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네틱 아트(Kinetic Art)는 ‘동작’을 의미하는 ‘Kinesis(=movement)’와 ‘Kinetic(=mobil)’라는 그리스어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움직임을 본질로 하는 예술이다. 키네틱 아트는 물리적 세계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작품을 지칭하지만 때로는 시각적으로만 움직이는 옵 아트(Optical Art)나 지각적 추상(Perceptual Abstraction)처럼 ‘동작’이 포함된 모든 작품을 광범위하게 부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옵 아트와 키네틱 아트의 중요한 차이점은 옵 아트가 회화적으로 운동의 인상을 주는 것과는 달리 키네틱 아트는 실제 운동을 사용해서 변형과 환각을 만든다는 점이다. 키네틱 아트는 실제 물리적 움직임을 포함하는 조형예술로써 작품자체의 움직임이건 관객의 움직임이건 반드시 실제 운동이 있어야 한다.
‘키네틱 아트’는 물리 세계에서 상하좌우로 미묘하게 변화는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중력, 마찰, 에너지 등의 물리적 법칙이나 과학적 원리를 이용한 동력 장치를 활용한다. 가벼운 금속이나 나뭇조각을 가느다란 철사, 실에 매달아 공기의 진동에도 평형을 유지하면서 상하좌우로 움직이는 모빌이 대표적인 키네틱 아트다. 전통적인 아날로그 키네틱 아트의 출발은 그 역사가 20세기 초반까지 올라간다. 당시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큰 관심을 끌었던 미래파(futurism, 未來派)와 다다(dadaism)의 예술운동에서 파생되었다.
아날로그 키네틱 아트
최초의 키네틱 아트는 1913년 프랑스 미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선보인 ‘자전거 바퀴(Roue de bicyclette)’다. 그는 등받이가 없는 나무 의자 위에 자전거 바퀴를 거꾸로 올려놓았다. 관람객이 바퀴를 돌리면 바퀴살 모습이 사라졌다가 서서히 멈추면서 다시 제대로 보이게 되는 원리인데, 단순한 듯 보이는 이 작품은 당시 ‘조각은 움직이지 않는다’ 라는 고정관념을 깨며 주목을 받았다.
<움직이는 자전거>,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913 1922년에는 러시아의 예술가 나움 가보(Naum Gabo)가 ‘키네틱 조각(Kinetic Sculpture)’을 발표하였으며, 1930년대에는 미국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가 ‘움직이는 오브제’라는 이름으로 여러 개의 기하학적인 형태의 철사를 매단 후 다양한 움직임을 선보인 작품을 선보였다. ‘모빌’로 불리는 이 작품은 1960년대까지 키네틱 아트의 부흥을 이끄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61년 스웨덴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에서는 폰투스 훌텐(Karl Gunnar Vougt Pontus Hulten)에 의해 조직된 ‘예술에서의 움직임(Movement in Art)’이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개최되었는데, 이 전시회에는 85명의 작가 작품 233점이 전시된 최초의 국제적 규모의 키네틱 아트 전시회였다.
나움 가보(Naum Gabo)와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스튜디오 아날로그 키네틱 아트는 ‘현대의 다빈치’라 네덜란드 예술가 테오 얀센(Theo Jansen)에서 정점을 이룬다. 물리학을 공부한 그는 예술과 과학, 공학의 영역을 융합한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엔진이나 모터 같은 동력장치 없이 바람을 이용해 저절로 움직이는 플라스틱 ‘해변 동물(strandbeest)’이 대표작이다. 테오 얀센은 1990년 이후 30년동안 ‘해변 동물’ 작품들을 설계 및 제작했다. 자가 동력 해변 동물들은 생명이 깃든 듯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본래 얀센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홍수 위험을 해결하고자 해변 동물들을 고안했다.
테오 얀센(Theo Jansen)의 해변 동물(strandbeest) 시리즈 디지털 키네틱 아트
전통적인 키네틱 아트는 물리적 법칙과 과학적 원리를 활용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물리적 세계 안에 통제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한계로 주춤하던 키네틱 아트는 21세기 들어서면서 컴퓨터 기술과 만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다양한 디지털 기술과 결합한 “디지털 키네틱” 작품들이 등장하여 광범위한 사용자 개입을 허용하는 인터렉티브 아트 특성과 중첩하며 예술 표현력을 한층 증폭시켜가고 있다. 쇠퇴하던 키네틱 아트는 컴퓨터 활용을 통해 현대적 기계 메카니즘과 결합하면서 다양하고 복잡한 움직임을 창조할 뿐만 아니라, 아날로그적 감성 표현 공간을 확장하여 관람자와 상호작용을 한층 심화된 관계로 이끌어 간다.
키네틱 아트가 디지털의 영역으로 확대된 경우를 보여 작품으로 타케시 무라타(Takeshi Murata)의 <Melter 3-D>가 있다. Melter 3-D는 정지된 그림의 빠르게 연속적으로 돌림으로써 움직임의 일루션을 만드는 장치인 조이트로프(zoetrope) 유형으로, 조각 애니메이션 설치 작품이다. 일부 라이트 장치효과를 활용하여 3D 개체가 회전하면서 마치 스스로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운동 효과를 만든다. 무라타는 물리적으로 구체화하기 전에 외계인 알처럼 보이는 유기적 구(球)체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할리우드 CGI 마스터 제작자 및 기계 엔지니어와 수개월을 컴퓨터로 사전 작업을 수행했다. 이를 통해 고유한 맥박과 생명을 가진 듯한 영감을 주는 작품을 보여준다.
