있으면 좋고요. 그 외에는 모두 아내가 결정하게 할 것입니다.

이 집도 이렇게 ground level 보다 낮았습니다.




#5. Seattle - 75th St.


이 집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입니다. 몇 년이 지나서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역시 살기에는 아파트가 편하구나.


이 집을 구할 때 참 감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 살고 있는 이 아파트는 꽤나 유명한 아파트였습니다. 낡고 화려한 부대시설은 없었지만, 위치에 비해 렌트비가 너무 싸서 유명했지요. 친구의 친구 이렇게 건너서 알고 있는 분들이 이 아파트에 대해 너무 만족하셔서, 이 아파트에서 살고싶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서인지 이사를 잘 나가지도 않고 빈 유닛이 나와도 지원하는 사람이 항상 많았습니다. 일단 저희도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wait list에 이름과 이메일을 올려놓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전 집에서 나가기로 결정하고 집을 찾을 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몇 년 전에 wait list에 올려놓은 이래로 한 번도 그 아파트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집을 본격적으로 찾기 두어 달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발송하는 것으로 보이는 아파트의 이메일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받은 이메일에는 "이번 달에는 이사 들어올 수 있는 유닛이 없다" 이렇게 오고, 두 번째 받은 이메일에는 3 bed room unit 두 개가 비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방 하나로 살고 있던 우리 부부인지라 방 세 개 까지는 필요 없다 생각해서 그냥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이메일을 통해 드디어 1 bed room 이 하나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Available unit 이 있을 것이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아파트에서 이사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연락을 준 것입니다.


제가 오후 2시 정도에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 우연히 이 이메일을 읽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회사에서 조퇴를 했습니다. 바로 아파트 leasing office로 가서 문의를 하니 온라인으로 지원을 하라고 합니다. first come first serve라고. 그 날 바로 지원을 했습니다. 둘의 Pay stub을 스캔한 파일도 얼른 준비해서 제출했고요. 일단 우리가 가장 빨리 지원하여 신청이 잘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음날 떨리는 마음으로 아침 문 여는 시간에 deposit를 내기 위해 사무실에 다시 갔더니, 어떤 분이 자기가 어제 온라인으로 신청을 하려 했는데 너네 (아파트) 웹사이트가 문제가 있어서 신청 절차를 마무리 못했다고 항의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먼저 신청을 마쳐서 안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직원에게 내가 어제 지원을 했는데 잘 되었는지 확인을 하니 제가 가장 먼저 신청한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 한 번 할렐루야!


둘이 함께 일을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시애틀의 평균적인 아파트 렌트비를 감당하기가 버거운 우리 부부에게는 정말 감사한 소식이었습니다.


사실 이 아파트에 지원할 당시에 제가 살게 될 유닛을 투어 해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때 세입자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보통 다른 아파트에서는 그래도 그 세입자에게 연락을 해서 투어를 시켜주던데, 이곳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리고는 내부 수리를 한다며 입주일이 한 달 반 정도 연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집이 어떨까 약간 불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위치나 렌트비 등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신기한 일들의 연속으로 어렵게 원하던 아파트에 살게 된 것이기에, 마치 하나님이 우리 부부를 위해 미리 이 아파트를 준비해주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집 내부가 어떻든 여기서 살거라고.


그리고 입주일. 정말 그랬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집 내부가 괜찮았었고, 우리의 입주를 지연시킨 내부수리를 통해 거실에 카펫 대신 나무 마루가 깔리고 창틀이 모두 새 것으로 업데이트되어 있었습니다. 새 집 같이 새 마루와 새 창틀이 있었습니다. 카펫을 싫어하고 마루바닥을 좋아하는 아내가 많이 기뻐했습니다.


