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엄마가 꼭 어른은 아닐지도 모른다

by gruwriting


- 아무도, 처음부터 어른이었던 적은 없었다


중학교를 입학하고 책을 읽다가 문득, 십 년 이후나 이십 년 이후에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막연했지만 희미하게나마 상상해 보곤 했었습니다. 한창 책 읽는 재미를 붙이고 있던 때라 이십대면 어떤 직업을 갖고 있을지, 삼십 대에는 어떤 성공을 하고 있을지(당시엔 성공 외에 실패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계획대로 성공하리라만 상상하던 시절이었죠) 궁금했습니다. 당시엔 결혼도 아이도 계획에는 없었고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 엄마가 자식들에게 주는 피로감이 싫었고 그래서 내가 엄마가 되리라곤 상상할 수 없던 때였습니다.






나중에 더 나이를 먹고는 나중에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나의 외할머니를 보면서 훈훈하고 푸근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성격이 너무 많이 모가 났고, 너무 많이 냉랭한 사람이란 걸 알았습니다. 상대방의 사정을 이해해도 유달리 표현하지 않고 덤덤히 바라볼 때가 많았고 어른들은 나에게 인정 많고 이해심이 넓다고 했지만 난 다른 사람에 별 관심도 없었고 그보다 한 없이 인색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습니다.






계획이 꼭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걸 조금씩 깨닫다


사람들의 특성은 다양하지만 다들 나름대로의 계획으로 살고 있습니다, 특히 내 성향은 계획하고 실천하고 그 과정이 실패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측면이 있었기에 계획에서 벗어나는 일이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것이 삶에서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나마, 충분히 준비해도 생각과 다를 수 있고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 삶이란 걸 이제는 압니다. 덕분에, 전혀 상상 못 한 일들이 벌어지는 건 나와 동떨어진 세상의 이치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때문에 주변의 충격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꽤나 담담한 편이고 극한 상황에 부딪혀도 제법 냉정하게 잘 결론이 나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 삶의 방식이 달라진 건 육아를 마주하고 부터였습니다.



변덕이 죽 끓듯이, 날씨가 변덕을 부리듯이 어른이 된 엄마들도 감정의 기복이 심하게 변화합니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현실 앞에 감정을 놓치거나 무시하고, 혹은 숨기기 바쁠 뿐입니다. 처음엔 생각한 적도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걸 잘 참지 못해서 - 아마도 그런 갑작스러운 일들은 내 계획 속에 있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멍하니 아이들을 바라볼 때가 자주 있었고(그런 현상조차 나중에서야 자각할 수 있었고) 그 순간을 지나면 뭔가 께름칙한 기분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상황은 시간과 함께 흘러갔고 아이들은 매일 자라고 있었습니다. 반복된 감정의 널뛰기가 세상에서 혼자 멈춰 선 것 같은 자신의 무능과 자연스레 연결이 되면 이젠 기억 속에서 조차 사라져 버린 내 미래의 계획들이 산산조각이 나며 허공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어른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멋진 어른을 꿈꾸지만 처음부터 어른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살이를 겪으며 겉으로만 '어른의 모습'으로 만들어질 뿐입니다. 나이를 먹고도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하물며 육아를 하는 엄마들은... 세상 모든 엄마가 꼭 어른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실시간으로 불편한 자아와 충돌하며 또 다른 자아의 성장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어른이 되어 가는 성장통을 아프게 겪습니다. 엄마가 되어서 육아를 하고 아이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통해서 엄마가 되고 세상을 배우며 스스로를 성장시켜 가는 과정이 육아의 시간입니다. 분명히, 육아의 과정은 아이와 함께 부모가 삶에서 제2의 성장을 하는 기간입니다.



엄마가 되어 세상을 배우고, 엄마가 돼서 스스로 자라는 중인 이 모든 과정의 날들이 새로울 뿐입니다. 아직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고, 자주 낯설고 당황합니다. 하지만 이젠 조금씩 압니다. 내가 비록 완전한 어른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곁에서 든든한 구실을 할 수는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젠 조금 알고 있습니다. 그전보다 조금은 덜 인색하게 굴고, 그전보다 조금은 더 드러나게 표현하고 모난 구석을 조금씩 깎아내며 다듬어가고 있다는 걸 이젠 압니다. 아직 떨어져 나가지 못한 부스러기 몇몇 조각에는 가끔 여전한 고집과 심통이 섞이긴 하지만...






지키고 싶은 것,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것과 고집은 다릅니다.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과 어른 구실을 하는 것은 또 다릅니다. 여전히 이 나이에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하고 싶은 무언가를 제지당할 때 불쾌함을 숨길 수 없는 사람이지만, 또 여전히 불쑥불쑥 꼬라지를 부리는 성질머리를 버리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젠, 누군가의 관심보다 나의 관심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과정을 살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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