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 부족한 엄마의 고민

by gruwriting


- 삶을 살아가는데 사회성이 정말 치명적으로 중요한가



난 사회성이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여러 순간 중 가장 힘들고 - 심지어 학교 생활까지도 어려웠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 환경에 대한 낯섦보다 사람들과의 사회적인 교류를 하는 것이 더 어려웠으니까요, 뭐 그렇다고 사람들에 대해 기피증이 있거나 두려워하는 것은 아입니다. 다만, 필요하지 않은 잡담과 썰렁한 농담들, 관심 없는 이야기를 함께 일정한 사람들과 일정한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떠들어야 한다는 것, 또 나의 식욕과 무관한 음식을 자주 먹어줘야 한다는 건 고욕 그 자체였습니다.





아이들 육아를 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지점도 바로 아이들의 사회성이었습니다. 나와 남편의 성격이 달랐으니 한편 약간의 안심(?)을 하며 걱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상대적으로 엄마와 있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이라,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유치원도 보내지 않은 1호를 보며 가끔 '내가 잘못하고 있진 않을까' 자주 반문하곤 했었습니다. 놀이터에서 동네 아이들과 두루 잘 노는 1호와 2호를 바라볼 땐 일부 안심도 하곤 했었습니다. 또래들과 그럭저럭 잘 지내는 걸 보면 마음이 놓였습니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들은 친구들이 많아지고 관계가 조금 복잡해지면서 쑥쑥 자라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아이가 달라져갑니다.






자신을 닮을까 걱정하는 엄마


학교에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은 성인의 사회생활과 같습니다. 어리기 때문에 더 쉽게 상처를 입고 관계의 불편함에 더 힘들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판단하고 단단한 마음을 키워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처음 학교를 방문한 날, 아마도 공개수업이었을 텐데 두 아이 모두 유사한 상황을 겪어야 했습니다. 선생님들의 편애는 늘 있는 일이지만 그 속사정을 알리 없는 아이들은 자주 물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왜 oo 엄마는 학교에 맨날 와?

왜 ㅁㅁ는 선생님이 자꾸 상장을 줘?

선생님은 왜 **만 예뻐해?



부모들은 자식들이 자신들을 닮았다는 말을 들으면 내심 흐뭇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반대로 엄마의 성격은 절대 닮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보다 조금은 수월하게 살기를 바랐고 조금은 더 두루두루 지낼 수 있는 성격이었으면 했지만, 타고난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자랄수록 고집스러움과 까탈스러움은 더 분명해졌으니까요.






굳이 사회성에 연연하지 않기로


사람이 만들어 놓은 어떤 개념들이 가끔 사람을 생각지 못한 감옥에 갇히게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사회성에 집착하는 걸까요? 자주 궁금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건 아마도 다른 사람의 평가나 눈이 '나'를 규정하고 그 규정된 '나'를 너무 쉽게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생각의 중심이 '나'라고는 하지만, 그 모든 기준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중심인 나조차도 밀어내는 과정 말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어떤 계기를 찾아 바꾸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학제가 바뀔 때마다 고민이 깊었습니다. 매년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바뀌는 과정을 겪으면 새로운 환경(사람)에 적응하는 것이 가장 시간이 많이 걸렸고 어느 정도 익숙할 때쯤이면 다시 학년이 바뀌는 것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그러다 국민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아예 다른 환경을 찾아 진학해야 하는 때, 문득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친구, 선생님들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걸 이겨내는 마음을 바꾸면 조금 다른 생활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중학교에 갈 때, 고등학교로 갈 때 같이 갈 수 있는 친구들이 점점 줄어들며, 나를 아는 사람들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아마도 더 자라면 세상의 사람들은 거의 내가 모르고 나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일 거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 계기로 중학교, 고등학교의 친구들은 국민학교 때 친구들이 기억하는 내 모습과는 정 반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단지, 나의 생각이 바뀌었을 뿐인데도 어릴 땐 소심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으로,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는 유쾌하게 거침없고 통찰력 있는 사람으로... 하지만 두 가지 모습 모두 한 사람에 대한 여러 시선들일 뿐입니다. 내가 의도한 것은 시간에 따라 생각을 변화했을 뿐이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아이들이 오히려 당당히 자신들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 같아 저 보디는 다행히 유연하다는 걸 느낍니다.



아울러 부모들은 아이들의 사회성을 위해 그리 극성떨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사회성이라는 허울이 갖는 강제성은 오히려 인간의 본성을 제한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때가 더 많으니까요. 그전에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성품을 다진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걸 또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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