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예술 특징 하나는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며 사용하는 기술마다 새로운 예술 장르를 쉽게 형성한다는 점이다. 아름다움의 표현이라는 고전적인 예술 관념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기술뿐만 아니라, 인간이 느끼는 놀라움, 흥미로움, 슬픔, 떨림 같은 감각을 유발하는 기술들도 예술이라는 명칭을 부여한다. 그렇게 때문에 미디어 아트라는 광의적이고 모호한 개념 속에서 개념상으로 중첩되는 인공지능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 키네틱 아트, 알고리듬 아트, 프로젝션 매핑, 로봇 아트, 디지털 아트 같은 용어가 혼합되어 쓰이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다. 다양성, 혼종성, 복잡성이 강조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문화현상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양이 파편화되고 개별화되었다는 반증이며, 아이디어를 창발하는 인간 고유의 영역만 남기고 모든 표현의 영역은 다양한 기술적인 외삽으로 가능한 시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알고리듬 아트 역시 아이디어를 창발하는 인간 고유영역에 도전하는 현대 컴퓨터 아트 중 하나이다.
알고리즘 아트의 출발
알고리즘 아트는 문제 해결을 위한 일정한 규칙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예술이다. 컴퓨터의 자율적인 시스템에 의해 생성되며 시스템 이론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컴퓨터 생성 아트라고도 하며 알고리즘에 의해 디자인이 생성된다. 아무리 단순한 알고리즘이라도 너무 많은 계산이 필요하므로 컴퓨터에서 실행될 수 밖에 없다. 최종 출력은 일반적으로 컴퓨터 모니터에 표시되거나 래스터 유형의 프린터, 혹은 플로터를 사용하여 그려진다.
용어가 다소 생소해 보이지만 알고리즘 아트는 1960년대부터 시작한 꽤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알고리즘 아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과정에서 나타난 오류와 같은 우연적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디지털 컴퓨터를 예술 창작에 사용하려고 노력한 작가 마이클 놀(Michael Noll)은 1962년부터 벨연구소에 근무하는 그는 동료의 프로그래밍에서 발생한 ‘버그’ 기호로부터 새로운 예술을 제작하였다. 그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일종의 패턴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으로부터 예술과의 접점을 만들어갔다. 그의 작품 <가우시안 정방형>은 가우스분포를 활용해 100여 개 점들의 우연한 배치를 시도했고, 99개의 선들이 아래에서부터 차례로 이어가도록 작성한 것이다. 작품의 가장 윗부분은 마치 반사하는 거울처럼 다가오는 선들을 아래로 튕겨냈고, 이로써 선들이 거칠게 중첩된 작품을 완성하었다. 마이클 놀은 그는 작품에 지속적으로 개입하여 자신의 미적 요구에 따라 작품의 범위와 밀도를 변화시키면서 그 속에서 우연하고 자유로운 형상 등을 발생시키려 했다. 나아가 놀은 작품을 통해 알고리즘 예술의 잠재적 역량을 확인하면서 저작권 등록을 시도하였다.
<가우시안 쿼드라틱>, 1962-1963, 마이클 놀(Michael Noll), IBM 7090 로 만든 패턴
알고리즘 아트에 관한 이러한 흐름은 스스로를 ‘알고리스트(Algorist)’라 명명하며 과거의 예술 작품을 새로운 알고리즘 아트로 탄생시킨 찰스 수리(Charles Csuri)의 작업에서 더욱 구체화 되었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활용하여 당시 회화적으로는 불가능했던 해체적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그는 컴퓨터가 이미 존재하는 하나의 테마를 대상으로 가능한 다양한 변주들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컴퓨터가 예술에 들여온 새로운 전망을 발견했다.
<Sleeping Gypsi>, Charles Csuri : 헨리 루소의 ‘잠자는 짚시’의 알고리즘 버전
알고리즘 아트의 변주
알고리즘 아트는 1980년대 이후 다양한 진화를 겪는다. 개체 관찰 결과로 얻은 규칙성을 작품에 반영하는 클이그 레이놀즈(Craig Raynolds), 르네상스 회화같은 수학적 원근감과 비례성으로 이슬람의 기하학적 패턴에 알고리즘을 적용한 로만 베로스트코(Roman Verostko)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또한 알고리즘 아트의 대표적인 갈래인 프랙탈 아트도 본격적으로 출발하였다.
