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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워커 Nov 07. 2023

뉴요커는 신호등을 보지 않아

잠시 여권 검사가 있겠습니다

차가 안 오는데 왜 서있어야 해?


뉴욕에서 들은 가장 인상적인 한 마디는 뉴욕의 도로 위에서였다.




에리카는 20대 때 뉴욕에서 일했었다. 그때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친구들과는 지금도 자주 연락하며 지내는데, 이번에 우리가 뉴욕에 온다고 하니 친구들이 모두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다. 자기 친구들과 같이 만나는 게 혹시 내가 불편할까 봐 먼저 물어봐줬는데, 난 기꺼이 좋다고 했다. 원래 외향적인 성향이라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만나는 편이기도 하고, 진짜 뉴요커와 얘기해 볼 기회를 갖는 것도 흔치 않은 기회니까. 무엇보다도 에리카가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행복해할 거라 생각하니 그게 가장 좋았다.


처음 만난 에리카의 친구는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마야와 그녀의 남편 조아였다. 함께 브런치를 먹고 길을 건너면서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뉴욕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건 관광객밖에 없어."

"아니, 차가 갑자기 오면 어떡해?"

그녀가 차가 오는 방향을 힐끗 보더니, 안 오잖아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대답했다.

"차가 오지 않는데 왜 횡단보도에 서있어야 해?"

이 말은 뉴욕에서 들은 말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서울과 뉴욕의 다른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마디 같아서 더 그랬다.

그 말을 들은 뒤 길을 건널 때마다 사람들을 살펴보니 과연 그랬다. 뉴요커 중 그 누구도 횡단보도에 서있지 않았다. 힐끗 차가 오는 지만 확인하고, 빨간불이든 파란불이든 망설임 없이 길을 건너갔고, 어떤 차도 그런 보행자에게 클랙슨을 울리지 않았다.


뉴욕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메인 도로를 제외한 대부분의 길이 원 웨이(One-way)라는 거다. 대부분 일방통행이다 보니 건널목에서 사람들은 한쪽에서 오는 차만 살펴본 뒤 아무렇지 않게 횡단보도가 빨간불일 때도 길을 건넜다. 사람들이 그렇게 무단횡단을 일삼으니, 차량들도 그게 당연하다는 듯 속도를 늦추고 기다려주었다. 택시도 버스도 "빠아앙-!"하고 울리지 않는 거리라니. 이렇게 낯설고 신기할 수 없었다.

"에리카, 뉴욕에선 차들이 클랙슨을 잘 안 울리,"

빠앙!!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등 뒤에서 클랙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리니 차선을 갑자기 변경한 차를 향한 소리였다. 아, 사람에게만 안 울릴 뿐 차량과 차량 간에는 어림없었나 보다.




2001년 9월 11일.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빠가 거실에서 작은 브라운관 TV를 집중해서 보고 계셨다. 힐끔 쳐다보니 커다란 빌딩에 비행기가 날아와 부딪히는 장면이 나오고 있길래, '영화 보고 계신가?'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 교복을 갈아입은 뒤 다시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여전히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었다.

"아빠, 뭐 보세요? 영화 보시는 거예요?"

"미국의 트레이드센터가 무너졌대."

아빠의 말을 듣고 다시 화면을 보니, 속보 표시와 KBS 로고가 선명히 보이고 있었다. 뉴스에선 끝없이 그날의 영상과 현장이 나오고 있고, 그제야 아나운서들의 진중하고 무거운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난 지금도 그날 그 순간이 생생히 기억난다. 겨우 고등학생이던 내가 경험해 본 적 없고, 앞으로도 경험해선 안 될 끔찍한 순간. 내가 언젠가 뉴욕에 오게 된다면 꼭 그곳에 가서 추모하고 싶었다.

마야 부부와 헤어진 뒤, 곧장 향한 곳은 911 메모리얼 파크였다. 이번 여행에서 단 한 곳, 우리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지 않고 오직 고요히 묵념하고 바라본 장소. 구름이 껴있던 하늘이 잠시 파랗게 밝아오고 있었다.


