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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Sep 06. 2024

07. 지로가 안 오는데 돈을 어떻게 내라는 거야?!


노인들은 뭔가 물건을 사고 대가를 지불할 때 현금 사용을 선호합니다. 아무리 카드가 편리하고 자동이체가 편해도 스스로 돈을 쓴 것이 맞는지 누가 몰래 통장에서 돈을 빼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습니다.(심한 경우는 자신이 자동이체를 신청해 놓고도 출금된 사실에 기분 나빠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세련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살아온 경험이 늘 주의하고 조심하며 자기 것을 챙기며 살아야 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손해를 보기 쉽기 때문에,






세상은 편리해졌지만 맞춰 살기는 더 힘들다


월말이라 한창 바쁜 시간에 갑자기 전화가 옵니다.

“난데, 가스회사에서 사람이 왔는데 바꿔 주께.”

“..??...”



“여보세요?.. 할머니가 가스 요금이 밀려서 나왔는데요,......?? (거봐, 내가 뭐 고지서 하나가 안 나왔다고 그랬는데 그게 가스요금 용지였구먼.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아니 그런데 지로 용지는 주지도 않고 돈을 어떻게 내라는 거야?!..... 보냈데요? )"



전화기는 가스회사 직원에게 넘겨줘 놓고, 엄마는 그렇게 한동안 자신의 불만을 쏟아냅니다. 난 누구랑 통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가스요금이 미납으로 연체가 돼서 단선 전에 가스 회사에서 직접 실사를 나온 상태였습니다. 지로를 못 받은 엄마는 돈을 낼 수가 없다는 것이고, 가스 회사는 모바일 청구서를 보냈다며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합니다.(사실 둘 다 문제는 없었습니다.) 문제는 누군가가 어플에 가입을 해서 모바일 청구서로 신청을 했다는데 그걸 취소해야 다시 지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어찌 된 영문인지 확인해 보기로 하고 엄마는 급한 대로(엄마는 자신의 이름이 찍힌 고지서에 빨간색 글씨로 연체라고 적힌 것을 참지 못합니다.) 미납금 안내문을 들고 요금을 내러 갑니다.



아직, 엄마는 매월 정해진 고지서 몇 장을 모두 일일이 확인하고 금액을 맞춰서 은행에 직접 지로로 내고 있습니다. 어느 날은 은행 가기 귀찮다고 해서 자동이체를 권해보지만 일일이 확인하는 게 아니라서 아무 때나 당신 통장에서 돈이 나가는 건 싫어합니다. 할 수 없이 직접 은행에서 내는 수밖에 없는 것이죠.







가끔은 엄마의 기억력이 송곳 같을 때가 있다


똑같이 나이를 먹어도 누구는 자신의 나이보다 천천히 노쇄해지고 또 누구는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빨리 노쇄해지기도 합니다. 노인들이 점점 빨리 늙어가는 순간은, 자신이 하던 걸 누군가에게 도움을 자주 받거나 아무 할 일이 없어질 때라고 합니다. 그렇게 움직이는 반경이 점점 좁아질 때 스스로 안에 갇힌 듯한 시간이 늘어나면 노화가 더 가속된다고 한 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노인들이 적당히 움직일 소일거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 전, 나이를 막론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하자는 주의입니다. 자식들을 키우면서도 학교 준비물을 세세하게 챙겨준 적이 없습니다. 뭘 준비해야 하는지 확인 정도만 같이 하고 챙기는 것은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해 왔습니다. (설령 아이들이 자기가 챙길 것을 놓치더라도 그대로 둡니다. 어릴 때의 그런 실수도 중요한 경험이니까요.) 이건 그대로 엄마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돼서 꼭 도워줘야 할 것이 아닌 한 스스로 하라고 방법만 알려줍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알아서 하시도록 두는 편입니다.


"지난번에 네가 머 해야 된다고 하고 나서부터 안 온 것 같은데?"

"그게 뭐지? 그렇진 않을 건데,.. " 대답은 했지만 긴가민가 왠지 자신이 없습니다.


아, 그런데 어플을 보니 지난번에 설문조사차 뭔가 확인하느라 가입했던 것이 맞습니다. 엄마는 뭐였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걸 기억하고 있는지...  들어가 보니 모바일 청구서로 신청이 되어 있고 카톡 알림도 꼬박꼬박 보내준 기록이 확인됩니다. 처음에 지로가 안 온다고 했을 때 미쳐 확인을 못했던 제 잘못이었습니다.


“아, 내가 그때 뭘 하고 그대로 둬서 이렇게 됐네.”

“ 거봐, 내 말이 맞다니까. 왜 괜히 핸드폰을 만져 가지고는...”


냉큼 취소를 합니다.(가끔 이렇게 뜬금없는 타이밍에 드러나는 엄마의 기억력에 깜짝깜짝 놀랍니다.) 가스회사 번호를 적어주고 다음 달부터 지로로 보내도록 전화하라고 알려줍니다. 잘 모르면 가스 회사에서 전화 오게 제 전화번호를 알려주라고도 말은 했지만....



음, 다 끝난 건가? 어째 다음날은 종일 감감무소식입니다. 역시 뭔가 해결이 되면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참 한결같습니다.  






일주일쯤 뒤,

“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좀 했으니까 와서 먹어라! “

“....”


역시 당신 말만 하고 뚝! 참나, 아니 5시에 갑자기 어떻게 가나요??? 아니,... 아직 근무 중이라고요!!!



퇴근길, 갑자기 매섭게 비바람이 불어 가뜩이나 숨 막히는 날씨에 습기가 한층 더해져 꿉꿉함이 몸에 감깁니다. 오늘은 엄마가 수영장 가는 날인데 안 까먹고 잘 갔으려나?? 오늘 같은 날은 좀 안 가도 되겠구먼... 떡볶이도 먹을 겸 잠시 들러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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