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돼지를 잡던 날, 인정머리 없는 엄마가 되다

by gruwriting



- 나의 인색함이 한껏 빛을 발휘하던 날



아이들을 키울 때 부모들은 대체로 아이들이 자신들보다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라기에 자라는 동안 장난감이나 용돈을 궁하지 않게 챙겨주곤 합니다. 저 역시 이런저런 이유로 그 어렵던 시절에도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각자 따로따로 챙겨주는 용돈을 받는 재미가 쏠쏠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전 아이들에게 조금은 인색하게 굴었던 것 같습니다. 이유는, 세상에 이유 없는 보상은 없고 노력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성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도 살면서 복권 당첨의 꿈을 꾸지만 그것도 최소한의 복권을 사는 행위가 필요합니다. 행동하지 않은 채 받을 수 있는 이유 없는 보상은 세상에 없습니다. 세상사가 그렇습니다. 이유 없는 보상에 현혹되면 게을러지고 노력에 대해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불만이 생기고 자기 노력의 가치에 대해 배우지 못합니다. 그건 아마도 월남한 가족들(부모와 많은 형제들과 자식들까지)의 생계를 혼자 책임져야 했던 아버지의 가정 운영 방식과 교육의 영향을 꽤 많이 받았다고 생각됩니다.






나는 왜 롤러브레드를 사주지 않았을까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욕심내는 물건들이 생깁니다. 무조건 내 거야를 외치던 아이들이 돈의 효용을 알고 더 나아가서 자신만의 물건을 갖게 될 즈음, - 단지 소유물을 갖게 해 줄 것인지, 소유에 대한 과정을 고민하게 할 건지 부모는 어느 정도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옵니다. 아이들과 머리싸움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빨갛고 커다란 돼지 저금통에 작은 동전을 넣기 시작하고 그중 넣지 않은 돈으로 가게에서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을 수 있는 달콤함을 알게 될 무렵이 그렇습니다. 사실, 돈이 뭔지는 몰라도 밖에서 놀고 가게에 심부름을 다니며 뭔가(돈)를 주면 맛있는 아이스크림이나 사탕, 초콜릿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큰 유혹이 됩니다. 말귀를 알아듣고 글자도 조금씩 알게 될 무렵, 가족들끼리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만들고 대가를 요구하는 시기가 옵니다.



롤러브레이드가 한창 유행이던 시기 1호는 그것을 갖고 싶었습니다. 걷는 것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큰 아이들의 발만 바라보며 돼지 저금통 채울 방법을 고민하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효도 쿠폰을 나눠줍니다. 안마 10분, 아빠 구두닦기, 현관 신발정리, 엄마 심부름하기, 동생이랑 방청소하기, 연필로 글씨 쓰기, 물건 가져다 놓기, 구슬 정리하기,... 수도 없이 쿠폰을 발행하는 아이, 돼지 저금통이 가득 찰수록 점점 기분이 좋아집니다. 드디어 가득 찬 돼지를 잡은 날, 롤러브레이드를 사러 갑니다. 갖고 싶은 것은 금액이 더 부족했지만 돈에 맞춰 사도록 했습니다. 자신이 모은 저금통의 돈으로 산 롤러브레이드, 세상 그보다 소중한 물건이 없습니다. 나중에 바퀴를 교체해서 타야 할 정도로 틈만 나면 타러 다닙니다. 언니나 오빠들 것보다는 조금 덜 멋지지만 자신이 모은 돈으로 산 물건이라 소중했고 맘껏 탈 수 있어 좋습니다. 아이는 돈을 모으는 것에 관심을 갖고 그 효용을 체험하게 됩니다. 자기가 모은 돈이 한 역할을 직접 체험하면서 돈의 소중함과 자신이 원하던 것을 샀다는 뿌듯함은 마음속에 오래 남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도 꽤 오랫동안 끼고 읽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커서 부자가 되겠다며... 어린 나이에 뭐 그리 심각하게 결심한 계기는 아니었겠으나 아무래도 부모들이 돈 문제를 매일 이야기하는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 같습니다. IMF를 겪어내는 자영업자의 수입이 들쭉날쭉한 걸 직접 봤으니까요. 사소해 보이지만 심부름을 하고 받는 보상과 어른들의 기분에 따라 주어지는 보상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아이도 어렴풋 느낍니다.






직접 자신의 것을 갖게 된 경험은, 좋은 것이야


하지만,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거 제가 저금통에 모은 돈으로 산 거예요~!' 신나게 자랑한 것이... 네, 저는 공식적으로 인정머리 없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깟 걸 아이가 갖고 싶으면 하나 사주면 될 걸 애써 모은 돼지저금통을 털었냐는 비난의 눈초리들 덕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표본에서 한참 벗어난 사람이 됩니다. 모유도 시간이 되기 전엔 절대 주지 않는 엄마, 길 가다 힘들다 해도 업어주지 않고 그냥 쉬었다 가자는 엄마, 갖고 싶은 것은 직접 돈을 모아서 사라는 엄마, 방이 아무리 더럽고 지저분해도 정리해 주지 않는 엄마,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달래주지 않고 자꾸만 뭘 물어보는 엄마,... (쓰다 보니 일반적이진 않아 보이네요. 이래서 엄마가 손주들을 볼 때마다, 아이들이 알아서 컸다고 하시는지도...) 아이들은 짜증 날 법도 하지만, 뭐 나중까지 엄마가 졸졸 따라다니며 다 해 줄 수 없고 대신 살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주변의 눈초리쯤은 무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엔, 세뱃돈은 어느 집이나 부모들이 회수(?)를 합니다. 당시엔 기껏해야 그 돈을 계기로 조금씩 더해서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적금을 넣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방법으로 조금씩 아이들이 자신의 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시작하도록 알려주는 부모들이 늘고 있습니다. 사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돈과 경제를 가르쳐야 하지만 아이들의 떼씀과 주변인들의 참견 때문에 일관된 소신으로 가르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교육이고 그 방법은 또 구체적이어야 아이들도 경험으로 배울 수 있고, 우연에 기대지 않고 허무맹랑한 환상을 갖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더 자라며 스스로 생각하고 하나씩 - 돈을 모으기도 하고 씀씀이의 순서를 정하며 필요한 소비를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한 시간을 참는 인내심은 덤으로 자랍니다.








그 작은 경험으로 꼭 대단한 부자가 되라고 하진 않습니다. 다만, 물질적인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기억할 수 있는 한 번의 강렬한 경험과 그 성취로 자신의 능력을 믿고 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랐을 뿐입니다. 지나고 보니, 조금은 인색했던 듯도 하지만 그 조그만 아이가 자기 것을 성취해 가는 과정을 옆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엄마로서 역시 좋은 경험이었고 큰 배움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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