1986년 크레이그 레이놀즈(Craig Raynolds)는 새떼와 물고기 떼의 군집 운동을 모델화하는 방법으로 한 개체의 운동 규칙을 세 가지(분리, 정렬, 결집)로 구분하여 제시하고 그 운동을 발생하게 하는 지각 범위를 지정하여 전체 운동을 효과적으로 설명하였다. 실제로 새떼가 이와 같은 규칙으로 움직이는 지와는 별도로, 이 알고리즘은 새떼의 군집 운동의 복잡한 패턴을 효과적으로 모델화한다. 이 알고리즘은 새떼의 운동 패턴뿐만 아니라 물고기 떼 등의 군집 운동을 묘사할 수 있기 때문에,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영화 CG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새떼 모델 flocking model>, 1987, 크레이그 레이놀드(Craig Raynolds)
로만 베로스트코(Roman Verostko)는 알고리즘 코드 생성 이미지를 만드는 미국 예술가이자 교육자다. 베로스트코는 1960년대부터 활동한 알고리즘 예술가로서 독자적인 패턴 양식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예술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알고리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였다. 그는 알고리즘 아트의 기원을 선사시대 바구니 짜기까지 소급하였으며, 드로잉뿐만 아니라 작곡가의 악보, 안무가의 노트 등 예술 전반을 일정 패턴을 지닌 알고리즘으로 해석하려 한다.
<#824>, 데스몬드 폴 헨리(Desmond Paul Henry)
<비행하는 새 A Bird in Flight> 2016, 하미드 나레리 예가네 (Hamid Naderi Yeganeh)
프랙탈 아트
프랙탈 아트는 알고리즘 아트를 대표한다. 프랙탈 아트는 단순한 기하학 문양들을 디지털 이미지화 시켜 계산된 알고리즘을 통해 만들어지는 예술이다. 1980년대 중반 디지털 아트의 발전으로 뉴 미디어 아트 분야의 한 종류로 수학적 계산의 아름다움을 통해 추상 예술을 표명한다.
프랙털(fractal)은 폴란드 출신의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Benoît Mandelbrot)가 처음으로 쓴 용어로서, 작은 조각의 모양이 전체와 비슷한 기하학적 형태로 끝없이 반복되는 구조를 의미한다. 프랙털 구조의 이러한 특징을 자기 유사성(self similarity)이라고 하며, 그 어원은 ‘조각난’ 혹은 ‘파편의’라는 뜻의 라틴어 ‘fractus’에서 유래했다. 프랙털 구조는 풀잎, 나무껍질, 눈송이 등 우리 주변의 자연 현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프랙털 아트(Fractal Art)는 프랙털의 구조와 형태적 특징을 기하학적 조형으로 표현하는 예술로서, 주요 작가로는 영국의 데스몬드 폴 헨리(Desmond Paul Henry)와 윌리엄 래탐(William Latham), 미국의 케리 미첼(Kerry Mitchell), 이란의 하미드 나레리 예가네(Hamid Naderi Yeganeh),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진즈버그(Carlos Ginzburg), 미국의 빅키 브라보 미첼(Vicky Brago Mitchell), 그리고 캐나다의 뮤지션 브루노 데자치오(Bruno Degazio) 등이 있다.
프랙털 아트는 형태적으로 자기 유사성, 무한 반복, 교차와 회전 등의 특징을 갖고 있으며, 이는 자연과 사물의 질서, 조화, 통일성과 같은 요소를 조형적 언어로 형상화하는 원리가 된다. 대표적인 프랙털 도형으로는 망델브로 집합(Mandelbrot set)과 쥘리아 집합(Julia set)이 있다.
한계와 나아갈 길
알고리즘 아트는 우연히 낳은 결과물이 인간의 창조성을 대신한다는 공격에 시달린다. 알고리즘 아티스트는 ‘예술가의 추방’ 또는 ‘관념의 예술에서 관념의 추방’이라는 혐의에 항상 시달린다. 그러므로 알고리스트(Algorist)는 알고리즘 지시문(프로그램 코드)만을 남겨놓을 것이 아니라 작품에 지속적으로 개입하여야 한다. 자신의 미적 요구에 따라 작품의 범위와 밀도를 변화시키면서 그 속에서 우연하고 자유로운 형상 등을 발생시키며, 원하는 이미지가 생성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알고리즘 아트는 컴퓨터의 프로그래밍 알고리즘만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알고리즘 아트 작품은 작가의 영감과 시대정신이 수학, 과학, 철학, 미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 대한 이해와 연계를 바탕으로 컴퓨터의 디지털 세계 안에서 창조된다. 그러므로 알고리스트가 실제 알고리즘 아트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익히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역량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