RIP. 911 메모리얼 파크에서 만난 꽃 한 송이





아침에 만난 마야 부부에 이어 저녁엔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었다. 맨해튼 야경이 한눈에 보이는 Sky lounge에서 만나기로 해서 우리 한 번 한껏 꾸미고 가보자며 한국에서부터 옷을 가져왔었다. 뉴욕에 와서 Dress-up 하고 스카이라운지라니. 한국에서도 안 하던 짓을 여기서 하네 싶었다. 당연히 차려입을 옷 따위 가지고 있을 리 없었는데, 회사 친구가 자기 옷을 빌려주었다. 입고서 꼭 인증샷을 이런 포즈, 저런 포즈로 찍으라는 구체적인 요청사항과 함께.


우리가 방문한 곳은 UN본관 근처에 있는 Ophelia Lounge였는데, 엘리베이터를 타는 입구에 경호원이 앉아있었다. 앞의 방문자는 아무렇지 않게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우리가 타려고 하자 그녀가 우리를 막아섰다.


레이디스, ID 좀 보여줄래요?


오, 세상에. 30대 후반에 여권검사라니.

에리카는 한껏 기분 좋은 표정으로, "Sure."이라고 짧게 대답한 뒤 가방에서 여권을 꺼냈다. 경호원은 여권의 생년월일을 확인하더니, 웁스 하는 표정으로 예상보다 나이가 많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에리카가 "아마 그녀의 나이를 확인하면 더 놀라게 될 거야."라고 말하며 나를 가리키자, 그녀는 내 여권을 보고 다시 내 얼굴을 보더니 Wow 하며 웃어 보였다. 그러더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며 Enjoy 하고 배웅해 줬다.

"우리가 여기선 확실히 어려 보이나 보다. 크크크."

"서양애들은 원래 동양사람을 더 어리게 보는데, 그중에서도 팀장님은 더 그래 보일 거예요. 여권 검사라니 대체 얼마만인지! 너무 신난다. 킥킥."

에리카와 나는 기분 좋게 여권 검사를 마친 뒤, 오펠리아 라운지로 들어섰다.


천천히 해가 지고 있는 라운지는 아름다웠다.


먼저 도착한 쑤와 에밀리가 우리를 발견하더니 손을 힘차게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다. 둘 다 나보다 어렸지만 뉴요커의 분위기가 한껏 풍기는 멋진 분들이었다. 오전에 만난 마야 부부는 영어를 더 편하게 써서 대화할 때 긴장을 좀 했는데, 쑤와 에밀리는 다행히 한국어를 편하게 하는 분들이라 즐겁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시작은 로제와인으로 가볍게, 두 번째 와인은 드라이한 레드와인을 주문했다. 스카이라운지였지만 미국에서 먹는 미국 와인은 우리나라의 일품진로 수준으로 저렴해서 미국에 있는 동안 원 없이 잔뜩 먹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에리카의 친구들답게 모두 술을 잘 마셔서 다양한 와인을 이것저것 시켜볼 수 있었다.


여자 넷이 끝없이 먹고 수다떨고 웃었다. 바에서 이렇게 안주를 푸짐하게 시킨 테이블은 우리뿐이었다.


즐겁게 대화를 하다 보니 점점 창 밖으로 뉴욕 스카이라인 야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는 에리카의 예전 동료직원의 에피소드를 말하며 신나게 추억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서로의 가족과 친구 이야기를 하며 같이 화도 내고 위로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임에도 함께 있는 시간이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다. 역시 내가 좋아하는 친구의 친한 친구들이라서 그런지, 그녀들과도 마음이 정말 잘 통해서 나중에 한국에 놀러 오면 에리카와 함께 같이 만나기로 굳게 약속도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오펠리아 라운지의 밤 풍경 속에서 보낸 행복했던 시간.


뉴욕에서 겨우 세 번째 밤. 그 짧은 시간에도 난 뉴욕에 흠뻑 취해있었다.

낮 동안 도로 위에서 끝없이 들리던 차량 소리도 밤이 되자 밤공기에 가라앉은 것처럼 크게 들리지 않았다. 뉴욕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과의 대화 덕분일까. 유독 더 친근하게 뉴욕이 느껴졌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이 밤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어서, 에리카의 뉴욕에서의 추억에 나도 포함되게 되어서 행복한 밤이었다.


뉴욕 경찰과 뉴욕 소방대를 만난 하루.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뉴욕의 밤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에리카 나랑 브런치 먹으러 뉴욕갈래]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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