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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워커 Sep 30. 2022

웃으며 안녕, 울며 안녕

15. 이사하는 날, 헤어지는 날, 혼자가 된 날



2021년 11월 첫째 주 금요일.

벚꽃이 떨어진 그날 시작된 나와 그의 이별이 마무리되는 단풍이 지는 날이었다.


모든 게 끝나는, 잊지 못할 하루였다.

 


전 날 퇴근하고 나서부터 짐 정리에 정신이 없었다. 이 집에 남겨둘 그의 짐과 내 짐이 섞이면 안 되기에, 내가 가져갈 모든 짐을 거실로 미리 빼두고, 거실에 있던 그의 짐은 안방에 넣어두었다. 3,000권의 내 책이 있는 서재에서는 그의 짐을 모두 비워뒀다. 이삿짐센터 직원분들이 헷갈려서 그의 짐을 실으면, 이사 후에 그에게 연락해야 되는 상황이 벌어질 테니까 더 철저히 분리했다.

짐을 빼놓기만 하는 건데도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대충 마무리하고 잘 수 있었다. 이사는 보통 아침 7~8시부터 시작되기에 일찍 자야 했고, 이 정도 피로면 분명 금방 잠이 들 것 같았다.

 

안방에 들어가자 책상에서 회사일을 하고 있던 그가 평소대로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이제 다 정리했어요? 피곤하겠네.”

 

“응, 진짜 회사 다니면서 이사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네요. 당신은 아직 자려면 멀었죠?”

 

“늘 그렇지 뭐.. 먼저 자요. 내일 8시에 이삿짐센터에서 온다고 했죠? 나도 그때 깰게.”

 

알겠다고 하며 그의 등 뒤 침대에 누웠다. 평소처럼 고양이 2마리가 내 머리맡으로 다가와 털썩 눕더니 그릉그릉 소리를 낸다. 이 행복한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드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순간 눈가가 시큰해지는 것 같았지만, 벌써부터 눈물이 터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애써 무시하고 눈을 감았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고, 자고 있는 그를 두고 안방을 나와서 평소처럼 고양이들과 인사하고 물을 마셨다.

제대로 밥을 챙겨 먹을 틈은 없을 것 같아서 어제 사놓은 빵과 커피 한 잔을 먹으며 준비를 시작했다. 그도 곧 일어나서 안방을 나왔다.

 

“여보, 잘 잤어요?”

 

그는 아직 나를 여보라고 부른다. 난 그와 헤어짐을 결심한 이후 단 한 번도 그를 여보나 자기라고 부르지 않았다.

 

“응. 잘 잤어요? 어제 늦게 자서 피곤하겠네.”

 

“괜찮아요. 이따 직원분들 오시면 아이들은 내가 안방에 데리고 있을게.”

 

“응, 아마 3시간 정도 걸릴 테니까 좀 더 자면서 있어요. 배고플 텐데 지금 뭐 먹어둬요.”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하고 일상적인 대화가 오고 갔을 뿐, 서로 그 외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곧 이삿짐 차량이 도착했고, 분주하게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책이 정말 많다면서, 자기 이사 경력이 20년인데 이렇게 책 많은 분은 처음 본다며, 작가시냐고 물어보신다. 이사할 때마다 들었던 얘기라 멋쩍게 웃으며 “그냥 책을 좋아해서 모은 거예요. 힘드시죠? 죄송해요.”라고 말씀드렸다.

 

한 시간 뒤쯤 언니가 도착했다. 언니 차에 내 귀중품을 미리 옮겨놓고, 이따 이사가 끝나면 언니 차를 타고 내 집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이삿짐을 다 내리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아서 언니와 거실에서 이것저것 대화를 나눴다. 인터넷 신청이나, 이사 후 저녁으로 뭘 먹을지나, 그런 사소한 것들. 그 사이 그는 안방에서 나오지 않고 계속 고양이들과 같이 있었다.

 

“사모님, 짐 다 옮겼고요. 저희 점심 먹고 거기 도착하면 오후 1시쯤 될 겁니다.”

“네, 고생하셨어요. 저도 거기로 바로 갈게요.”

