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득 혼자임이 느껴졌다
그와 이혼을 결심했던 계절 이후 1 년이 흘렀다.
다시 봄.
내 인생은 달라진 게 없었다.
그와 이별한 뒤 혼자 살게 되며 자취의 기술이 부쩍 늘었다.
처음 혼자 살아보는 거라 자취 초반에는 꽤 신나 있었다. 리모델링을 하고 들어온 집을 취향에 맞게 꾸미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좋아하는 노란색과 초록색이 강조되는 커튼과 액자를 사서 거실에 포인트를 줘봤다. 아기자기한 소품도 놓고, 꽃을 사서 꽂아놓기도 했다.
밥을 차려 먹는 것도 소꿉놀이같아 즐거웠다. 즉석밥에 계란프라이, 김치만 먹는 단출한 밥상 이어도 굳이 예쁜 그릇에 옮겨 담은 뒤 사진도 찍어 봤다. SNS를 안 하다 보니 혼자 만족하는데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게 자취의 맛이었다.
"그래, 이렇게 사고 싶은 걸 큰 고민 없이 살 수 있으려고 돈 버는 거지." 라고 생각하며 즐거운 소비생활을 몇 개월 지속했다.
하지만 곧 공허해졌다.
집을 예쁘게 꾸며 봤자, 요리를 맛있게 해 봤자, 가끔 친구들을 초대해서 외로움을 잠시 잊어 봤자, 그때뿐이었다. 외로움은 잠시만 방심하면 나를 갑자기 덮치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 외로움의 실체는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혼자 살기 때문에?
이혼했기 때문에?
연애를 안 하고 있어서?
아마 모두 일부분 영향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장 큰 이유는 내 속마음을 아무 숨김없이 말할 수 있는 인생의 친구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혼 전엔 그 역할을 남편이 해줬다. 남편에게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다 말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의 외도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도 갑자기 당신이 바람피운 사실이 떠올라서 울고 화내고 싶은 순간이 많다고. 그런 말은 그에게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남편의 외도 때문에 결국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을 때도, 앞으로의 인생에서 가장 걱정되었던 건 돈 문제도 아니고, 노후 걱정도 아니고, 이 부분이었다.
인생의 반려자, 인생의 친구가 없어진다는 사실.
내가 그의 외도를 알고 나서도 5 년 넘게 이혼하지 않고 함께 살았던 이유 중엔 인생의 친구를 또 한 번 만나기 쉽지 않을 텐데 하는 두려움도 한몫했었다.
원래 힘든 상황이나 괴로운 마음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하는 걸 잘 못한다.
내가 말해봤자 그들이 그걸 해결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괜히 그들의 마음까지 힘들게 할까 봐 차라리 혼자 감내하고 이겨내려고 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엄마 아빠에게 진짜 이혼 사유를 있는 그대로 다 말하지 않았었고, 가장 친한 친구 역시 내 모든 사정을 알지 못했다.
이런 성격이 가끔 스스로도 답답할 때가 있다. 하지만 37 년에 걸쳐 형성된 성격이 그리 쉽게 변할 리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였다.
외로움을 계속 혼자 이겨내거나, 어디 한번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인생의 친구를 찾아 떠나거나.
다행히 난 꽤 세상에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이혼이라는 큰 산을 넘으며 제법 마음의 내공도 쌓여, 까짓 거 이제 못할 일은 없다 싶은 마음도 생겨났다.
그렇게 난 8 년 만에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여정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이 브런치북의 완결편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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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손을 꼭 잡고 이혼하는 중입니다>와 일부 이어지는 조니워커 시리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