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10분, 어쩌면 이 10분을 위해 달려왔는지 모른다
넌 날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뭔 짓을 못해
그러니까 넌 이런 등신같은 날 추앙해서
자뻑에 빠질 정도로 자신감 만땅 충전돼서
그놈한테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야무지게 할 말 다 할 수 있게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라고
누가 알까 조마조마하지 않고
다 까발려져도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게
날 추앙하라고
너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면 깜짝 놀란다
나 진짜 무서운 놈이거든
옆구리에 칼이 들어와도 꿈쩍 안해
근데
넌 날 쫄게 해
니가 눈 앞에 보이면 긴장해
그래서 병신 같아서 짜증나
짜증나는데
자꾸 기다려
응?
알아라, 좀
염미정
너 자신을 알라고
더 해 보시지, 좋은데
물은 갖다 주지만 물뚜껑을 따주진 않는 구씨.
그리고 함께 트럭을 타고 간 곳에서 만난 버려진 들개들.
사방이 뚫려있어서 안전하다고 느끼는지 벌판을 벗어나지 않는 들개에게 이끌리듯 다가가는 구씨
그런 구씨를 잡는 미정.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7회까지 달려왔다. 전체에서 삼분의 일을 지나 중반부로 달려간다. 지금까지 보면서 느낀 공통점은 나도 아는 감정이라는 것, 나도 느껴봤고 경험해봤고 생각해봤고 얼굴 붉혀봤고 찌질해봤고 좌절해봤고 상냥해봤고 절망해봤고 희망해봤던 그 감정을 재현했다는 것. 아주아주 현실적인 감정을 지닌 동시에 굉장히 매력있는 캐릭터로 구현해냈다는 것. 그게 어쩌면 이 드라마가 갖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염미정이기도, 구씨이기도, 기정이기도 염창희이기도, 현아이기도 해봤는데.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던 감정을 작가에게 읽혀버린 것 같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당혹스러움과 나도 내가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없는 나도 알아채지 못한 영혼 깊숙이의 감정을 끄집어내 한겹 한겹 결을 벗겨내는 집요함, 그리고 그 안에 맨살이 드러날 때 느껴지는 해방감.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도 짓밟히지 않을 것이라는 밑도끝도없는 믿음.
내가 너를 그렇게 지지하고 있으니 네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나는 너에게로부터 등을 돌리지 않을 거야 라고 하는 무언의 지지와 응원을 받는 자가 보이는 자유와 자신감.
그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보여주는 충만함.
그런 충만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되어본 적 있냐고 묻는 질문.
영혼에서부터 끌어올린 무언가의 레벨까지 올라가야 느낄 수 있을 법한 이세상 만족이 아닌 상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서로를 알아갈 때, 우리는 과연 어떤 경지까지 경험할 수 있는지 묻는 물음.
그리고 그 물음이 지난 세월동안 켜켜이 쌓인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툭 건드려졌을 때 놀랍게 파고드는 희열.
무릎을 세게 치면서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는 경험.
그 체험.
그야말로 놀랍다.
너무너무 좋다. 이 드라마.
박해영 작가님 정말 좋아요.
그리고 매 씬마다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감정을 완성하는 놀라운 음악, 브레이킹 댄스에서 비트킬링 할때보다 더 짜릿한 순간을 선사하는 김태성 음악감독도 리스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