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아트(digital art)는 컴퓨터 알고리즘, 네트워크, 인공지능, 빅데이터 같은 디지털 기술을 예술 창작의 핵심으로 사용하는 작품이나, 또는 그러한 작업을 만드는 과정을 통칭하는 말이다. 지금까지 본 연재를 통하여 디지털아트의 다양한 형태 즉, 인공지능아트, 로봇아트, 알고리즘아트, 빅데이터아트, 넷아트 등을 소개하였으며, 나아가 디지털아트를 구성하는 환경들 가령, 대체불가능토크(NFT)이나 가상박물관 등을 설명하였다.
디지털아트에 대한 통일적인 규정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1970년대 이후 컴퓨터 아트와 멀티미디어 아트, 미디어 아트라는 용어들이 서로 경합하고 있다. 디지털아트를 포함한 뉴미디어 아트는 기술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예술장르를 새롭게 만들기도 하고, 기술간 융합으로 전혀 다른 장르를 생성하기고 한다. 디지털아트의 다양성과 혼종성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예술전반의 중요한 특징이다. 오늘날 인간의 상상력과 사상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해졌으며, 인간 욕망과 감정에 대한 고찰도 정밀하고 깊어졌다.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상상력으로 구현하는 현대 예술도 다양성, 혼종성, 자율성, 관객과의 상호교감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된다. 이러한 특성은 어떤 기술과 미디어를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양해진 인간의 욕망, 감정, 사상을 얼마나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시대적 현상을 반영한 결과다.
상상력을 토대로 창조적 활동을 통하여 미적 대상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활동을 예술이라고 할 때, 디지털 기술은 이러한 예술 활동을 지원한다. 디지털 기술은 독자적인 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오브제를 만들기도 하지만, 기존 예술 장르인 회화, 조각, 설치 등 기존 미술 작업 방식을 보조하면서 예술의 혁신성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디지털 아트에 대한 찬반 논의
디지털 아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데이터, 인공지능, 3D 프린팅, 가상현실, 블록체인 같은 기술환경이 고도화되면서 기술은 예술을 표현하는 도구라는 인식을 넘어 예술의 창작, 가치, 유통을 결정하는데 이르렀으며, 이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도 함께 커지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지난 8월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의 디지털 아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라는 작품은 게임 기획자 제이스 M.앨런이 AI 프로그램 '미드저니'를 활용해 만든 것이다. 이보다 앞서 2018년 10월에는 역사상 최초로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제작한 초상화 <에드몽 드 벨라미(Edmond de Belamy)>가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예상 낙찰가 1만 달러를 훨씬 넘는 43만 2천 달러(약 5억 원)에 낙찰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에드몽 드 벨라미>는 파리에 있는 스타트업 ‘오비어스(Obvious)’가 개발한 인공지능을 사용하여 그린 작품이다.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2022)과 <에드몽 드 벨라미의 초상>(2018)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의 예술성에 대한 평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린다. 인간이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경험하고 학습하고 또 영감을 얻는 것과 같이, 인공지능만의 창의성을 증명할 시대가 왔다며 환호하는 사람들과, 인공지능 아트는 인간이 선택한 학습 데이터를 훈련한 것일 뿐 스스로 만들어낸 창의성으로 볼 수 없다는 사람들이 뜨거운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러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볼 때, 인공지능 작품이 예술이 되려면 몇 가지 우선 해결해야 할 질문들이 있다. 인공지능은 본질적으로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의 핵심은 미메시스(모방)다. 그러므로 ‘인공지능 아트는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의 일상 언어문법을 오독한 데서 오는 가짜 물음이다. 즉, 언어의 조합은 되지만 올바른 질문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만일 사자가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비트켄슈타인의 말처럼, 인공지능은 인간의 문법을 흉내 낸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예술에 관한 정의를 다시 내리기전에는 미메시스하는 인공지능 작품이 예술 본성에 도달했다고 보기 어렵다.
인간 흉내내기에서 넘어 언젠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기계가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특이점은 인간의 기억, 의식, 마음에 대하여 완전한 이론과 검증된 실험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다. 아직까지 기억, 의식, 마음, 뇌의 작용에 관한 복잡성은 커다란 미지의 영역에 있다. 뇌에 대한 온전한 작동원리를 밝히지 못한 상태에서 인공지능은 불완전한 인간을 닮은 실험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을 포함한 디지털 아트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내고 새로운 관점과 나아갈 길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아트가 나아갈 길
우리는 현재 디지털아트로 만든 작품에 감탄하는 단계를 넘어 인간의 예술 활동과 새로운 관계 정립이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 디지털아트 기술이 큰 발전을 이루어도, 인간 예술가의 고유 영역인 호기심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호기심은 불완전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는 인간의 운명이다. 디지털 아트는 이러한 인간 예술가의 운명을 조력하고 협업하는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사진이 특별한 예술 장르로 정착했듯이 학습 알고리즘 기반의 인공지능 아트나, 데이터 뭉치들 속에 인간 욕망의 흔적을 찾아내는 데이터아트도 인간의 혼과 생명을 표현하는, 혹은 흉내 내는 예술 장르로 안착할 것이다. 처음 사진기가 나왔을 때도 사람들의 반응도 지금과 비슷했다. 19세기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세상에 보이는 대상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화가만이라는 믿음은 뒤집혔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화가의 기술이 결코 사진의 기술을 따라가지 못해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으나, 화가의 영역은 사진의 영역과 다르다는 것이 곧 증명되었다. 화가는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심상에 집중했고 형상을 분해, 결합, 파괴해 가면서 새로운 미술 사조를 이끌었다. 바로 현대미술이 출발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디지털 아트는 새로운 매체로서 예술가에게 창의적 발상을 돕는 신선한 자극제이자 창작 노동을 줄여 주는 조력자이다. 최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협업 사례는 다채롭고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나아가 디지털 기술은 작가와 기술의 협업뿐만 아니라 작가와 작가를 연결하여 광범위한 협업을 만들고 있다.
