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으로 향하는 미국인 부부와 함께 한국으로
에리카가 먼저 한국으로 떠나고 혼자 뉴욕에 남겨져서 긴장하던 어제와 달리, 막상 진짜 뉴욕을 떠나는 시간이 되니 이 도시가 몹시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길을 걸을 때마다 풍기는 매캐한 마리화나 냄새도, 더러운 길거리도, 수상쩍은 노숙자도 영영 익숙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호텔에 맡겨둔 캐리어를 찾아서 우버를 불러 Newark Liberty International Airport로 향했다. 주말 저녁이었지만 공항으로 향하는 길은 막힘없이 뚫려있었고,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니 여기가 한국인지 뉴욕인지 알 길이 없었다.
뉴어크 공항 출국층에 가서 에어프레미아 체크인을 하기 위해 이동했다. 인천공항의 북적거림에 익숙해서인지 뉴어크 공항은 정말 한적하고 고요했다. JFK공항이 인천공항 같다면, EWR공항(문득 든 생각인데 왜 뉴어크 공항의 공항코드가 이거인지 잘 모르겠다)은 김포공항 같달까.
에어프레미아 창구로 가니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있었지만 역시 줄이 짧고 처리가 빨라 10분도 안돼서 짐을 맡기고 출국장을 향해 갈 수 있었다. 워낙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프리미엄 이코노미석 승객만 이용할 수 있는 체크인 카운터에서도 이코노미석 승객의 체크인을 같이 진행해 주어 더 빠른 티켓팅이 가능했다.
먼저 JFK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간 에리카는 불친절하고 답답한 공항의 일처리 때문에 떠나면서도 스트레스를 꽤 받았다고 하던데, 난 여기가 그 악명 높은 뉴욕 공항이 맞나 싶을 만큼 빠르게 출국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권 검사를 하는 공항 직원이 내 여권을 확인한 뒤, 좋은 여행이었냐고 묻길래 가볍게 웃으며 정말 그랬다고, 아주 완벽한 여행이었다고 답해주었다.
뉴욕에 와서 늘어난 게 있다면 스몰톡에 좀 더 익숙해졌다는 거다. 한국인들이 오히려 더 낯선 사람에게 말을 덜 걸지 않나 싶을 만큼, 뉴욕에서 경험한 타인들은 대부분 마주치면 가벼운 눈인사를 건넸고, 엘리베이터에서도 서로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몇 개월 전 읽었던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저자: 조 코헤이)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타인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며, 특히 영미권에서 그 속도가 가파르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막상 뉴욕에 와서 경험해 보니 오히려 한국이 훨씬 타인과 단절되어 소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출국 수속이 오래 걸릴까 봐 일찍 공항에 왔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빠른 일처리 덕분에 출국장에서 두 시간가량을 보내다가 드디어 에어프레미아에 탑승했다. 갈 때 탔던 프리미엄이코노미석이 아닌 이코노미석을 탔는데, 그동안 타본 그 어떤 이코노미석보다 넓은 좌석 간격을 가지고 있었다. 두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좌우 간격도 좁지 않아서 14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역시나 불편함 없이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장거리 비행에서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면 넓고 편안한 좌석과 기내식. 에어프레미아 기내식은 양식과 한식 중에 선택할 수 있어서 취향에 맞게 먹을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총 두 번의 기내식을 먹었는데, 두 번 다 충분한 양과 맛으로 만족스럽게 비행을 마칠 수 있었다. 게다가 에어프레미아는 늘 식사시간 후에 화장실 내에 칫솔 세트를 비치해 두어서, 상쾌하게 양치한 다음 다시 잘 수 있어서 좋았다.
에어프레미아 기체가 안정적이고 편안하다는 걸 이미 한 번 경험했기에,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책을 읽기로 했다. 멀미가 있는 편이라 비행기 안에서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챙겨간 <천 개의 파랑>은 수 십 페이지를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기류 변화로 흔들릴 때는 어쩔 수 없이 책장을 덮었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길고 지루한 비행시간 중에 감사한 시간이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도 한 편 보고 책도 읽고 잠도 자면서, 이제 꽤 장거리 비행에 익숙해진 모습으로 비행을 즐기고 있었다.
귀국 편에서 가장 뜻밖의 인연은 옆 자리에 앉은 미국인 부부와의 만남이었다.
탑승해서 자리에 앉을 때부터 내 옆에 앉은 여성 승객분이 USB 콘센트 위치를 못 찾으시길래 여기라며 알려드렸더니, "캄사합니다"라며 한국어로 인사를 해오시지 않는가.
부인께 "한국어를 잘하시네요."하고 말을 걸었더니,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 중이라고 말하셨다. 옆 자리에 앉은 남편분도 함께 한국 드라마를 즐겨본다고 하셨다. 너무 신기하고 감사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어와 영어가 섞인 기묘한 대화였지만, 역시 지구는 하나, 위 아 더 월드라서 의사소통은 아주 자연스럽게 되었다. 부부끼리의 여행이신가 했더니, 따님이 다른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하셨고, 남편분께서 암에 걸리셔서 치료를 받는 중인데 건강할 때 가족끼리 여행을 많이 다니는 중이라고 하셨다.
착륙 시간이 다가오자 한국에 가면 어디로 가시냐고 물었더니, 좌석의 화면에 뜨는 지도를 쭈욱 아래로 내리시며 강원도 한 복판을 가리키더니
"우리는 태백으로 갑니다."
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태백이요? 거긴 한국인들도 잘 안 가는데 어떻게 알고 가세요?"
"드라마에 나왔습니다. 태양의 후예에 나와서 보러 갑니다."
와, 드라마가 이렇게 힘이 있구나. 미국인을 한국에서도 낯선 동네로 이끌 수 있는 문화의 힘이라니.
그뿐만 아니라, 이미 한국에 3번이나 방문했던 부부는 지난번엔 강원도 속초에 갔다가 그냥 걷다 보니 군사지역 근처에 가서 어린 군인이 소리치며 이 근처로 오면 안 된다고 말했다는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한국의 군인들은 다 어리고 친절해서 무섭지는 않았다고 말하시길래, 다행이라고 말씀드렸다.
"즐거웠어요. 코마워요. 행복하세요."
착륙 후 짐을 챙길 때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 주는 부부에게 나 역시 밝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해요. 즐거운 여행이 되시길 빌게요."
에어프레미아와 뉴욕 여행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는데, 여행의 마지막에 이렇게 특별한 추억을 안고 여행을 마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했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뉴욕 여행을 떠올리면 아마 이 날을 잊지 못하겠지.
안녕, 뉴욕. 안녕, 에어프레미아.
다음 여행에서 또 만나자.
*에필로그 편에서 뵙겠습니다.
*에어프레미아로부터 왕복 항공편 지원만 받았으며, 그 외 어떠한 여행 경비도 지원받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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