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 밤까지, 이름하여 '주말 전야'가 시작됩니다. 매주 맞는 주말이지만 매주 약간의 긴장(?)을 하게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녁시간이 되면 전화벨이 울리고 느닷없이 하소연이나 불만이 쏟아집니다. 역시나, 엄마의 호출입니다. 스토리의 내용은 비슷한 듯 매번 다릅니다. 근처에 살아 자주 가보고 필요한 것은 미리미리 챙기는 편이지만 돌발 상황은 늘 발생합니다. 그것도 어김없이 주말 전야에...
“야, 빨래를 해야 되는데 세탁기가 고장 났나 봐.”
“가스레인지가 무다히(괜히, 이유도 없이, 공연히 등의 의미로 사용되는 지역 방언) 안된다?! 산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벌써 고장 났나 봐? 너무 싼 걸 사서 그런가? 인터넷으로 사면 안 되겠네. “
"우린 김치냉장고에 김치가 자꾸 언다, 왜 그러지?"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 병원엘 가야겠는데 예약 좀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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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게 복합적이라 그런가요? 참 레퍼토리도 다양합니다. 어느 것 하나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습니다. 신기한 건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이 늘 밖으로 향해 있다는 겁니다. 스스로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하지 않고 너무 당연하게 말을 하니 진짜 뭐가 이상한가? 어떻게 한꺼번에 돌아가면서 이런 일이 계속 생길까? 처음엔... 그렇게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다, 아 엄마가 조작을 못해서 그렇구나. 볼 때마다 다시 말을 해주고 아무리 적어서 붙여줘도 일일이 혼자서 해결하기가 벅차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 번거롭더라도 또 해결을 하러 갑니다.
인생도 선행학습이 가능할까요? 수년간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마치 엄마를 통해 노년엔 어떻게 늙어가야 할지(어떤 걸 닮고 또 닮지 말아야 할지), 어떤 것을 미리 준비해야 할지 공부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세월을 선행학습 한다고 할까요? 가장 중요한 건강을 챙기기 시작한 것도, 더 시간이 지나서 무료하지 않기 위해 혹은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미루고 있었던 것을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것도 어찌 보면, 이게 다 엄마 덕분입니다. 그렇습니다. 무던히도 바쁘게 살고 있으니까요.
하... 그렇지만 오늘은 비바람이 심한데 왜 굳이... 비가 와서 우리 집도 전자 기기는 가끔 잘 안되고 오류가 나기도 한다고, 빨래는 좀 나중에 쨍한 날 하는 게 어떻겠냐고, 병원은 주말에 예약이 안되니 다음 주에 하자고, 기분을 좀 바꿔보자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 건 어떤지... 살살 달래 봅니다. 꽤 오랜 시간 의식의 흐름대로 통화를 하고 달래면서 그래도 부드러운 무드로 마무리합니다.
이탈리아 남부 사르디니아 섬의 장수 마을에 대한 글을 우연히 읽었습니다. 100살 넘은 노인들이 많은 곳이라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장수 비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서로 간의 유대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런 적절한 '관계의 유지'가 좋은 것을 먹고 잘 쉬고 운동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한 삶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 삶에서 가치로 남는 대부분의 것들은 결국 관계로 맺어진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정서적으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줍니다. 그런 관계들은 움직이고 성장하면서 끊임없이 존재 각각의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또한, 그 관계 속에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말이죠. 상대적으로 관계의 단절을 더 자주 경험하는 노인들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고립감을 느낄수록 여러 위험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통신이 발달하기 전 - 일주일도 넘게 걸려 도착하는 편지만이 안부를 묻는 유일한 수단이던 시절에 느끼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은 획기적으로 줄었지만 당장 눈앞에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조바심하고 막연히 불안해하는 노인들의 기분은 적절한 관계의 안정감에서만 극복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관계 속에서 우린 나이 먹은 것을 가끔은 벼슬이나 훈장처럼 휘두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족쇄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그 어느 것도 건강하지 못합니다. 관계의 적당한 거리로 만들어지는 물리적 공간이 때론 완충 작용을 하며 심리적 불안감을 안도감으로 바꿀 수 있게 구실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공간의 거리를 조절하다 보면, 집착과 무례함, 그리고 의무만으로 꽉 막혀있던 가족 간의 관계도 적당한 배려와 지속적인 관심, 예의를 바탕으로 조금은 유연하고 건강하게 달라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관계 저 밑바닥의 신뢰와 사랑이 스스로 더 자주 떠오르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이번에 나온 주민세는
꼭 공과금 낼 때 은행에서 같이 내라고 신신당부를 하긴 했는데,... 이번엔 잘 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