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로 태어나도 적성이나 관심분야, 성향이 다 다릅니다. 하물며 나이 차이가 있는 형제자매 간의 성향이나 관심분야, 재능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1호가 뭔가를 배우려 하면 2호는 무조건 똑같이 해 달라고 합니다. 어릴 때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뭘 잘하는지 모르는 부모는 이것저것 아이들이 관심을 보일 때마다 작은 시도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편입니다. 문제는 똑같은 것을 똑같이 해 줄 수 없다는 것이고, 그건 맞지도 않는다는 지점에서 고민이 생깁니다.
1호가 처음 피아노 학원을 다니던 무렵 2호는 부러웠는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이 졸졸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나중에 따라다니며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하고 2호도 피아노를 꽤 오랫동안 배웠습니다. 1호가 고학년이 되면서 그만두게 된 시점, 2호가 갑자기 시무룩해집니다. 학원은 1호가 그만두는데 왜?? 어리둥절했습니다.
엄마, 나도 피아노 안 가면 안 돼요?
왜?
나도 그만하고 싶어서요.
... 그럼 앞으로 나중에 치고 싶어도 더 이상 갈 수 없는데 괜찮아?
......
그렇게 1차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2호는 꽤나 오랫동안 고민하다 그대로 다니기로 했습니다. 1호는 혼자 해도 까먹지 않을 정도니 상관없었고 2호는 덩달아 그만두려다 포기하고 (다시 가고 싶을까 봐) 더 다니기로 한 것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뭘 얼마나 알고 무슨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거창한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1호가 뭔가 다른 재미난 걸 하는 줄 알고 그랬던 거라 곰곰이 며칠 생각하다가 그냥 다니기로 했습니다. 또 하나는 엄마가 어떤 결정을 해서 그걸 뒤집어주는 일이 없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기에 며칠의 시간이 필요하긴 했던 것 같습니다.
2호는 이후 아무 말 없이 꽤 오랫동안 혼자 피아노 학원을 다녔습니다. 노래도 춤도 좋아하는 터라 그러려니 했습니다. 중학생이 된 2호는 합창 대회를 하게 됩니다. 노래던 피아노던 지휘던 상관없다고 했는데, 어느 날 집에 돌아온 2호는 1호를 찾습니다. 늦게 온 1호에게 악보를 보여줍니다. 이번 합창곡이라며,
이거 한번 쳐봐 봐.
왜?
아니, 그냥... 악보대로 한번 쳐봐 봐.
1호는 더듬거리더니 곧잘 악보대로 끝까지 쳐줍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2호,
한 번만 더 쳐봐 봐
?
연달아 피아노 치는 소리를 듣다가 '이젠 됐다'고 합니다. 아무리 바라봐도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합창 연습을 한창 하느라 늦게 오던 2호가 집에서 열심히 반주를 연습합니다. 제법 칠 줄 아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합창대회가 다 끝나고 난 뒤, 우연히 한 질문에서 충격을 받기 전까지는...
아니, 근데 너도 칠 줄 아는데 왜 악보를 1호한테 쳐 달라고 했던 거야?
어떤 음악인지 들어보느라고,
??? 그게 무슨 말이야?
아... 악보를 볼 줄 몰라서 쳐 달라고 한 거야.
? 악보를 왜 못 봐?
소리를 들으면 그대로 칠 수는 있는데 악보(콩나물)는 볼 줄 몰라.
뭐??? 무슨 이런 일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오랜 기간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다녀 놓고서 무슨 말인지...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 심지어 발표회도 해 놓고서.
피아노 학원을 오래 다녀도 악보를 볼 줄 모른다는 걸, 그저 청음으로 치는 걸 감쪽같이 몰랐던 겁니다. 어린 마음에도 그만두겠다고 후딱 그만두면 다른 것도 배우고 싶을 때 안 시켜줄 거라는 걸 알아서 참고 다녔다는 걸요. 내가 너무 지독하게 굴었나 잠시 반성도 해 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합창대회가 없었다면 절대 모르고 지나갔을 겁니다. 지금도 여전히 당당히 말합니다.
콩나물은 못 보지만 들으면 칠 줄은 알아, 그럼 된 거 아냐?
참나,... 그래도 그걸 참은 덕분에 나중에 미술을 신나게 배울 기회를 얻기는 했습니다.
각자의 타고난 기질과 재능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부러워하지 않는 자신만의 것을 할 수 있는 삶이면 좋을 텐데 대개 그렇지를 못합니다. 어릴 때부터 자잘하게 배워가는 과정에서조차 이유 불문 따라 하는 삶은 어쩌면 좋은 하나의 경험일 수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무모한 낭비일 수도 있습니다. 관심과 재능이 있는지에 따른 판단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선택과 책임을 배우는 과정은 중요합니다. 무언가를 시작할 이유가 있었다면 그것이 힘들다고 함부로 포기하지 않아야 할 이유도 필요합니다. 또한, 그 이유가 분명한 것은 어떤 문제가 오더라도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걸 배울 기회가 됩니다. 삶의 근력을 기르는 그 시작점일 수 있습니다.
살면서 잠시 해 보는 것과 해야 할 것을 계속하는 그 반복의 과정에서 자신이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것이 점점 오차를 줄이고 분명해질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적어도 부모들의 성화 때문에 피아노 앞에 앉아 작은 손등을 맞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