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생명은 얼마나 짧은 가요? 푸르게만 보여도 가을이면 낙엽을 떨구며 앙상히 겨울을 나는 나무의 생명은 또 얼마나 긴가요? 사람은 그 안에서 잠시 태어나고 죽고 사라집니다. 세상 살이라는 것이 그리 길지는 않다고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길지 않은 시간을 아등바등하는 것이 가끔은 우습기도 하지만 또한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이라 조심스럽고 여전히 귀한 시간입니다. 하물며 아이들을 키우며 느끼는 그 시간은 세상 무엇에도 비할 바 없는 귀하고도 귀한 시간입니다.
온실 속에서 적정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는 꽃들은 얼마나 화려한가요? 화려한 만큼 자신을 한 껏 뽐내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안타까운가요? 자연의 바람에 한 번도 대응해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생명력의 힘은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을까요? 모든 생물은, 주어진 환경에서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할지 모릅니다. 당연한 삶이 우스워보여도 그 또한 그 생물의 삶이고 스스로 만족하면 그만일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뿌듯함과 함께 아이들의 성장만큼 동시에 고민되는 것이, 내가 살던 곳보다 더 험해질 세상이 뻔한데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하나... 하는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되도록 상처받지 않고 곱게 자라면 좋겠지만 하다 못해 놀이터만 나가도 넘어지고 깨지는데 예상치 못할 일들이 얼마나 많을지 부모들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안해하고, 그래서 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모든 걸 직접 해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불안감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불안의 크기만큼 상쇄해서 살펴준다고 세상이 호락호락해지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의 자립이 수월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형체도 없는 부모들의 자기 위안만 남을 뿐입니다. 정확하게는 아이들에게 하등의 도움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저 강단이 필요할 뿐입니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의 삶은 아이들이 책임지고 살아야 하고 부모들의 영역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는 걸 서로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걸 잘 못하는 것이 특히 한국의 부모들입니다. 무의식 가운데 보상 심리가 너무나 크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아서 척척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기특하다가도 허전해하고 아쉬워하는 부모들을 자주 봅니다. 하지만 세상은 아무리 험해도 길을 만들면 길이 만들어집니다. 그건 아이들이 스스로 해야 할 몫이고 세상을 향해 조심하되 쫄지는 않도록 격려해 주면 그뿐입니다. 그렇게 기세를 살려가야 합니다. 잘못한 것이면 그 자리에서 사과하되 잘못한 것이 아니면 어떤 것에도 절대 쫄지 마라!
다만, 평평한 길을 가다가도 넘어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이고 성공 가도에서 가끔 발을 헛디디거나 구덩이에 빠질 수 있는 것 또한 인생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라도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추스를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이 마련되어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내 부모가 나에게 이런 생각을 미리 알려줬었더라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스스로의 길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나아갔을지 모른다고. 주변의 끊임없는 부정과 만류가 스스로를 자꾸 의심하면서 나아갈 길을 헷갈려하고 그 안에서 미로처럼 길을 찾느라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던 것이라고, 원망 아닌 원망도 해 보았습니다. 나이를 먹고 돌아서려 할 때 이미 너무 먼 길을 잘못 왔다고 느껴도 빠져나갈 수 있는 시간이 오히려 부족하다는 걸 느끼면 쉽게 결정하지 못하게 됩니다. 스스로 강한 결심으로 끝을 내기까지는. 부모들의 선택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삶이 많이 돌고 돌아왔다는 건 분명하고 솔직히 아쉬움은 남습니다.
아이들의 장래 희망을 함부로 설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습니다. 1호와 2호는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 애쓰고 있는 중입니다. 그 선택 과정에서 그때그때 함께 의논하고 고민하지만 그렇다고 결정을 내려준 적은 없습니다. 선택은 스스로, 결정에 따른 책임도 스스로 안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도 끊임없이 인지하고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때 그 결정을 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최대한 애쓰고 그들의 그 상황을 그저 인정합니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볼 뿐 훈수 두지 않습니다.
부모가 되고서야 부모의 입장에서 선택할 수 없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무슨 다른 길이 있었을까 조금은 이해도 하게 됩니다. 스스로 규칙을 가지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생활을 하도록 지독히 가르치고도, 실제로는 현실적 선택을 바랐던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렸을까 새삼 생각해 봅니다. 자식들은 부모가 늘 자신의 삶에서 편들어주길 바라는 이기심을 버릴 수는 없나 봅니다. 자식들에게도, 또 스스로에게도 자꾸만 같은 말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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