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관리(?) 하기 위해서 혹은 위험으로부터 보호(?) 하기 위해서 휴대폰을 사주곤 했습니다. 지금은 어릴 때부터 휴대폰을 갖는 것이 당연시되지만 당시만 해도 필수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나는 아이들이 중학교가 되도록 사주지 않았지만 딱 한번 후회한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를 가고부터 아이들의 생활 반경이 급격히 넓어집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 수 있길 바라지만 그건 꿈입니다. 결론적으로는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부모들의 막연한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만일, 자식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부모들이 있다면 그들의 자식들이 살고 있는 생활범위를 한번 되돌아볼 일입니다.
1호는 워낙 낯가림이 심했고 유치원을 다닌 적이 없어서 학교 체험 학습이나 자고 오는 수련회들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어릴 땐 친척집에 가서도 잠을 잘 자지 못했었던...) 그 시작은 초등학교 체험 학습부터였으나 의외로 잘 적응을 했습니다. 부모와의 시간보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낯가림이나 공간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만큼 좋았던 걸까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체험 학습도, 소풍도 주거지역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곤 합니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부모들과 멀어져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부모들이 그걸 자주 잊고 서로가 서로를 얽어매고 동동 거릴 뿐입니다. 누구나 성인이 되면 자립해야 합니다. 과정을 속 쓰려하는 부모들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부모도 아이들도 각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1호가 과천으로 소풍을 가던 날(위치상 정 반대의 외곽에 살 때), 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아 애가 탔던 적은 있었지만 그걸 계기로 멀어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보통 자신이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불안이 엄습해 오면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캄캄한 밤에 아이들이 어떻게 돌아올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에서 느끼는 불안감은 상당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의 부모들은 갖은 걱정으로 동동거렸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오히려 밤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차분히 기다리면 올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만일의 사태'가 발생했다면 이미 집으로 어디서든 연락이 왔으리라, 1호가 침착한 성격이라 차분차분 찾아오리라.. 차분히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잠깐, 이럴 때 휴대폰이라도 있었으면 덜 답답했으려나?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건 잠시뿐이었습니다. 다행히 좀 늦긴 했지만 무사히 아이들이 돌아왔고,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스스로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서로 재잘대느라 걱정한 부모들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아이들을 보고 한바탕 크게 웃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난 후 한 가지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집에서 게임도, TV도 거의 보질 않는데 굉장히 많은 걸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집에 늦게 오는 것도 아니고 학원을 더니는 것도 아닌데... 친구들과 놀며 귀동냥으로 듣고 나중에 집에 와서 친구들이 말한 것을 보게 해 달라고 슬쩍 요구합니다. ~가 요새 유명하데, ~가 잴 재미있데..... 그럼 또 모르는 척 보여주고, 유해하지 않다면 정해진 시간만큼 짧게나마 TV를 시청했고 대신 충분히 밖에서 놀았고 놀이처럼 책을 읽었습니다. 사실 엄마 입장에서도 아이들이 무엇을 궁금해하고 흥미 있어하는지 궁금해서 같이 보고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면 시큰둥하곤 했습니다. 친구들이 알려준 것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가 없거나 신기하지 않으면 그걸로 그뿐이었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고 고학년이 될수록 부모들도 사회적 책임과 기회로 한창 바쁠 시기입니다. 지나온 경험상, 부모들이 이때부터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팔로 업하지 않으면 그들의 감정이 형성되는 내용을 알 기회가 사라지고 사춘기가 되면 서로 당황하게 됩니다.
부모들이 알려주지 않아도 - 아니 오히려 세상의 유해성에서 아이들을 차단하려 아무리 애를 써도 아이들은 자신들의 세계에서 나름의 방법들로 듣고 보고 배웁니다. 이때 아이들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부모를 보고 배운 그 값 그대로가 적용됩니다. 그 지난한 과정을 우린 교육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살아가는 방법을 서로에게서 배우는 시간일 뿐입니다. 부모들이 알려주지 않아도 이젠 아이들이 더 앞서 세상을 넓게 보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예전 방식과 다른 세상을 아이들이 흡수하는 능력은 옆에서 보기 위태로울 수도 있습니다. 부모들의 관리나 통제밖일 때도 늘어나지만 그저 바라볼 뿐입니다. 모든 책임은 오롯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만 알려줄 뿐입니다.
살아가는 세상에 누군가 늘 도움이 함께 한다면 든든할 겁니다. 실수를 해도, 실패를 해도 괜찮을지 모릅니다. 세상이 좀 더 만만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겁날 것 없는 세상이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그 도움의 손길이 원망의 대상으로 작용할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누구나 부정적인 것에서 회피하려는 습성이 있지만, 자식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그것을 부모들은 상처의 딱정이처럼 긁으며 함께 안고 가게 됩니다. 하지만, 눈치채지도 못한 순간 언젠가는 새살이 돋고 딱정이는 떨어져 나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