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의 첫 시작은 학교 학제의 시작과는 완전히 다른 필드입니다. 한번 직장에 취업을 하면 당연히 정년퇴직을 하던 시절 나름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취업했습니다. 나름 세상을 조금 비틀어보고 정보력이 있던 터라 피곤은 하지만 적성에 맞아 시작한 일은 배울 것도 많았고 바쁘지만 재미있었습니다. 결혼과 임신, 육아의 시작과 함께 떠나야 했던 세상이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렇습니다. 맞벌이하는 많은 엄마들이 여전히 출근을 하고 있지만 내 경험으로 보면 -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임신과 함께 입덧이 심하거나 급격한 신체적인 변화로 정상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잘 먹지도 못한 채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꼬박 누워 지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출산 때까지 출근하는 엄마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결혼과 임신 육아가 퇴직을 향한 동일 선상의 문제였을 때이니, 기업의 임원에 여성이 적은 것은 당연합니다. 두 아이와 함께 하는 육아는 십 년 세월을 빠르게 삼켜버립니다. 사실 10년이란 기간은 굉장히 긴 시간입니다. 하지만 오 년 정도기 지나면 엄마들은 서서히 정신이 들기 시작합니다. 마치 환각의 세상에서 깨어나듯.
삶의 현실이 생각을 한정한다고 했던가요? 전과 달리 변한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합니다. 당시 접할 수 있었던 건 고작 매일 집으로 오는 몇 개의 일간지와 길에 놓인 지역 소식지들이 전부였으니까요. 아직 인터넷이 보편적으로 발달하기 전이라 재취업을 위해서는 반드시 종이 이력서를 들고 되던 안되던 면접을 보러 다녀야 했습니다. 무한 루트 속을 헤매듯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야 했습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서울을 벗어난 지역엔 사람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거의 없습니다. 세상엔 수많은 직업들이 새로 생겨났지만 삼삼오오 부업을 하는 또래 엄마들의 일거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세상과 달리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성장을 멈춘 엄마들의 생각도 남편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직업소개소(지금이야 다양한 경로가 있지만)를 가봐라, 여성취업지원센터를 가봐라, 기술을 배워라 등등 갖은 훈수를 뒀지만 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일자리는 이미 바로 쓸 수 있는, 더 젊고 더 나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었고 - 그 자리에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넓은 도로라도 도로 가득 차가 들어차 있다면 핸들을 돌려 막힌 곳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찾을 줄도 알아야 했습니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서서히 잘하는 것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로 범위가 좁혀지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 당시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밭에서 쓸만한 바늘 하나를 찾는 것 같던 - 막막하던 그 느낌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천성적으로 잘하는 것보다 현실에서 내가 쌓은 생각과 경험을 써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걸 도울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외로 자잘한 정보들에 밝지 못해 제때에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오히려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방법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주변에 차근차근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무난히 해결할 일들.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 현실에서 즉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면접을 봅니다. 취업의 기쁨도 잠시, 주 5일제 시행 전이니 6일은 기본 근무, 그 외 특정 이벤트가 있다면 7일 근무도 당. 연. 히. 해야 했습니다. 아이들과 직장의 거리를 생각해 서울로 다시 들어왔지만 평일도 정상 퇴근이 어렵던 시기라 아이들에 신경을 쓰기란 쉽지 않습니다. 남편이 육아를 함께한다 해도 한정적이었고 몸과 마음이 피곤한 상태에서 아이들의 일상을 일일이 챙기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신체적 한계는 목전까지 다가왔고 조금 느슨하던 빚은 더 많은 대가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불행은 구체적으로 집요하게 들러붙어 오지만 행복은 조용히 스며들어 가끔씩 삶을 벅차게 합니다. 수시로 생활의 피로감이 몰려오지만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과 취업 후 점점 머릿속이 정돈되는 나를 자각하며 마음과 몸을 추스릅니다. 그렇습니다. 하루 종일 움직여야 정돈되는 집이지만 잠시만 움직임을 멈춰도 엉망이 되는 살림이라는 것과 직업으로 일을 한다는 건 머릿속의 구조 자체를 다르게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남편들이 별 의도 없이 살림하는 아내들에게, 하루 종일 뭘 한 거야?라고 던지는 무심한 말도 마음 깊은 곳에 화살이 되어 꽂히지만 회사의 일로 질책을 받는 것은 생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머리가 띵 합니다. 차츰 뇌가 세상에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시작은 막막했지만 그래도 분명한 건, 시작이 있어야 했다는 것이고 어찌 되었던 그 시작이 있어서 그다음 스텝이 가능했다는 겁니다.
어른이 되면 모든 걸 다 안다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정된 지식과 경험 때문에 더 좁게 갇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갇혀있는 터널의 길이가 길고 견고할수록 꼰대력은 급상승하고 세상과 담을 쌓게 됩니다. 다른 세상을 바라보기엔 늦었다고 쉽게 체념하기도 합니다.(그건 사실 용기가 없거나 게으른 것이 이유지만 그냥 나이 탓 하는 걸 자주 봅니다.) 살아있는 한 세상은 늘 변하고 자연의 일부인 우리도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죽은 삶을 살게 됩니다. 의미를 잃고, 의욕을 잃고, 건강을 잃고, 결국엔 삶을 잃게 됩니다. 죽은 삶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어제의 나를 보내고 오늘의 내가 '지금'을 감사하며, 더 많은 엄마들이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터널 밖 세상에 나올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