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본성에 맞고 유익해 보이는 것들을 추구하지 못하게 사람들을 가로막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사람들이 실수를 저지른다고 네가 화를 낸다면, 너는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분명 자신의 본성에 맞고 자신에게 유익해 보이는 것에 끌렸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오. “ 그렇다면 화내지 말고 그들에게 가르쳐주고 지적해 주어라.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
아이의 본성을 알아가야 하는 시기, 부모의 머릿속에 있는 아이와 다르다고 먼저 화를 내는 것이 성장하고 있는 아이의 일상이 된다면 아이는, 그렇게 부모가 보여주는 모습대로 학습됩니다. 학습을 하는 긴 시간은 자신의 자유 영역을 깊이 묻어 두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지 조차도 모른 채 성장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불편하고 주변과 가족, 세상의 여러 현상과 반응들에 불만이 쌓여갑니다.
주변의 사물이나 어른들의 행위에 대해 말 못 하는 아기들이 싫다는 반응을 보이면, ’ 그놈 참 고집이 세네.‘ 합니다. 반복해서 느끼지만 말 못 하는 아기들도 자기 나름의 생각이 있다는 걸 어른들은 자주 잊습니다. 어른들의 위험을 경험하기 전 아기 때부터 자라면서 때때로 위험에 노출되고 감수해 보는 것은 귀한 경험이고 학습입니다. 그것이 생명에 지장을 주는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면! 어른이 되면 바로 죽음이니까요.
우리가 오해하는 것 중, 지유로운 영혼이 있습니다. 무언가 규칙적이지 못하고 제멋대로이고 예측이 불가능해서 불안정한 상태의 사람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지만, 애써 부정적 인식을 포장하느라 종종 쓰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분명하고 좋은 말이 또 있을까요? 자유롭지 못한 상태를 선호하고, 최우선시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유롭지 못한 틀에 갇혀 있다는 심리적 압박 속을 살면서도 ‘자유롭다’는 말에는 병적으로 혐오 증상을 드러내며 이중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갖고 싶은데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집착, 분노와 증오. 혹은 주어진 것 이상으로 불가능한 것을 원하는 상태, 그건 확실히 병입니다. 명품을 협오한다면서 백화점을 뱅글뱅글도는 사람들, 길에 뿌려진 외제차를 타 본 적도 없으면서 돈과 돈 가진 사람을 혐오하는 사람들, 이상 증상은 무궁무진합니다.
실패해야 성공을 욕심낼 수 있고 자신의 성공을 그리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넘어져봐야 조심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범생은 불행하지만, 아무런 상처 없이 곱게 기르느라 허리 휘어가며 애쓴 부모나 그 자식들은 자신들이 불행한 줄 모릅니다. 오히려 부모들은 예쁘게 자란 자식이 마냥 흐뭇합니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지만 인간 삶의 기준에서 생명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뻔합니다. 물리적으로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게 자신만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면 될 일입니다. 그걸 아무리 휘황하게 포장해도 그 껍질은 인간들이 원하지 않아도 상자 포장지가 벗겨지듯 결국엔 스르르 흘러내립니다. 그 무심한 순간 드러나는 남루함은 어찌해야 할까요? 또 그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인가요?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요?
부모들은 침착해야 합니다. 때론 냉정하게 일관성을 유지한 채 이성적으로 아이를 대해야 합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부모들도 사람이라 판단이 서기 전에 욱하고 치받는 감정에 눈앞이 흐려질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일관되고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아이는 아이의 인생을 부모는 부모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틈'을 찾으면 나중에 서로 원망할 일이 줄어듭니다. 어차피 서로 짧은 인생을 살며 굳이 아웅다웅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요? 아이의 품성은 그렇게 학습되고 살면서 드러납니다. 어릴 땐 안 그렇더니 크면서 바뀌었나? 당연히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대개는 어릴 때 부모들이 보고 싶은 것만 자신들의 그림에 꿰어 맞춰 보다가 자라면서 자신들이 만들어 넣은 그림에서 아이들이 멀어졌다는 것에 대한 실망의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벽에 걸린 그림도 보는 거리와 위치에 따라 혹은 주변의 조명과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입니다.
주변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를 자책하지도 않고 덤덤히 상황을 판단하고 꼼꼼히 다음 계획을 세워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들과 부모는 싸울 일이 없습니다. 나 역시 늘 염두에 두고 함께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수시로 질문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미완을 살아가고 있기에.... 하지만 불합리해 보이는 현상들과 이성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일들도 굉장히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 험난한 과정은 스스로 선택하는 결과를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한 과정으로 반드시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내 부모에게서 배운 건, 세상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면 그 이유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노력하지 않는 대가와 누군가의 선의에 대한 이유를 분명히 구별할 수 있도록 많은 연습을 해 왔습니다. 극한 상황에도 오히려 평소보다 맑은 머리로 냉정함을 유지힐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조금 걸려도 해결해 가는 과정은 늘 순리대로 결론이 났던 걸 경험으로 압니다. 남들이 보기에 불리하던 치명적이던. 하지만 그 결과 값은 그들과 전혀 무관하고 내게는 유익했으면 괜찮았습니다. 덕분에 일찍부터 세상의 눈을 의식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남들보다 약간 더한 참을성을 배워야 했고 소박한 것에 만족할 줄 알게 되었지만 가끔은 왜 더 욕심내지 않았을까도 자주 생각해 보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