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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Apr 23. 2017

위대한 링컨도 뇌물을 썼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 뇌물과 선물 4

대통령이 자금을 모으는 이유는 '평화적 정권교체'를 중요하게 여겼던 현행 헌법이 만들어 낸 '단임제'가 주는 피해다.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것은 글자 그대로 희망사항일 뿐이다. 현직에서 물러나는 순간 그 영향력은 급속히 축소될뿐더러, 새 정권의 감시로  돈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노태우 대통령도 전두환 대통령처럼 재벌들에게 돈을 모았다. 재벌들을 회사 규모에 따라 3등급으로 구분해 사세에 따라 정치자금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퇴임 후 영향력을 가지려돈을 풀어온 적극적인 전 대통령과 달리 쓰지 않고 모아두었다. 아마 자금집행에 대한 계획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실시한 금융실명제는 대통령 비자금의 존재를 어둠 속에서 끌어내었다.     


“신한은행 302-38-001672. 잔액 128억 2700만여 원.  

이 계좌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비자금으로 조성된 것입니다. 이 돈은 4천억 원에 이르는 노 전대통령의 비자금 일부에 불과합니다.”     


국회 본회의장은 이 말 한마디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박계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장의 예금계좌 사본을 흔들며 말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비자금의 실체가 공개된 순간이었다.      


한 달 뒤인 11월 1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전격 구속되었다. 그리고 비자금은 모두 압수당해 국고에 귀속되었다. YS의 금융실명제가 그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노대통령 아들 노재헌 씨는 이에 대해 “허트루 쓰지 않고 큰 일에 제대로 쓰기 위해 그런 것인데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과 달리 정치자금을 쓰지 않고 모아만 두었다. 그래서 그 자금들은 적발되는데로 환수되었고, 사둔에게 맡겨둔 자금까지 다 모아서 우여곡절 끝에 추징금을 완납했다.      


박계동 의원이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정말 제보였을까, 아니면 3당 합당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불완전한 정치지형을 혁파하려는 청와대의 통보 때문이었을까.        


통치는 당근과 채찍이다. 중앙정보부가 의원들에게 협박과 채찍을 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당근인 것이다.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기업에게서 정치자금을 모으기도 앞으로는 어려워질 것이다. 당근조차 쓰기 어려운 정치는 설득과 이해, 명분으로 해야 하는데 한국 정치가 그만큼의 수준 높은 궤도에 오르려면 아직도 수많은 피와 눈물이 필요할 것이다.


정치권의 협력과 조용한 개혁을 위해서도 통치자의 당근은 필요하다.      

위대한 링컨 대통령도 헌법을 개정해야 노예해방이 가능했기에 의회에서 야당 의원들을 매수하기 위해 뇌물을 동원하라고 했다. 뇌물은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지만, 그것을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썼기에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정치는 앞으로 이조차 통하기 어렵게 생겼다. 통일을 위해 북한과 대화하려는 자금 역시 통치행위로 보지 않는다면 이 또한 북한의 독재자에게 보내는 뇌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국가 전체의 상황을 놓고 결정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재임 시의 그 결정은 법률에 구속되지 않는 ‘통치행위’다. 청와대에는 대중에게 공개할 수 없는 국가의 안위에 관한 정보나 문제가 총집결되기에 대통령이 국가존립과 번영을 위한, 그 필요에 따른 행위나 결정을 단순히 일반인의 시각으로 보거나 재단할 수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기 전 특검과 헌법재판소에 출석해 개인의 입장을 떠나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 국민이 납득하고 안 하고를 떠나 반드시 통치행위에 대해 설명했어야 했다. 국민을 설득했어야 했다. 


 이건 최순실의 국정농단과는 별개의 사안이다.  대통령의  통치행위의 한계와 범위, 개념 설정을 하는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정치적 공격을 하는 좌파의 선동이나 ‘박근혜를 엮는 정치기획’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공언하고 특검법에 서명한 법에 의한 조사도 받지 않았고, 해명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으로서 당당했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은 정치적으로도, 법률적으로도 아쉬움이 많은 사건이었다. 탄핵사건을 정치적인 특검과 정치적인 재판으로만 규정해 특검과 헌재에 출석도 안 했다.  법치주의를 지켜야 할 모범이자 최고 통수권자의 법률 무시, 헌법 무시로 파면이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해 온 일에 대한 정당성도, 정치성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향후 이 나라를 통치할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존립근거조차 만들지 못했다. 개인으로도 대통령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 재판이라고 규정,  법률적  대응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정치적 대응을 하는 변호사에게 탄핵사건을 맡긴 채  자신의 입장을 공표하지 않은 행동은 훗날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탄핵사건에 대해 대통령으로서도 개인 박근혜 자신을 위해서도 입장을 공표했어야 했다. 훗날 역사에서도 그녀를 이해하고 변명해 줄 근거조차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의 행동이 줄 엄청난 악영향에 대해서는 정책학에 나오는 말 한마디로 대신한다.

     

“공표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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