중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란 수젠 청(Sougwen Chung)은 다분야 아티스트이자 연구자로 인간과 시스템 간의 역학을 탐구하며, 인간과 기계 협업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그는 캔버스 위에서 작가가 보이는 손동작을 따라 하는 로봇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드로잉 연습으로부터 로보틱스와 미술의 조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손으로 문양을 만드는 작업, 근육 기억 및 신체적 본능과 창작 과정에 대한 정보를 로봇에게 제공한다. 작가는 최근 인간과 비인간의 협업을 탐구하는 스튜디오 Scilicet 을 열어 예술가, 과학자, 디자이너와 함께 협업과 제작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키울 수 있는 공간을 구축하고 인간과 기계의 협업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로봇과 협업하는 수웬 청(Sougwen Chung) 그의 작품 Artefact Nº 8 (2021), https://sougwen.com/
음악도 디지털 기술과 예술의 협업이 활발한 분야다. 2020년 1월 73세의 세계적 작곡가 빌 폰타나는 방탄소년단(BTS)과 협업해 영국 런던을 시작으로 독일 베를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미국 뉴욕 그리고 한국 서울까지 전 세계 5개국 22명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석 달간 ‘CONNECT, BTS’라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덴마크 출신 작가 제이콥 스틴슨(Jakob Kudsk Steensen)은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와 손잡고 ‘카타르시스’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카타르시스’에서 그는 다양한 자연의 생태를 3D로 가상 공간을 구현한 뒤 실제 채집한 사운드와 함께 구현했다. 그리고 인터넷망을 통해 전세계 누구라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구축했다.
한편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토마스 사라세노(Tomas Saraceno)는 CONNECT, BTS 프로젝트에서 거대한 열기구 ‘에어로센 파차’를 남미의 소금사막인 살리나스 그란데스 상공에 띄웠다. 그는 화석 연료, 태양 전지판, 배터리 그리고 열기구에 사용되는 헬륨조차 없이 우리가 숨쉬는 공기와 하늘의 태양광으로만 열기구가 날아오를 수 있도록 과학자들과 협업했다. 살리나스 그란데스는 리튬이 무차별적으로 채굴되고 식수가 오염되는 등 다양한 환경 이슈를 가진 곳이다. 토마스 사라세노는 이곳에서 쏘아 올릴 작품에 잉카 제국의 우주관에 등장하는 시간과 공간 개념인 ‘파차(Pacha)’를 넣은 것은 환경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앞선 연재의 인공지능아트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에서도 디지털 기술과 예술의 협업 프로젝트가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극사실주의 화가인 두민과 펄스나인의 AI화가인 ‘이메진 AI’ 의 협업한 독도 작품이 대표적이다. 독도 이미지를 수면을 경계로 지상 독도는 두민 작가가 서양화 기법으로 표현하고 수면에 비치는 독도는 이메진AI가 동양화 기법으로 표현했다. 교차되는 수면 경계선은 두민 작가가 동서양 혼합 표현 후 크리스탈레진을 이용해 실질적인 수면의 질감이 느껴지도록 코팅작업을 더해 최종 완성했다.
경험과 공감이 중요해진 오늘날의 환경 속에서 기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다만 혼자가 아닌 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그 결과물을 경험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올바른 디지털 아트 협업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디지털 아티스트는 기본적인 예술적 자질과 함께 테크놀로지에 대한 다양한 접근 통로를 열어두어야 한다. 협업의 수단으로 기술을 익히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다른 영역의 작가들, 과학자, 컴퓨터공학자, 기계공학자 등과도 활발한 교류하며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은 새로운 매체로서 예술가에게 창의적 발상을 돕는 신선한 자극제이자 창작 노동을 줄여 주는 조력자이다.
한편 기술 자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는 것도 디지털 아트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예술은 인간이 포용적인 태도로 어떤 위치에서 세상을 관찰해야 하는지, 그리고 인간의 생각이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알고리즘 등 테크놀로지의 합리성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반추하게 만든다. 디지털 초연결사회가 가져온 역설적인 외로움, 인간과 로봇의 공생, 인간과 미생물의 공생, 사회적 약자를 위한 디자인, 지속 가능한 에너지, 해양 생태계 등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점들을 찾아내는 것이 또한 디지털 예술가의 소명이 되어야 한다.
결국 예술과 기술의 결합은 인간 그리고 인간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디지털 기술 자체가 아닌 그것을 이용해 무엇을, 어떻게 해석해서 새로운 의미와 경험을 만들어 낼 것인가를 고민하며 단순히 기술적 협업 차원을 넘어서 예술과 인간, 그리고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디지털 아티스트에게 요구된다. <디지털아트 현재와 미래.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