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다시 보지 말자는 그 다정한 이별 인사를 위하여

by 다람북


3개월씩 삼 백번이라도 이렇게 살아있으면 된다고 글을 쓴 게 1월인데, 그다음 글을 쓰는 지금은 12월이다. 그만큼 일상을 살아내는 데 정신없었단 이야기고, 또 한편으론 3개월씩 가서 검진받는 것도 이제는 때 되면 치과검진받는 것처럼 익숙해졌다는 이야기다.



1월과 12월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육아휴직이 끝나 암을 발견했을 당시까지 출근했던 직장을 퇴사했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돌잔치가 있었고, 퇴사하고 한 계절을 채 넘기지 못하고 나는 일을 시작했다. 그것도 그냥 새로운 직장을 들어간 게 아니고, 아예 학원을 차렸다.


그러니 얼마나 정신없이 바쁜가. 아이는 이유식을 시작했다가 점점 유아식을 시작하고, 걷기 시작하면 뛰어다니고, 어린이집은 어린이집대로 적응해야 하고, 나는 나대로 처음 해보는 일들을 온몸으로 겪어냈다. 교육청에 가고, 학원의 공간을 얻고, 인테리어를 하고, 또 학생들을 모으기 위해 홍보하고.


몸살이 날 것 같은 봄과, 정수리에 화상 입은 것처럼 더위 먹었던 여름과, 고군분투했던 가을을 지났더니 올해가 이렇게 가기 직전까지 와버렸다.






올해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아무도 내가 작년에 출산한 사람인 줄, 작년에 항암을 한 사람인 줄, 작년까지 머리가 다 빠져있던 사람인 줄 알지 못했다. 알 리 없었다. 그만큼 언제 그런 삶이 나한테 있었냐는 듯이 정신없이 살다가 또다시 외래 진료가 돌아왔다. 방사선 외래 진료였다.



사실 방사선은 출산과 항암을 하기 전 어떻게든 태아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동시에 암이 더 이상 빠르게 퍼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한 치료로, 출산을 하고 항암을 한 이후에는 혈액종양내과의 진료와 검사에 따라 모든 방향이 정해진 터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 3개월마다 혈액종양내과에서 잡은 CT 결과를 보시고 함께 체크해 주셔서, 나도 혈액종양내과 가는 김에 들리는 정도로 의미의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혈액종양내과랑 외래 일정이 달라져 모처럼만의 방사선학과 단독 외래 진료였다.



그래서 더 아무 생각 없이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아이 어린이집을 보내고, 대학 병원 들렸다가, 교육을 듣고 출근하는 일정이었는데, 그야말로 어디 들렸다가는 일정 정도였다. 시간도 빠듯하게 도착해서 겨우 만차 주차장을 돌고 돌아 주차를 하고, 기계처럼 몸무게와 키를 재고 외래 진료실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뵙는 방사선 교수님이었다.




- 잘 지내셨어요?

- 네, 교수님!

- 어디 별 다른데 불편한 곳 없으시고요?

- 네.



진료실에서 짧은 안부와 잔잔한 침묵이 반복되었다. 이 전에 혈액종양내과에서 CT 검사 결과를 다 들었고, 그 진료 결과로 교수님도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긴장할 것도 없었다.



- 좋아요. 검사 결과 다 좋고요.

- 네.


- 이제 방사선은 외래 진료 더 이상 안 잡을 거예요.

잘 지내시고요.

우리는 앞으로 다시 보지 맙시다.



그런데 갑자기 거짓말처럼 교수님의 그 말씀 한마디가 끝나자마자 눈에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마치 처음 암진단을 받았을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다가 듣게 되는 어떤 충격적인 말은 생각과 표정과 행동이 눈물이 나오는 속도를 채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도 일종의 그런 순간이었다.


- 아... 네. 교수님. 감사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으로 교수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나와서도 계속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 아, 이제 외래 일정 없으시네요. 해.. 아니 방사선 진료 무사히 마치신 것을 축하드려요. 고생 많으셨어요.



진료실 앞에서 외래 일정을 확인해 주시는 간호사 분도 축하해 주셨다. 해방이라는 단어를 쓰려다 아닌 것 같아 급히 말을 바꾸신 것 같았는데, 해방이건 졸업이건 어떤 단어를 써도 아무렇지 않았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정신없이 주차장까지 걸어갔다. 가는 내내 소매 끝으로 눈물을 자꾸만 찍어냈다.




슬픈가? 슬퍼서 눈물이 자꾸 나나? 그건 아니었다.

