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더운 한 여름엔 입맛을 잃기 쉽습니다. 끼니를 챙기지 않으면 금방 기운이 떨어지고 먹자니 입맛을 잃어 먹을 것이 마땅치 않습니다. 억지로 먹자니 체기로 고생할 일이 아득하고... 하물며 노인들은 입맛을 점점 잃어가는 터라 뭘 새롭게 해 놓아도 맛있다는 칭찬은 고사하고 도통 다 먹어지지를 않습니다.
그해 여름도, 이른 더위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태양의 열기로 창밖엔 아지랑이가 어른거리는 한낮, 뜬금없이 전화가 옵니다.
”나 병원에 들어왔어! “... 이게 무슨 소린가? 엄마가 왜 또 병원에???
순간, 그동안의 여러 사정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훑고 지나갑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몇 번의 접촉 사고를 겪었고, 뇌경색으로 쓰러져 큰 수술을 받았었고, 집안이 더럽다며 청소를 하다가 의자에서 미끄러지고... 무릎에 간헐적인 멍들이 남아있고... 이번엔 왜 또? 하... 갑자기 마음이 싱숭생숭해집니다.
”왜? 어디 다쳤어? “ “심각해? 많이 다친 거야? 입원할 정도로?” 다급하게 질문을 쏟아냅니다.
”아니, 링거 맞으려고, 밥맛도 없고 힘이 하나도 없어서 죽겠어. 확 죽지도 못하고... 이따가 집에 가서 뭐 좀 갖고 오라고. “
”... “
어릴 때 학교를 다니지 못해서 스스로 까막눈이라며 답답해하던 엄마는 이모의 권유로 몇 년 전에 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과정을 함께 공부하느라 굽은 손가락으로 공책에 글씨를 쓰며 숙제도 하고, 셈도 해 보고, 그림도 그리고 소풍도 갑니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나날이 뭔가를 깨우치고 알아가는 재미를 배웁니다. 하지만, 학교란 역시 시험이 있었고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구분되기 시작합니다. 재미있다고만 생각했던 학교는 점점 어려워지고 모르는 것 투성이라 엄마는 슬슬 짜증이 납니다.
”애들이 공부하는 게 힘들긴 하겠어. 배워야 할 것도 많고 배워도 자꾸 까먹어. 어려운 게 너무 많아 “
”그렇지, 그러니까 매일 조금씩 배우고 외우고 하는 거지. “
”난 늙어서 머리가 안 돌아가, 머리가 아파서 골치도 아프고 신경질 나. “
”대충 하면 되지, 뭘 그렇게 신경을 쓰느라 그래? 시험 봐서 대학 갈 거 아니잖아? “
”남들 다 잘하는데 나만 몰라서 꼴찌 하면 좋겠어?!!... “
”.... “
아, 그게 그런 말이 아닌데,,,, 결국 상을 펴고 모르는 걸 알려 주기로 하고 자리를 잡습니다. 고령인 데다가 뇌경색을 앓고 있어서 사실 엄마는 오랜 시간 집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스스로 뭔가 배워보려는 모습이 왜 그렇게 우습고도 슬퍼 보이는지 - 욕심도 많아서 남들 하는 건 할 수 있으면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데 그걸 혼자만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는 모양입니다. 스트레스의 시작이었습니다.
기억 속에서 가장 강력하게 남은 엄마의 모습은 '닭사건'에서 시작됩니다. 국민(초등) 학교 때, 집에 돌아왔을 때 넓지 않은 마당에 가득 들어찼던 닭들... 거의 스무 마리에 가까운 닭들이 정신없이 꼬꼬거리며 마당에서 각각 목줄을 벗어나지 못한 채 푸드덕푸드덕 뱅뱅 돌던 그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풍경입니다. 생활비를 아껴서 돈을 빌려주고 약간의 이자를 받으며 돈불리는 재미가 붙었던 엄마는 돈이 떼일 지경에 이르자 그 집의 닭을 몽땅 잡아왔던 것입니다. 일부러 돈을 안 준다고 생각한 엄마에게 자비는 없었고, 바로 다음날부터 매일매일 닭의 숫자가 줄어들더니 모든 닭이 사라진 날 밥상에 하얀 백숙이 올라옵니다. 이후 저는 한동안 닭을 먹지 못했습니다.
퇴근길에 시간이 될 때마다 들러서 엄마와 함께한 공부 덕이었을까요? 한동안 학교를 가기 싫어하더니 얼마 뒤 걸려온 전화, 목소리가 밝습니다.
” 야, 나 학년 올려준데! 시험에 안 떨어졌나 봐~“
” 거봐, 조금만 하면 되는구먼 그걸 못 참고 짜증을 내고 그래, 하여간 잘했으니 됐네, 축하혀~“
"잘하면 졸업은 시켜줄 거 같아."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같습니다. 스트레스가 몸도 아프게 하고 마음도 아프게 합니다. 졸업을 하고 엄마의 링거 투어도 깔끔하게 끝납니다. 올여름 폭염은 더욱 극심해졌지만, 이제 엄마는 더 이상 병원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학교를 가고 삶에 자신감이 생겼다는 엄마, 유적지의 안내판을 찬찬히 읽고 박물관의 진열대를 유심히 보다 아는 내용이 보이면 눈을 반짝이던 모습은 꽤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서툴지만 핸드폰으로 셀카도 찍어보고, 뜬금없이 띄엄띄엄 적어서 안부를 묻는 카톡도 보냅니다. 엄마는 정말로 학교를 다니고 뭐든 배울 수 있는 학생이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제가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다가 혹은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종이도 접고 그림을 같이 그리며 뒤늦게 하나씩 같이 배우던 것처럼 - 엄마도 자식들과 같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세상 모든 일은 우연처럼 오는 듯하지만 사실은 서서히 어떤 신호를 보내는 듯합니다. 쉽지 않지만, 살면서 그 신호를 눈치챌 수 있는 영민함이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