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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워커 Dec 12. 2023

안녕, 뉴욕. 안녕, 에어프레미아

태백으로 향하는 미국인 부부와 함께 한국으로


에리카가 먼저 한국으로 떠나고 혼자 뉴욕에 남겨져서 긴장하던 어제와 달리, 막상 진짜 뉴욕을 떠나는 시간이 되니 이 도시가 몹시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길을 걸을 때마다 풍기는 매캐한 마리화나 냄새도, 더러운 길거리도, 수상쩍은 노숙자도 영영 익숙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번 여행 마지막 뉴욕의 하늘



호텔에 맡겨둔 캐리어를 찾아서 우버를 불러 Newark Liberty International Airport로 향했다. 주말 저녁이었지만 공항으로 향하는 길은 막힘없이 뚫려있었고,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니 여기가 한국인지 뉴욕인지 알 길이 없었다.


뉴어크 공항 출국층에 가서 에어프레미아 체크인을 하기 위해 이동했다. 인천공항의 북적거림에 익숙해서인지 뉴어크 공항은 정말 한적하고 고요했다. JFK공항이 인천공항 같다면, EWR공항(문득 든 생각인데 왜 뉴어크 공항의 공항코드가 이거인지 잘 모르겠다)은 김포공항 같달까.


에어프레미아 창구로 가니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있었지만 역시 줄이 짧고 처리가 빨라 10분도 안돼서 짐을 맡기고 출국장을 향해 갈 수 있었다. 워낙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프리미엄 이코노미석 승객만 이용할 수 있는 체크인 카운터에서도 이코노미석 승객의 체크인을 같이 진행해 주어 더 빠른 티켓팅이 가능했다.


프레미아 42, 35 모두 대기 없이 체크인할 수 있었다


먼저 JFK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간 에리카는 불친절하고 답답한 공항의 일처리 때문에 떠나면서도 스트레스를 꽤 받았다고 하던데, 난 여기가 그 악명 높은 뉴욕 공항이 맞나 싶을 만큼 빠르게 출국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권 검사를 하는 공항 직원이 내 여권을 확인한 뒤, 좋은 여행이었냐고 묻길래 가볍게 웃으며 정말 그랬다고, 아주 완벽한 여행이었다고 답해주었다.


뉴욕에 와서 늘어난 게 있다면 스몰톡에 좀 더 익숙해졌다는 거다. 한국인들이 오히려 더 낯선 사람에게 말을 덜 걸지 않나 싶을 만큼, 뉴욕에서 경험한 타인들은 대부분 마주치면 가벼운 눈인사를 건넸고, 엘리베이터에서도 서로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몇 개월 전 읽었던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저자: 조 코헤이)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타인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며, 특히 영미권에서 그 속도가 가파르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막상 뉴욕에 와서 경험해 보니 오히려 한국이 훨씬 타인과 단절되어 소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뉴어크 공항에서 대기. 아무 탈 없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돼서 안도감이 들었다.




출국 수속이 오래 걸릴까 봐 일찍 공항에 왔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빠른 일처리 덕분에 출국장에서 두 시간가량을 보내다가 드디어 에어프레미아에 탑승했다. 갈 때 탔던 프리미엄이코노미석이 아닌 이코노미석을 탔는데, 그동안 타본 그 어떤 이코노미석보다 넓은 좌석 간격을 가지고 있었다. 두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좌우 간격도 좁지 않아서 14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역시나 불편함 없이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이코노미 35석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35인치 간격을 가지고 있다


장거리 비행에서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면 넓고 편안한 좌석과 기내식. 에어프레미아 기내식은 양식과 한식 중에 선택할 수 있어서 취향에 맞게 먹을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총 두 번의 기내식을 먹었는데, 두 번 다 충분한 양과 맛으로 만족스럽게 비행을 마칠 수 있었다. 게다가 에어프레미아는 늘 식사시간 후에 화장실 내에 칫솔 세트를 비치해 두어서, 상쾌하게 양치한 다음 다시 잘 수 있어서 좋았다.


만족스러웠던 에어프레미아 기내식


에어프레미아 기체가 안정적이고 편안하다는 걸 이미 한 번 경험했기에,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책을 읽기로 했다. 멀미가 있는 편이라 비행기 안에서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챙겨간 <천 개의 파랑>은 수 십 페이지를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기류 변화로 흔들릴 때는 어쩔 수 없이 책장을 덮었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길고 지루한 비행시간 중에 감사한 시간이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도 한 편 보고 책도 읽고 잠도 자면서, 이제 꽤 장거리 비행에 익숙해진 모습으로 비행을 즐기고 있었다.


안정감있는 비행과 넓은 내부 공간 덕분에 편안히 책을 읽으며 돌아올 수 있었다.




귀국 편에서 가장 뜻밖의 인연은 옆 자리에 앉은 미국인 부부와의 만남이었다.


탑승해서 자리에 앉을 때부터 내 옆에 앉은 여성 승객분이 USB 콘센트 위치를 못 찾으시길래 여기라며 알려드렸더니, "캄사합니다"라며 한국어로 인사를 해오시지 않는가.

부인께 "한국어를 잘하시네요."하고 말을 걸었더니,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 중이라고 말하셨다. 옆 자리에 앉은 남편분도 함께 한국 드라마를 즐겨본다고 하셨다. 너무 신기하고 감사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어와 영어가 섞인 기묘한 대화였지만, 역시 지구는 하나, 위 아 더 월드라서 의사소통은 아주 자연스럽게 되었다. 부부끼리의 여행이신가 했더니, 따님이 다른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하셨고, 남편분께서 암에 걸리셔서 치료를 받는 중인데 건강할 때 가족끼리 여행을 많이 다니는 중이라고 하셨다.


착륙 시간이 다가오자 한국에 가면 어디로 가시냐고 물었더니, 좌석의 화면에 뜨는 지도를 쭈욱 아래로 내리시며 강원도 한 복판을 가리키더니

"우리는 태백으로 갑니다."

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태백이요? 거긴 한국인들도 잘 안 가는데 어떻게 알고 가세요?"

"드라마에 나왔습니다. 태양의 후예에 나와서 보러 갑니다."

와, 드라마가 이렇게 힘이 있구나. 미국인을 한국에서도 낯선 동네로 이끌 수 있는 문화의 힘이라니.

그뿐만 아니라, 이미 한국에 3번이나 방문했던 부부는 지난번엔 강원도 속초에 갔다가 그냥 걷다 보니 군사지역 근처에 가서 어린 군인이 소리치며 이 근처로 오면 안 된다고 말했다는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한국의 군인들은 다 어리고 친절해서 무섭지는 않았다고 말하시길래, 다행이라고 말씀드렸다.


남편분의 건강과 즐거운 여행을 빌며 함께 비행을 마무리했다


"즐거웠어요. 코마워요. 행복하세요."

착륙 후 짐을 챙길 때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 주는 부부에게 나 역시 밝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해요. 즐거운 여행이 되시길 빌게요."


에어프레미아와 뉴욕 여행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는데, 여행의 마지막에 이렇게 특별한 추억을 안고 여행을 마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했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뉴욕 여행을 떠올리면 아마 이 날을 잊지 못하겠지.


안녕, 뉴욕. 안녕, 에어프레미아.

다음 여행에서 또 만나자.



*에필로그 편에서 뵙겠습니다.


*에어프레미아로부터 왕복 항공편 지원만 받았으며, 그 외 어떠한 여행 경비도 지원받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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