그럼 기쁜가? 너무 기뻐서 지금 눈물이 나는 건가? 사실 방사선 외래만 종료되었을 뿐 진짜 완치 판정을 받으려면 혈액종양내과는 4년도 더 남았기에 크게 기쁜것도 아니었다.


그럼 왜 이렇게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눈물이 자꾸자꾸 났을까.






감사했다.


방사선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 당시에는 태아에게 영향을 갈까 봐 임신한 상태로 방사선을 해도 되는 거냐며 교수님에게 억지 아닌 억지를 부렸는데, 지금 당장 항암 아니면 방사선을 하셔야 한다고 그 외에 선택지는 없는 거라며 단호하게 말씀해 주시던 교수님께 감사했고, 방사선 20회 하는 동안 배 위에 무거운 차폐물을 매번 쌓아 올려주시던 방사선사 분들께도 감사했고.


생각해 보면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았으면 임신 17주 차에 알았던 암을 34주까지 시간을 끌 수 있었을까 싶고, 또 생각해 보면 암을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했다.


암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보통은 몸속 어딘가에 암이 자라나서 한참 진행한 후에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나서야 병원을 찾게 되는데, 나는 거울을 보다 목 아래에 볼록한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으니 암이 더 진행되기 전에 병원을 갈 수 있어서 감사했고. 암이 발생한 부위가 목이라 어쩜 뱃속에 있는 아이와 가장 멀다면 먼 곳이라 방사선을 하면서도 그걸 위로 삼을 수 있어 감사했다.



감사했다.

정말 감사했다.

돌아보니까 다 계획하심이다.



암을 발견한 것도, 방사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항암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지금까지. 다 너무 감사하기만 해서 그렇게 눈물이 났다.







차를 타고 또 다음 일정을 하러 가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이 감사한 마음 잃지 말아야지. 정말 평생 생각하며 살아야지. 내가 어떻게 치료받았고, 어떻게 이렇게 사는지 꼭 기억하며 살아야지.



그런데 왠 걸.


그렇게 정신없이 울면서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통에 지갑을 잃어버렸다. 출근 전에 교육도 받아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라 노트북을 가지고 병원 근처 카페로 갔는데, 카페 계산대에서 지갑이 없어진 걸 알았다. 그때부터 또 혼비백산.


감사하다고 울면서 운전한 게 5분 전인데 그 감정은 순식간에 날아가고 금방 현실이 되어 지갑을 찾느라 바빴다. 차로 갔다가, 가방을 뒤졌다가, 병원에 다시 돌아가서 분실물센터에 가보고. 그 와중에 시간이 없어서 출근을 하면서도 아 지갑 어디 갔지, 진짜 지갑 어디다 흘렸지 그랬다.




출근을 해서도 그 카드지갑 안에 들어있는 카드며, 신분증이며 모두 재발급받을 생각에 머리가 지끈 아팠는데, 오후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대학병원 장례식장인데 병원에서 흘린 카드 지갑을 주웠다고. 장례식장 보완팀에 맡겨두었으니 찾으러가 시라고.


그 전화를 받고 또 한순간에 안도하며 감사하다고 전화를 끊었는데, 불현듯 누가 나를 거울로 비춘 것처럼 내 모습이 참 웃기다고 생각했다.



아니, 감사하다며. 평생 이 마음 기억하면서 살겠다며. 근데 고작 지갑 하나 잃어버린 걸로 그 마음 1분 만에 까먹고 오늘 오후를 이렇게 정신없이 인상 찌푸리면서 보내니. 감사하다고 고백한 지 하루는커녕 한 시간도 안 지났는데.


그러자 나는 내가 보낸 1년이 보였다. 3개월씩 삼백번 살아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며, CT 찍고 긴장하고 또 살아있음에 감사하던 내가 그걸 그렇게 다 까먹고 정신없이 살았구나. 마치 지갑 잃어버린 사람처럼 아무것도 아닌 걸로 정신없이 혼비백산하면서 매일매일을 살았구나. 내가 사는 게 딱 오늘 같았구나.







그들 가운데 하나가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돌아와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하게 되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사람이 없단 말이냐?"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눅17:15-19, 쉬운 성경]




아이에게 읽어주는 어린이 큐티책에 예수님께서 문둥병 환자 열 사람을 치료해 주셨는데 오직 한 사람만이 돌아와 감사를 드렸다는 말씀을 보며, 나는 몇 번이고 그 페이지를 계속하여 반복하여 읽었다.


정말로,

정말로 잊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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