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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달 Sep 29. 2020

9월 28일, 월요일 휴가

도망친 여자, 따릉이,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월요일 휴가를 냈다. 월, 화 연속해서 낼까 싶었는데 연휴 전에 처리할 일도 있어 하루만 냈다. 요새는 거의 금요일 오후 반차만 냈는데 그럴 때엔 노는 게 아니라 멍하니 번아웃을 달래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아이씨 더 이상 못하겠다. 집에 갈래!라는 기분으로 금요일 오후, 회사를 나온다면 월요일 연차는... 주말에 못 논 것 좀 놀아볼까, 하고 여유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시작은 서울극장에서 홍상수 '도망친 여자'를 봤다. 최근엔 부쩍 명절 즈음에 홍상수 영화를 개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 추석이라고 놓칠 순 없지. 개봉하는 곳이 많지 않아 휴가 날 가려고 마음먹었다. 서울극장은 월요일, 금요일이 멤버십 데이인데 월요일엔 1인 6,000원, 금요일엔 2인 10,000원이다. 언젠가부터 아내는 홍상수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눈치라 혼자 갔다. 서울극장은 훌륭한 게 텀블러 이용하면 탄산음료가 1,000원이다. 게다가 영화 이벤트로 도망친 여자 포스터도 받았다. 새로 생긴 상영관인지 2층 스페셜관에서 봤다. 결혼 전 월요일 멤버십 데이 이용해 혼자 영화 보고 집에 올 때가 종종 있었는데 신기한 건 그때 저녁에 본 영화 관객 수보다 어제 정오 무렵 본 영화 관객 수가 더 많았다. 연휴 근처인데다 도망친 여자를 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기에 그런 것 같다. 영화는 무척 좋았다. 영화를 보고 브런치에 죽 글을 썼다가 발행 취소를 눌렀는데 다시 읽어봐도 스포투성이에 주절 주절 써서 공개는 못할 것 같다. 한 문단 정도는 괜찮겠지. 

'송선미는 소리 지르고 웃고 밥을 먹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실수로 불러야 할까. 하룻밤을 허락한 것? 시인에게 소리 지른 것? 그 집에 들어온 것? 실수는 그 후에 결론이 나며 우리는 끝까지 가봐야 실수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영화 예술은 기승전결이 있다. 하나의 삶, 하나의 세계를 통찰할 수 있게 하며 어떤 선택이 실수였는지 파악할 수 있다. 홍상수의 영화는 그러한 총체성을 보기 좋게 쪼갠다. 긴가민가 고개를 젓게 만드는 영화, 그건 우리 생활의 한 부분 같지만 그것보다 훨씬 깨끗하고 명징한 생활의 발견 같은 영화다.' 

집에 오니 아내는 작업을 마친 후 개운한 얼굴이다. 함께 따릉이를 타고 금호동에 있는 '프루스트의 서재'란 책방에 놀러 가기로 했다. 집 근처 하천에는 따릉이가 많아 골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늘 따릉이를 타면 조금씩 조금씩 안장이 낮아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최대한 안장을 높여야 내릴 때에도 불편함이 덜하다. 



자전거를 내리니 유치원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아이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데 조카가 태어나고 아주 조금 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조카만 귀엽지 시끄럽게 우는 다른 아이들이 좋은 건 아니지만. 

금호동은 과거 좋아하던 밴드 데이드림의 금호동 무지개 때문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던 곳인데 역시 뭔가 느낌이 편했다. 프루스트의 서재를 찾아가기 전 근처 카페에서 쉬었다 가려고 좀 걸었다. 



언덕이 많았다. 아내는 검색을 했는지 아우프글렛이란 곳에 가자고 했는데... 음, 주말에는 줄 서서 마시는 곳이라는데 다른 의미로 깜짝 놀랐다. 처음 딱 들어갔을 때 밖에서 마시는 사람들이 있어서 왜 굳이 하고 안에 들어갔는데 지하에 가본 순간 이해가 됐다. 지하라 그런지 공기는 퀴퀴해서 가슴이 답답하고 기침이 날 것만 같았다. 아무리 커피 맛이 좋아도 이건 아니다 싶어 아내랑 가게를 나왔다. 그런데 어린 친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어두운 지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와 나는 진짜 힙한 감성 이해 못 하겠다. 아내한테 나는 신세대라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아무도 신세대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고 해서 쓴웃음을 지은 적 있다. 그래도 suede의 new generation 노래처럼 딱 그 멜로디 같은 신세대가 되고 싶었었는데. 

그곳을 나와 좀 걷다가 위 더 커피라는 곳에 갔다. 창이 많아 햇볕이 잘 드는 곳이었다. 라떼가 꽤 맛있었고 아내는 차를 시켰는데 티백이 터져 말했더니 다시 타주셔서 고마웠다. 평소에는 쇼핑몰 그런 데서 대관을 해서 촬영을 많이 하나 보다. 창조경제... 



이번 추석엔 형네 식구와 어머니 아버지가 우리 집에 모인다. 아내와 내가 (주로 아내겠지) 음식을 준비해야 해서 무척 부담스럽다. 코로나만 아니면 외식하자고 하겠는데... 여하튼 그래서 금호동에서 청량리 시장 가서 채소 등등을 사려고 갔는데... 그래도 주말보다는 괜찮겠지 하고 갔는데 정말 사람이 많았다. 그 와중에 현금이 없어 옆에 있는 우리은행에 가서 돈을 뽑아온다고 아내가 갔는데 아내의 카톡으로는 백 명 정도 줄 서있다고 했다. 꽤 긴 시간 후에 곧 자기 차례라고 하는데... 자기 앞에서 기계가 고장 났다고 한다. 뭔가 짜증이 나서 근처 롯데마트에 가서 채소를 샀다. 



물론 청량리 시장을 좋아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고 그분들이 기동성이 좋지 않아 사람에 둘러싸여 쇼핑을 할 것만 같았다. 쾌적한 롯데마트에서 비싼 값으로 양파 등등을 사서 집에 왔다. 



뭔가 많은 일을 한 날이었다. 

저녁엔 책 좀 읽을까 해서 몇 년 전 민음 북클럽 할 때 받은 깊은 강을 펼쳤는데 분위기가 너무 쳐지는 것 같아 덮고 유튜브 좀 보다 잤다. 

왜 이렇게 책 읽는 게 힘들까. 그렇다고 영화를 한편 볼 지구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티브이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번 연휴엔 다시 독서 루틴을 되찾는 게 목표다. 

깊은 강은 엔도 슈사쿠 작품 세계의 집대성이라고 한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영혼의 재탄생을 그리면서, 현대인이 마주치는 삶의 공허함을 냉정하게 분석했다고 퍼블리셔스 위클리에서 소개했다. 흠, 올 연휴엔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성공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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