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내게 남긴 것
일상은 언제나 조용히 빠르게 흘러간다. 여행 때문에 생긴 8일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회사에서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다 보면, 내가 정말 몇 주 전 뉴욕을 다녀온 게 맞나 싶을 만큼.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맡았던 마리화나 냄새도 이제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오랜만에 출근하자 동료들이 잘 다녀왔냐, 얼굴이 더 좋아 보인다, 혹은 더 피곤해 보인다, 어디 어디 다녀왔냐, 어디가 제일 좋았냐 등등. 끝없는 질문을 해왔다. 이 좁은 사무실에 나와 에리카가 뉴욕을 다녀왔다는 소문은 널리 퍼진 지 오래였다.
오랜만이라 회사 이메일과 밀린 업무가 한가득이었지만, 그 사실이 주는 안도감 또한 있었다. 돌아올 장소가 있기에 여행이 간절하고 소중한 거니까.
뉴욕 여행이 내게 남긴 건 대충 이 정도다.
1. 수백만 원의 카드값
2. 기념품이라며 구매한 예쁜 쓰레기들
3. 여행기와 광고글 쓰기의 어려움
4. "내가 뉴욕에 가봤는데 말이야"하는 허세 500g
5. 수 십 년간 꺼내볼 수 있는 추억
1번은 열심히 회사를 다니면 해결될 일이다. 다행히 일시불로 결제한 덕분에 한 달 뒤 카드명세서만 눈 딱 감고 받아들이면 다시 원상복구 될 테지.
2번은 합리적인 소비였다며 자기 합리화하는 걸로 대충 퉁 치기로 했다. 예쁜 쓰레기는 예쁜 걸로 그 역할을 다 한 거다.
3번, 쉽지 않았다. 글을 쓰기 전까지는 감히 쉽게 봤었다. 여행 중에 생긴 재밌는 에피소드를 그냥 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여행 정보글과 여행기는 엄연히 다르다는 걸 쓰면서 통감했고, 부족한 글 솜씨를 더 갈고닦아야겠다는 다짐을 한 좋은 기회였다. 광고나 협찬 글도 더 나답게 쓰기 위한 노력을 해봐야지.
4번은 꽤 쏠쏠하게 써먹는 중이다. 신호등을 건널 때마다 "뉴요커는 아무도 신호를 보지 않아. 그냥 막 건너더라고."라는 말을 대충 13번 정도 한 것 같다. 베이글을 먹을 때, 스테이크를 먹을 때, 미국 와인을 먹을 때마다 허세 몇 그램씩 꺼내쓸 예정이다.
5번, 추억은 이제부터다. 어떻게 변해갈지, 어떤 방식으로 내 삶에 영향을 줄지, 그 빛이 얼마나 예쁘게 바랠지, 수 십 년 간 두고두고 아끼며 간직해야 알 수 있는. 어쩌면 이 하나를 위해 다른 모든 시간과 돈을 투자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더 행복해졌다.
"뉴욕은 어땠어요?"
동료의 물음에 엄지를 척 세우며 대답했다.
최고였어요. 비행기도 놓치고, 돈도 왕창 썼지만, 그것까지 다 좋았어요.
*그동안 [에리카 나랑 브런치먹으러 뉴욕갈래]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