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담임선생님과 통화하게 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선생님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미안하다, 앞으로 그러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 말하고 통화를 종료합니다. 마치 선생님에게 아이 대신 혼나는 것처럼, 일단 이유 불문하고 고개 숙인 채 대응을 합니다.(요즘은 뉴스를 대충 봐도 그런 시류는 아닌 듯 하지만,) 뭐가 미안할까요? 왜 이유 불문 고개를 숙일까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담임 선생님을 만나거나 통화해야 할 일이 간혹 생기곤 합니다. 학교에 무관심한 저 역시 그럴 기회가 생깁니다.
학교에서 가끔 발생하는 도난이 있던 날, 학급의 회장, 부회장은 호출을 당합니다. 학급에서 발생한 일이기에 뭔가 책임의 무게를 더하게 됩니다. 1호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책임 범위가 아닌 일에 책임을 요구하면 항의하거나 직접적으로 반발을 하는 편입니다. 그날도 문제가 생기고 난 후 학급 회장이 그냥 가버렸다는 것 때문에 업무 중에 꽤 오랜 시간을 담임선생님과 통화해야 했습니다. 아이에게 들은 자초지종, 말 그대로 이미 벌어진 도난을 책임질 방법도 없고 누구라고 꼭 집어서 범인이라 확신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에 대해서는 선생님도 이해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냥 집으로 온 아이의 행동을 문제 삼았기에 한참 훈계(?)를 들어야 했습니다. 내막을 알고 있었기에 대응하지 않고 듣다가 나온 말,
아이가 그렇게 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그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셨나요?
그랬습니다. 어리던 크던 아이들은 어떤 행동을 할 때 분명히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입니다.
며칠이 지나고 아이는 선생님과 다시 이야기를 했고 오해는 풀렸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어렵지 않게 해결되는 방법은 의외로 쉬운 곳에 있습니다. 아이를 기르며 배운 것은 부모가 아이를 믿고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던 마지막에 기댈 수 있는 곳도,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끝까지 믿어주는 사람들도 부모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가슴으로 느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심리적인 안정뿐 아니라 아이가 살아가는 바탕에 동력이 됩니다. 사실, 어떤 경우건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들이 사실 확인 없이 무조건 사과를 한다는 건 상대에 대한 평범한 예의의 방법일 수도 있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 잘못이 아이에게 있다고 - 부모들이 확신한다고 느끼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아, 부모들이 나를 믿지 않는구나,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겠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가정교육'을 중시하던 아버지에게 시시콜콜 모든 행동과 생활습관에 대해 지적을 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서... 철없이 대들었다가 1박 2일로 날밤을 새며 된통 혼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제 성격상 몸에 밴 행동이나 말 습관은 다른 자아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릅니다. 동양과 서양의 훈육 방식은 굉장히 다릅니다. 모두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지만 책임에 대해서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않을 때, 그럴 수도 있지... 하며 한 두 번 넘어가는 것은 아이에게 독이 됩니다. 기본적인 것조차 지키지 못하는 것을 필요 이상 엄격하게 제재하고 수정하는 외국 부모들을 보며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대부분 우리보다 훨씬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들이 왜 식사 때 저럴까, 왜 동생이랑 싸우는데 저럴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습니다.) 점점 기본에 충실한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전에 내 아버지가 했던 방식처럼, 모든 기본적인 것들은 몸과 마음에 스며 있어야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주변을 보면 부모와 아이들의 동일시 현상을 자주 봅니다. 가족은 유사한 점이 있지만 구성원 각각은 서로 다른 인격체입니다. 때문에 서로 간 존중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존경하고 또 존중해야 하고 부모들도 서로 간, 혹은 자녀와의 사이에서도 존중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그런 마인드라면 아이들의 말이나 행동을 나무라기 전에 유심히 관찰하게 되고 늦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가족 간의 대화가 부족한 경우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이 이해되는 입니다. 예전, 공부방을 운영하던 때 사춘기 아이들이 부모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도벽이 있거나 친구를 괴롭히고 때리는 경우를 볼 수 있었습니다. (권위주의적인 부모일수록) 부모들에게 언질을 줘도 되려 알려주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 취급합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장담하면서! 아이들이 자라 사춘기가 되면서 점점 부모와 이야기하지 않고 서로 이해할 수 없이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서로 멀어지고 알지 못한 채 문제와 갈등은 수시로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의 시작은 어릴 때부터 부모가 자식을 어떤 자세로 대하는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하며 함께 견디고 극복하는지에 대한 방식이 있어야 익숙해지고 가능해집니다. 강제하거나 어느 날 갑자기 이제 대화가 가능한 나이니까 시작해 볼까? 그런 것은 없습니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던 부모들이 이젠 갑질을 하는 세상입니다. 자식들의 성공을 바라며 선생님의 지도편달을 갈구하던 부모들이 이젠 선생님을 지도편달하겠다는 세상입니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자세를 보고 선생님을 그 모습대로 인식합니다. 자신들이 간단히 서치 해서 찾을 수 있는 걸 지루하게 풀어 설명하는 선생님의 권위를 수긍할 수 없고, 자신들보다 겨우 몇 살 더 먹은 사람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부모들이 사람을 대하는 자세는 아이들을 대하는 자세에서 드러나고 부모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배운 그 자세 그대로 세상에 나와 다른 사람을 대합니다.
나중에 벌어지는 '탓'은 이미 강을 건넌 후 불구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