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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워커 Nov 10. 2023

뉴욕 말고 뉴저지, 다시 한번, 뉴욕 말고 뉴저지

그래, 여기가 핼러윈의 나라


우리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어.



뉴욕의 버스 터미널에선 한 눈 팔지 말고 시선을 맞추지 마.


뉴욕에 오기 전까지 뉴저지는 뉴욕에 포함된 도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뉴욕주와 뉴저지주는 다르다. 허드슨강을 사이에 두고 다리 하나 건너면 있는 곳이지만 서로 다른 주라는 걸 여행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


뉴욕에서 뉴저지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터미널에 가서 한국으로 치면 시외버스를 타야 한다. 숙소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포트 오소리티 버스 터미널이 있는데, 마야 부부가 살고 있는 뉴저지에 놀러 가는 날이었기에 아침부터 그곳으로 향했다. 그 20분이 이번 뉴욕 여행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이었다.


우리가 움직인 시간은 아침 9시 정도로 뉴욕의 직장인들이 한창 출근하는 시간대였다. 분주히 움직이는 직장인들이 많을 테니 뭐 위험할 일이 있겠냐 싶었는데, 터미널쪽으로 걸어갈수록 동네 분위기가 확연히 바뀌었다. 정장을 입은 직장인 무리가 점점 보이지 않더니, 허름한 옷차림의 노숙자들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낮인데도 소리를 지르고 이상한 걸음걸이로 걸으며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때 에리카와 나는 서로 대화도 나누지 않고 오직 정면만 보며 빠른 걸음으로 터미널을 향했다. 이상한 사람이 근처에 올 것 같으면 에리카가 나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며 먼저 조심했다. 이때의 거리 분위기는 내가 경험한 뉴욕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대낮임에도 어쩌면 여기서 무서운 일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공포심이 머리를 스쳤고,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터미널 안이라고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 아주 넓고 사람도 많았지만, 노숙자도 많았다. 여기서도 우리는 다른 대화는 거의 하지 않고 마야가 미리 알려준 터미널과 버스번호를 확인해서 빠르게 이동했다. 우리의 긴장은 버스를 무사히 타고 나서야 풀렸다. 뉴저지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에리카에게 아까 엄청 긴장했지 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며 뉴욕에선 정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 긴장을 풀면 안 된다고 말했다.




뉴저지는 뉴욕과는 달랐다.

마야 부부를 다시 만나서 함께 브런치를 먹을 식당으로 이동하는 그 짧은 시간 사이에도 난 뉴저지에 반해버렸다.


여기가 바로 할로윈의 나라. 여러 집들이 대문을 할로윈 장식으로 꾸며놓고 있었다.


"에리카! 제이! 버스 타고 오는 건 안 힘들었어?"

마야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마중을 나왔다.


"버스는 안 힘들었는데, 버스 터미널까지 가는 게 무서웠어. 네가 자세하게 터미널까지 알려준 덕분에 괜찮았지만, 아니었으면 거기서 길을 헤매서 더 무서웠을 것 같아."

에리카는 그렇게 말하며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여기는 정말 좋다. 너무 평화로워."


에리카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평온하고 깨끗한 동네는 이미 우리의 긴장된 마음을 사르르 녹여주고 있었다.


"그래? 하긴, 여긴 맨해튼하고 많이 다르지. 자, 이제 식당으로 가자."


나중에 알았는데 우리가 처음 버스에서 내린 지역은 뉴저지의 위호켄이었다. 위호켄에 사는 대부분은 맨해튼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맨해튼의 비싼 집 값을 낼 수 없으니 뉴저지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나와 에리카는 설령 우리가 돈이 많아도 맨해튼 말고 여기에 살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틀 전 올라갔던 The Edge 전망대가 선명히 보였다. 오늘 저기에 올라갔다면 뉴욕이 한 눈에 보였겠구나 싶어서 오히려 그 날의 구름 낀 풍경이 소중했다.


대화를 나누다 몇 분 만에 도착한 곳은 Turning Point라는 브런치 식당으로, 손님 중 관광객은 거의 없고 대부분 지역 주민들이었다. 매장에 들어서자 향긋한 커피 향과 달콤한 팬케이크 향이 코를 스쳤다. 햇살이 가득한 창가에 앉아 전형적인 미국식 메뉴판을 살펴본 뒤 각자 좋아하는 메뉴를 주문했다.


