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되면 삶에 당당함이 생기나요? 아니면, 세상에 좀 더 뻔뻔스러워지나요?
저 역시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으면서도 여전히 미스터리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심지어 판단 자체가 조심스럽기까지 합니다.
엄마는 어쩌면 좀 곰살맞고 옆에서 자주 재잘거리는 딸이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책임감 있고 듬직한 자식보다 조금 푼수 같아도 허물없이 쉽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그런 자식말이죠. 그런 면에서 전 굉장히 어려운 사람입니다. 수시로 들여다보면서도 어느 정도 거리가 존재하다 보니 사근사근하지 못한 자식이 때론 못마땅하리란 걸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나름 엄마와 너무 격의 없이 지내지 않으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하는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저에겐 가장 친밀한 가족의 시작이지만, 각자의 인생은 필요하니까요. 너무 개인적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은 저와 자식과의 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나 복사된 인생이 아니고, 그 자체 각각의 인격체이므로 존중하며 그 모습 그대로 함께 살아갑니다.
엄마 세대의 자식에 대한 생각은 아직 예전 방식(약간은 부모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 자식이 그 정도 부모말은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대체로 자식들은 부모의 생각에 어느 정도 맞춰야 집안의 평화가 유지됩니다. 꽤나 일방적입니다. 여하튼 저로서는 이웃할만한 거리에 살면서 수시로 호출당하고 실턴 좋던 두 집 살림을 하듯 신경을 써야 합니다.
엄마와의 한주는 늘 그렇듯, 매주 한 가지씩 미션을 던져 주듯 전화로 시작됩니다.
“ 아니 내가 뭘 안 냈다고 집에 뭐가 왔어...... 자, 들어봐라.... 나쁜 놈들이지?”
“..... 그건 세금 같은데??... 엄마가 세금을 안내서 그런 거 아닌가? “
“.... 받은 게 없는 데 뭘 자꾸 돈을 달래!.... (빽!!)“
“... 일단 주중에 한번 들릴 거니까 그거 버리지 말고 잘 보관해 둬. 봐야 뭔지 알 수 있으니까. “
들어보니 주민세 용지였습니다. 누구나 내야 하는 주민세가 체납이 돼서 체납 용지가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아니 세금도 아닌 적십자비는 빼먹지도 않고 꼬박꼬박 내면서 왜 세금을 안 내는지...
엄마에게 세금이란 '나라'에 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고, 제일 공포스러워하는 것이 연체료를 포함한 체납 독촉장입니다. 몰라서 못 낸 게 아니라 왔는데 (당신 생각에) 쓸데없다고(?) 생각해서 찢어버렸다니, 왜 이렇게 일방적인 걸까요? 팔순이 넘어가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지나요?... 모르겠습니다.
전화는 늘 밑도 끝도 없이 본론으로 시작합니다. 안부? 묻기는 기대도 안 합니다. 그런 건 사치에 가깝습니다. 짧고 굵은(?) 통화만 있습니다. 그 시간이 초저녁이던 한낮이던 아님 오밤중이던 상관이 없습니다. 희한한 건 꼭 주말을 앞두고 그것도 한밤중에 좀 널브러져 쉴만하면... 일부러 그러나 싶을 지경입니다.
성격이 뒤끝이 너무 없어서(?) 실제로 얼굴을 보면 아무 일도 아니란 듯... 심지어 지난 일은 일일이 기억조차 하지 않습니다. 얄밉습니다. 그러다 갑가지 궁금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에게도 이런 방식으로 전화하는지,
“ 아니 근데 궁금해서 그러는데, M이랑 S한테도 이렇게 전화해? “
“아니!” 대답에 망설임이 전혀 없습니다.
“그럼 왜 난??,”
“그거야 니가 맏이니까 그렇지! 그리고 딴 애들은 전화해도 바빠서 바로 못 와.”
"......"
K장녀 K장남 여러분, 우리가 뭘 잘못했나요? 극한 직업이 따로 없습니다. 태어난 집안의 서열로 조금 더 부모에게 신경 쓰고 집안일에 적극적인 것 외 다른 자식들과 다르지 않은데, 부모들의 유별난 기대 탓으로 모두 그저 그러려니 해야 하는 걸까요? 요즘이야 자식들이 워낙 외동들이거나 많아야 둘인 경우라서 다를지 모르지만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생각은 분명히 달라졌으면 합니다. 첫째를 믿는다는 부모의 그 마음이 믿음일까요? 아니면 역차별일까요? 가끔씩은 궁금해집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집집마다 이런 자식이 한 명씩은 꼭 있는 듯합니다.
저는 1호와 2호에 대해 첫째, 둘째에 대한 개념을 굳이 붙이지 않기에 각자의 이름을 부릅니다. 나이 차이도 예전처럼 크지 않은데 굳이 '큰, 작은'이란 호칭으로 서열을 둬서 역할이나 생각이 고정되길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식들도 그런 면에서 서로에 대해 같은 시대를 사는 친구로 의지하며 지내길 바랄 뿐(그래도 마음속으로 맏이와 둘째에 대한 마음이 다르지 않냐고 하겠지만 글쎄요, 누가 먼저 소중하고 누가 나중 소중하고 할 수는 없지 않나요?)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꽤 근사하고 대단한 인연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소중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관계입니다. 엄마를 그저 나이 먹은 노인으로 대우하기는 싫습니다. 엄마 나름의 인격체로 갖는 생각과 행동은 존중하려 하기에 가끔씩은 야박하게 책임을 요구하기도 하고, 다소 서운하더라도 직접적인 도움보다 스스로 챙기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방법까지만 알려줍니다. 설핏 '다른 집 자식들은 알아서 다 해준다'더라고 불평하지만, 그러면 '그건 그 집 자식들이니 그런 거고! '... 그럼 불평은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해봐야 뻔하니까요.
때로,
조금은 나긋나긋한 자식이고 싶지만 아직은 심술이 많아 그러질 못합니다. 가만히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만 물어만 볼 뿐 - 위험에 노출된 것이 아닌 한 아이들이 알아서 해결하며 자랐듯이 엄마에게도 같은 방식을 취하고 있는 저도 참, 고집스럽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