 

언니는 작은 쇼핑백 두 개를 들고, 먼저 차에 가있겠다고 했다. 천천히 나오라고 말하며.

 


똑똑.

 

“이제 나와도 돼요. 다들 가셨어.”

 

그가 방에서 나오니 안방에 갇혀있느라 어리둥절했을 고양이들도 바로 따라 나왔다.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뭔가 말하는 순간 내 감정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였다. 애써 아이들을 보지 않고 그에게 말했다.

 

“다 옮긴 것 같긴 한데, 혹시 남은 내 짐이 나오면 대부분 그냥 버려도 돼요. 당신이 생각하기에 아주 중요한 물건 같으면 연락해서 알려줘요.”

 

“응.. 그럴게. 다.. 다.. 잘 둘러보고..”

 

빈 방들을 보니 새삼 이 집이 혼자 살기엔 넓구나 싶었다. 특히 그는 둘이 살던 집에 혼자 남겨지는 거니까 아마 나보다 더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까..

 

노트북과 몇 가지 잔 짐이 들어있는 백팩을 메고 신발을 신었다. 마지막으로 신발장을 한 번 열어보고 현관을 나섰다.

 

그는 슬리퍼를 신고 따라 나왔는데, 내가 엘베 앞까지만 배웅해도 된다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서로 마지막으로 눈을 마주쳤다.

 

“잘.. 가요, 여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고.”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그였지만, 그가 울음을 참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응, 당신도 잘.. 지내고, 아이들 잘 부탁해요. 아이들한테 무슨 일 생기면 꼭 연락 주고.”

 

나 역시 조금만 더 참자는 마음으로 애써 덤덤하게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해서 문이 열렸다. 바로 탑승한 이후, 그를 마지막으로 쳐다봤다. 그 짧은 3초의 시간 동안, 우리가 함께 보낸 지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갈게요. 잘.. 있어요.”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나는 작게 미소를 띄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응.. 응..”

 

더는 울음을 참지 못해 말을 잇지 못하는 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나 역시 참아왔던 울음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 아니 아직 채 닫히기 전에 왈칵 터져 버렸다. 이제 정말 끝이라는 걸 몸서리치게 깨달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주차장에서 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펑펑 눈물을 흘리며 차에 탔더니, 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운전해서 주차장을 나섰다. 지하주차장에서 나오는 순간 눈부신 햇살이 느껴졌다.

아마도 한참 동안 오지 않을, 내 30대 대부분을 보낸 동네를 떠나며 정말 많은 감정이 내 안에서 휘몰아쳤다.

 

하늘은 유독 파랗고 공기는 맑았고 나는 그 순간 불행했다. 사랑하던 가족, 내 평생의 동반자라 생각했던 사람은 이제 내 곁에 없고, 내 삶에 기쁨을 주던 고양이들과도 헤어졌다. 이제 정말 오직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차가운 칼날처럼 나를 파고들었다.

 


어쩌다가 내 인생이 이렇게 바뀐 걸까.

물론 원인은 그에게 있다. 하지만 이 최종 결정은 온전히 나의 선택이다.

이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어쩌면 이혼하지 않고도 잘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아니 정말 어쩌면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더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나로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려면 그의 죄를 용서해선 안 됐다.

그의 죄를 모르는 척해서도 안 됐다.

나의 동반자가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어선 안 됐다.

결국 나를 나 답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내 인생에서는 가장 중요했던 거다.

 

잘 살아 가자, 나 답게.

지금의 이 상황도 불과 몇 년 전의 나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앞으로의 내 삶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 모든 변수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결국 내 삶이 오직 내 결정 속에서 흘러가게 될 거라는 거다.

어떠한 결정을 하더라도 나 답게 선택 하자.

설령 그게 나를 조금 덜 행복하게 할지라도.

 

차 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파란 가을 하늘을 바라봤다.

난 예측할 수 없는 두 번째 여행길을 시작하는 중이다.

적어도 첫 번째 여행보다 더 단단하고 의연하게 이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 1부 완결 -


읽어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완결 기념 Q&A는 아래 링크에.

2부 <돌싱으로 살아본 건 처음입니다>

조니워커의 우찌혼삶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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