"어제 쑤랑 에밀리는 잘 만나고 왔어?"

"응, 라운지에 들어갈 때 ID 체크도 당했다고. 우리가 어려 보였나 봐. 킥킥."


에리카가 신나게 어제 얘기를 했다. 난 그런 대화 중간에도 계속 이 동네와 사람들을 구경했다. 식당 내부에 동양인은 우리뿐이었고, 대부분이 백인 가족이었다. 위호켄에 백인이 많이 사냐고 물으니 그렇지는 않다고 했는데, 그저 이 시간에 브런치를 먹으러 오는 사람 중 아시아인이 별로 없을 뿐이라고 했다.

금방 우리가 주문한 에그 베네딕트, 팬케이크, 프렌치토스트, 샐러드 그리고 커피가 준비되었다. 테이블 가득 푸짐한 양과 맛에 모두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쳤다. 뉴욕에서 제대로 즐긴 미국식 브런치였다.


10월의 뉴욕 모든 음식점에선 호박 메뉴를 만날 수 있다. 할로윈에 진심인 나라답다. 귀여운 슈가스틱은 먹기 아까울 정도였다.
완벽한 뉴욕의 브런치


이 날 일정은 모두 마야가 준비했는데, 제대로 뉴저지 관광을 시켜주겠다며 꽉 찬 일정표를 만들어놨었다. 쉴 틈 없는 빡빡한 표를 보니 역시 에리카의 친구답다 싶었다. 일부러 일정표의 메모란에 '편한 신발 필수!'라고 적어놨을 정도라, 대체 얼마나 걷게 하려는 건가 싶어서 나와 에리카는 살짝 긴장하기까지 했었다.


걱정이 무색하게 뉴저지는 끝없이 걷고 싶게 만드는 곳이었다. 바라보는 모든 풍경, 모든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이었고 그림이었다. 걷는 내내 "와.. 와.." 하며 저절로 탄성을 뱉었다.


이번 여행에서 박물관 다음으로 많은 사진을 찍은 곳이 바로 이 날이었다. 동영상도 끝없이 찍었다. 이 순간을 어떻게든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으니까. 내가 워낙 영상을 많이 찍자 마야는 에리카에게 혹시 제이가 유튜버냐고 물어봤을 정도였다.


이렇게 사진과 영상을 많이 찍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곁에 뉴요커들이 함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에리카와 나는 외지인이었다. 하지만 뉴욕에서 여행자 티를 내며 돌아다니는 순간 범죄의 표적이나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는 긴장감 때문에 우린 늘 조심하며 다녔다. 걸으면서 사진을 찍는 일도 가급적 삼갔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곁에 든든한 현지인이 함께다. 이 순간을 더 편하게 느낀 이유이기도 했다.


지금도 꿈 같았던 풍경. 아마 또 뉴저지에 가는 날 까지는 이 날 찍은 사진과 영상을 끝없이 돌려볼 것 같다.
영화 세트장 아님. 워터프론트역 내부와 줄지어 서있는 기차는 그 자체로 영화였다.
2021년에 조성되었다는 조형물 Water's Soul by Jaume Plensa 뒤쪽으로 워터프론트역이 보인다.




위호켄과 호보컨 산책을 두 시간 가까이 하니 아까 먹은 음식은 이미 소화가 다 된 상태였다. 에리카는 친구가 옆에 있어서 차마 말은 못 했지만 다리가 아파서 그만 쉬고 싶어 하던 참이었는데, 다행히 마야가 이제 집에 가자며 방향을 돌렸다.

호보컨에서 다시 위호켄으로 가는 방향의 동네는 그 자체로 에버랜드 핼러윈 축제 시즌 같았다. 모든 상점 앞에 유령 얼굴이 조각된 호박이 있었고, 유령과 해골 모형은 발에 채일 정도였다. 여기 무슨 테마파크냐고, 진짜 사람들이 사는 동네냐고 물으니 마야 부부가 함께 웃었다. 자기들에게는 흔한 풍경이 우리 같은 외지인에겐 특별해 보인다는 게 신기했나 보다.