그게 벌써 3년 반 전입니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정말 작은 불만도 없이 감사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 집에 처음 이사 와서 농담같이 했던 말이 "집 안에 주방이 있다니!"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조용하고 친절한 이웃들과 함께 잘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둘 다 집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덕분이 우리가 좋아하는 이 집에서 거하는 시간이 길어져 좋습니다. 살기에도 일하기에도 좋습니다.


3층인 우리집 발코니에서 보이는 나무입니다. 계절을 느끼게 해줍니다.

 

하늘도 잘 보이고


컨퍼런스에 참여하거나
집에서 일할 때에도 좋습니다.
겨울에 특히 따뜻한 우리 집은 이렇게 널브러져있기에도 좋습니다.




#6. Seattle?


지금 집에서 이사를 나가는 시기는 아마 우리가 집을 사게 될 때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요.


저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동네가 참 좋습니다. 둘이 다녔던 학교에서 멀지도 않고, 산책하기 좋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그로서리 마켓, 도서관과 체인점 빵집, 커피집, 은행과 레스토랑 등등이 다 있는 이 동네가 참 좋습니다. "Wedgwood neighborhood" 라 불리는 이 곳이 저희가 계속 살고 싶은 지역입니다.


위에서 제가 소개한 집들 중 #1을 제외한 #2에서 #5까지의 모든 집들이 이 지역입니다.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한 동네의 85번가, 65번가, 95번가, 75번가에 이 집들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어찌하다 보니 한 동네의 곳곳에서 살게 된거죠. 그 집들 사이를 걸으면 20분 정도가 걸리는 멀지 않은 거리였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75번가가 가장 좋은 것 같은데요, 이렇게 저희가 이 동네를 사랑합니다.


이 동네에서 살았던 집들을 돌아보니 지역이 같다는 것 이외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요, 이 모든 집들에서 정말 착한 렌트비로 살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늘 모르고 집 값도 오르고 덩달아 렌트비도 가파르게 오르는 요즘 핫한 시애틀에서 이 정도의 렌트비로 살 수 있었다는 것은 감사 제목입니다. 올 해에 리스 계약 연장할 때는 조금씩 오르던 렌트비도 아예 동결되었습니다. 아파트 주인이 non-profit organization 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집을 사는 입장이 되면, 이 동네는 집 값이 너무 비쌉니다. 우리 아파트만 빼고는, 둘러싸고 있는 모든 집들이 백만 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시애틀의 집 값은 미국 전국에서도 꼽힐 정도로 빠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가 저축을 늘려가는 속도보다 집 값이 오르는 속도가 훨씬 빠르지요. 그래서 아마도 저희는 집을 사더라도 시애틀을 벗어나 좀 멀리 떨어진 다른 도시에 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세 번째 집이든 다섯 번째 집이든, 우리가 몇 살이 되든, 언젠가 이 동네로 다시 돌아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같이 산책하며 구경하던 집 중 하나에서 살게 될 어느 하루를 꿈꿉니다.

 

P.S.

또 다른 형태의 이사.

올 해부터 장비를 하나씩 사 모아 캠핑을 시작했습니다. 다녀보니, 캠핑 또한 작은 이사입니다. 야외에서 이틀 혹은 사흘을 살기 위해 짐을 싸서 떠납니다. 짐을 쌀 때에는 이런 게 다 필요 있을까 하지만, 밖에 나가보니 모든 게 다 쓸 데가 있고 참 귀하고, 없으면, 가져올걸 하며 아쉽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짐을 잘 나르는 SUV는 캠핑 갈 때에도 참 든든합니다. 침구류며, 음식이며, 텐트며, 장작이며, 의자며, 조리도구며, 밖에 나가면 급 소중해지는 모든 살림살이들을 그 넓은 공간에 던져 넣고 캠핑 장소에 가서 느긋하게 하나씩 꺼내 쓰는 기쁨이란! 그리고, 필요하면 차 안에서 잘 수도 있습니다. SUV가 더 좋아져서 이제는

세단으로 바꾸지 못할 것 같습니다.

캠핑의 시작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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