, 타케시 무라타(Takeshi Murata), 2014 최근 디지털 키네틱 아트는 미술관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건물이나 파사드 같은 우리의 일상공간에 설치되거나, 축제 같은 일상 활동 속에 작품으로 등장함으로써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미국의 조각가 안토니 하위(Anthony Howe)는 2016년 리우올림픽 개막식에서 브라질의 전통 철학과 올림픽 정신이 융화된 특별한 키네틱 작품이 선보였다. 불이 붙은 성화대가 서서히 하늘로 올라갈 때 공중에 커다란 금속 꽃이 경기장을 환하게 비추었다. 12미터 지름와 2톤 무게를 가진 이 거대한 조형물은 ‘태양’을 상징하는 키네틱 작품이다. 컴퓨터 프로그램 디자인과 레이저 가공으로 금속 조각을 만든 다음 정교한 움직임을 설계하였다. 태양이 빛을 뿜어내는 움직임을 통해 “인간에게 한계가 없다”라는 메시지를 선포한다.
*<Five sculptures in one of Barneys holiday windows> 2014, <Kinetic Sculpture for Rio Olympics> 2016, 안토니 하위(Anthony Howe), https://youtu.be/j4ViVTMqHM0
건물의 외벽을 화려한 LED로 수놓아 도시의 야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도 키네틱 아트의 소재로 사용된다. 미디어 파사드에 사용되는 대량 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양광 시스템을 무장한 친환경 미디어 파사드가 선보이고 있다. 2017년 제작된 애플 두바이 몰의 <키네틱 파사드>는 발코니 부분에 탄소 섬유스크린을 설치해 낮에는 햇빛을 차단하고 밤에는 전망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56m 길이의 전면테라스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키네틱 파사드 작품으로 미적 요소와 기능적 요소를 모두 만족 시킨다.
애플 두바이 몰 <키네틱 파사드>, 2017 한국에도 최우람이라는 세계적인 디지털 키네틱 아티스트가 있다. 주로 금속 재료와 LED와 같은 발광체를 사용하여 정교한 움직임을 설계하여 정말로 살아있는 듯한 기계 생물체를 만들어 낸다. 보통 작품을 위해 여러 명이 함께 작업을 수행하는데, 먼저 작가가 작품의 스토리를 만들고 컴퓨터로 작은 부품들까지 작품설계를 마치면 협업하는 작가들이 재료를 다듬고 조립하고, 마지막으로 엔지니어가 중앙처리장치(CPU)를 장착한다. 보통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1년6개월에서 2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Scarecrow>와 <Custos Cavum>, 최우람, 2016 한국의 젊은 키네틱 아티스트인 정승 작가도 주목할 만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1년 11월 정승은 <데이터의 굴절-디지털 오케스트라 Data Refraction-Digital Orchestra> 개인전을 통해 개발자, 공학자, 과학자와 식물 생육, 모터 제어, DMX 제어 코딩 등을 협업해 데이터로 수집한 식물의 성장과정을 시각, 청각, 퍼포먼스의 형태로 굴절해서 보여주었다. 기계적 움직임과 살아있는 생명체가 결합해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마치 생각하는 사람처럼 예측할 수 없는 변이를 만들어 낸다.
<Data Refraction-Digital Orchestra>, 정승, 2021
키네틱 아트의 미래
20세기 초반 서구 표현주의(Expressionism), 미래주의(Futurism), 다다이즘(Dadaism) 등과 같은 전위적인 예술운동에서 출발한 키네틱 아트는 한 세기를 지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등장은 전통에서 벗어난 다양한 실험의 가능성을 열었다. 자연 동력과 인간의 통제 한계를 넘어선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며, 다양하고 거대한 물리 에너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아티스트는 반도체, 전자석, 델타로봇, 컴퓨터 코딩, 태양광, LED, 네트워크 기술,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을 키네틱 아트에 접목한 작품을 선보이며, 기계주의 예술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관객, 작가, 작품의 관계를 전통에서 벗어나 새롭게 설정하고자 했던 키네틱 아트의 원래 출발 정신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미 충분히 ‘기계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어쩌면 인간-예술의 관계를 원래대로 해방하려는 새로운 ‘미래주의 선언(Manifeste de Futurisme)’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참고]
▪신재생에너지와 예술의 황홀한 만남 (2020)
▪예술과 IT – 키네틱 아트(Kinetic Art) (2016), 최우람.
▪데이터의 굴절-디지털 오케스트라 (2021)
▪홍주희 <네트워크 과학과 키네틱 아트 연구> (2022)
▪키네틱 디지털아트 설치작품 <부유(浮游)>
▪키네틱 아트의 동적(動的)표현 특성에 관한 연구 (나상세,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