귀여운 할로윈 장식들과 우리나라 양파 수준으로 대충 쌓아놓고 파는 호박들


마야 부부의 집은 내가 처음 방문한 뉴요커의 집인 셈이었다. 뭔가 다르려나 기대했는데, 의외로 내부는 한국과 비슷했다. 그들도 한국인이다 보니 (다행히!) 집 안에서 신발을 벗고 살고 있었다. 부부와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는 집은 단독 주택의 2층이었는데, 1층과 3층에는 모두 다른 세입자가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다세대 주택의 각 층을 세를 주는 방식인 것 같았다.

집에 들어서자 고양이 두 마리는 낯선 목소리 때문에 숨어서 우리를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 집사였던 내게 이 정도는 쉬운 미션이지! 한국에서 일부러 준비해 간 한국 간식을 손에 들고 천천히 아이들을 꼬셨더니, 몇 분만에 슬금슬금 나와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고양이가 있는 집에 방문해서 아이들을 쓰다듬으니, 이혼 전 키웠던 고양이들이 생각났다. 우리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먼 뉴저지에서 그리운 내 고양이들이 떠올랐다.


Before & After. 고양이가 있는 집에 방문할 때 간식은 필수다.


오후 5시쯤이 되자 관광을 한 군데 더 할지, 아니면 바로 저녁을 먹으러 갈지 마야가 물어봤는데 에리카는 아까 걸은 게 이미 너무 힘들었는지 저녁을 먹자고 단호하게 말했다.

저녁 식사 장소는 Tops Diner라는 현지인에게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다. 스테이크부터 타코까지 다양한 음식을 파는 곳인데, 우리나라로 치자면 남양주 같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대형 식당이라 차가 없으면 관광객이 일부러 찾아가기 어려운 위치였다. 친구 덕분에 이런 곳도 와본다며 에리카와 나는 한껏 신이 나서 와인과 음식을 주문했다. 1인 당 메뉴 한 개씩 주문했는데, 잠시 뒤 준비된 음식들을 보며 너무 당황했다.

"뭐야, 이게. 크크크크크."

양이 너무 많았다. 너무너무 많았다. 스테이크 한 접시가 2인분 같았고, 본 메뉴뿐만 아니라 사이드로 나오는 감자나 샐러드도 한 대접이었다. 그 와중에 맛이 정말 좋아서 끝없이 먹고 먹으니, 지금 우리가 푸드파이터로 여행을 온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우리도 사실 여기 오면 다 못 먹어서 남은 음식 포장해 가."

역시. 그래, 여기는 메뉴 하나를 혼자 먹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우리도 여행자가 아니라면 무조건 포장해 갔을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디저트는 맛봐야 하지 않겠냐며 케이크를 주문했는데, 케이크 사이즈에 두 번째로 빵 터졌다. 내 손바닥보다 큰 케이크 3개가 준비된 거다. 이게 아메리카인가. 미국인들 옷이 왜 대부분 빅사이즈인지 이해가 될 수준이었다. 매일 이렇게 먹다간 나도 5kg 정도는 쉽게 찔 것 같았다.


미국에서 먹은 미국 와인은 황홀했다. 내 인생에 흔치 않은 과하게 푸짐했던 식사였다.


"오늘 정말 행복했어. 모든 게 완벽했어."

뉴저지에서 마지막으로 맨해튼 야경을 바라본 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말했다.

"정말로요. 다음에 우리 뉴욕 또 오면 그때는 뉴저지에 호텔을 잡아요."

에리카도 황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내 꿈속에 있는 것 같았던 하루. 천국에 와있는 게 아닌가 싶었던 완벽한 하루.

우리의 뉴욕 여행에서 단 한 군데 잊지 못할 장소를 꼽으라고 하면, 뉴욕이 아니라 뉴저지였다.


누군가 뉴욕에서 어디를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말하겠다.


뉴욕 말고 뉴저지.

잊지 말자.

뉴욕 말고 뉴저지.


맨해튼의 밤보다 뉴저지의 낮 풍경이 더 나를 설레게 했다.



*[에리카 나랑 브런치 먹으러 뉴욕갈래]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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