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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Aug 09. 2024

03. "나, 병원에 들어왔어!"


요즘처럼 더운 한 여름엔 입맛을 잃기 쉽습니다. 끼니를 챙기지 않으면 금방 기운이 떨어지고 먹자니 입맛을 잃어 먹을 것이 마땅치 않습니다. 억지로 먹자니 체기로 고생할 일이 아득하고... 하물며 노인들은 입맛을 점점 잃어가는 터라 뭘 새롭게 해 놓아도 맛있다는 칭찬은 고사하고 도통 다 먹어지지를 않습니다.           


    




엄마의 링거 투어 시작은,


그해 여름도, 이른 더위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태양의 열기로 창밖엔 아지랑이가 어른거리는 한낮, 뜬금없이 전화가 옵니다.      


”나 병원에 들어왔어! “... 이게 무슨 소린가? 엄마가 왜 또 병원에???


순간, 그동안의 여러 사정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훑고 지나갑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몇 번의 접촉 사고를 겪었고, 뇌경색으로 쓰러져 큰 수술을 받았었고, 집안이 더럽다며 청소를 하다가 의자에서 미끄러지고... 무릎에 간헐적인 멍들이 남아있고... 이번엔 왜 또? 하... 갑자기 마음이 싱숭생숭해집니다.


”왜? 어디 다쳤어? “ “심각해? 많이 다친 거야? 입원할 정도로?” 다급하게 질문을 쏟아냅니다.


”아니, 링거 맞으려고, 밥맛도 없고 힘이 하나도 없어서 죽겠어. 확 죽지도 못하고... 이따가 집에 가서 뭐 좀 갖고 오라고. “

”... “             




어릴 때 학교를 다니지 못해서 스스로 까막눈이라며 답답해하던 엄마는 이모의 권유로 몇 년 전에 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과정을 함께 공부하느라 굽은 손가락으로 공책에 글씨를 쓰며 숙제도 하고, 셈도 해 보고, 그림도 그리고 소풍도 갑니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나날이 뭔가를 깨우치고 알아가는 재미를 배웁니다. 하지만, 학교란 역시 시험이 있었고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구분되기 시작합니다. 재미있다고만 생각했던 학교는 점점 어려워지고 모르는 것 투성이라 엄마는 슬슬 짜증이 납니다.


”애들이 공부하는 게 힘들긴 하겠어. 배워야 할 것도 많고 배워도 자꾸 까먹어. 어려운 게 너무 많아 “

”그렇지, 그러니까 매일 조금씩 배우고 외우고 하는 거지. “

”난 늙어서 머리가 안 돌아가, 머리가 아파서 골치도 아프고 신경질 나. “

”대충 하면 되지, 뭘 그렇게 신경을 쓰느라 그래? 시험 봐서 대학 갈 거 아니잖아? “

”남들 다 잘하는데 나만 몰라서 꼴찌 하면 좋겠어?!!... “

”.... “          



아, 그게 그런 말이 아닌데,,,, 결국 상을 펴고 모르는 걸 알려 주기로 하고 자리를 잡습니다. 고령인 데다가 뇌경색을 앓고 있어서 사실 엄마는 오랜 시간 집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스스로 뭔가 배워보려는 모습이 왜 그렇게 우습고도 슬퍼 보이는지 - 욕심도 많아서 남들 하는 건 할 수 있으면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데 그걸 혼자만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는 모양입니다. 스트레스의 시작이었습니다.






한동안 닭을 먹지 못했었던,


기억 속에서 가장 강력하게 남은 엄마의 모습은 '닭사건'에서 시작됩니다. 국민(초등) 학교 때, 집에 돌아왔을 때 넓지 않은 마당에 가득 들어찼던 닭들... 거의 스무 마리에 가까운 닭들이 정신없이 꼬꼬거리며 마당에서 각각 목줄을 벗어나지 못한 채 푸드덕푸드덕 뱅뱅 돌던 그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풍경입니다. 생활비를 아껴서 돈을 빌려주고 약간의 이자를 받으며 돈불리는 재미가 붙었던 엄마는 돈이 떼일 지경에 이르자 그 집의 닭을 몽땅 잡아왔던 것입니다. 일부러 돈을 안 준다고 생각한 엄마에게 자비는 없었고, 바로 다음날부터 매일매일 닭의 숫자가 줄어들더니 모든 닭이 사라진 날 밥상에 하얀 백숙이 올라옵니다. 이후 저는 한동안 닭을 먹지 못했습니다.


    

퇴근길에 시간이 될 때마다 들러서 엄마와 함께한 공부 덕이었을까요? 한동안 학교를 가기 싫어하더니 얼마 뒤 걸려온 전화, 목소리가 밝습니다.


” 야, 나 학년 올려준데! 시험에 안 떨어졌나 봐~“

” 거봐, 조금만 하면 되는구먼 그걸 못 참고 짜증을 내고 그래, 하여간 잘했으니 됐네, 축하혀~“        

"잘하면 졸업은 시켜줄 거 같아."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같습니다. 스트레스가 몸도 아프게 하고 마음도 아프게 합니다. 졸업을 하고 엄마의 링거 투어도 깔끔하게 끝납니다. 올여름 폭염은 더욱 극심해졌지만, 이제  엄마는 더 이상 병원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학교를 가고 삶에 자신감이 생겼다는 엄마, 유적지의 안내판을 찬찬히 읽고 박물관의 진열대를 유심히 보다 아는 내용이 보이면 눈을 반짝이던 모습은 꽤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서툴지만 핸드폰으로 셀카도 찍어보고, 뜬금없이 띄엄띄엄 적어서 안부를 묻는 카톡도 보냅니다. 엄마는 정말로 학교를 다니고 뭐든 배울 수 있는 학생이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제가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다가 혹은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종이도 접고 그림을 같이 그리며 뒤늦게 하나씩 같이 배우던 것처럼 -  엄마도 자식들과 같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세상 모든 일은 우연처럼 오는 듯하지만 사실은 서서히 어떤 신호를 보내는 듯합니다. 쉽지 않지만, 살면서 그 신호를 눈치챌 수 있는 영민함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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