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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Aug 30. 2024

06. 노인들이 이유 없이 바쁘면 조금 위험하다


아침 출근길 20여분 정도 걸어야 하는 산책길이 있습니다. 꽤 이른 시간에도 늘 많은 많은 사림들이 자신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을 봅니다. 덕분에 저 역시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게 됩니다. 조깅, 워킹, 산책길 쓰레기 치우기, 길 쓸기 등등. 운동을 하는 젊은 사람들 외에도 노인들은 길을 쓸거나 쓰레기를 치우고 길냥이의 먹이를 챙깁니다. 그 외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거나 혼자 조용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기도 합니다. 매일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씩 다른 유형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아침 풍경이 꽤 괜찮은 곳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엄마는 이 길을 걸은 적이 없습니다. 엄마는 왜 이 길을 한 번도 걷지 않을까?





엄마의 사회생활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 가는 길에 들러 수제비 먹고 가! “

“ 아니 미리 말이라도....... 뚝, 뚜뚜뚜... “

밑도 끝도 없이 온 전화에서 당신 말만 하고, 그리고 통화 종료.... 그래서 또 갑니다.


오랜만에 무더위 안부차 들렀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문득 핸드폰을 봅니다. 본 적 없는 어플이 깔려 있어 열어보니,...??? 이건 또 하.... 팔순이 지났지만 엄마는 늘 바쁩니다. 주 2회 아쿠아로빅에서 운동을 하고, 일요일은 성당을 나갑니다. 그리고 주기적인 병원 방문과 여러 친구 모임들,...  날이 심하게 궂은 때를 빼고는 집에서 쉬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간혹 친구가 아닌 사람들이 등장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턴가 집에 들를 때면 간간히 엄마폰을 들여다봅니다.(집에 가면 핸드폰 최근 통화 내역과 문자, 카톡을 살펴봅니다. 세상이 너무 위험해서...)



주 3일을 꼬박 출석하는 곳이 확인됩니다. 유 OOO 종오점?, 어플을 둬져 보니 엄마의 개인정보가 기재된 채 '사원'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두 사람의 이름. 매출 현황을 보니 주기적으로 뭔가 물품을 사고 있었습니다. NGO에서 근무를 하면서 숱하게 봐 왔던 영업 행위입니다.(우리나라에는 이런 조직이 생각보다 훨씬 많고 촘촘하게 영업을 합니다. 당연히 법적으로 불법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는 합니다.) 피라미드처럼 서로 엮어서 물건을 팔고 사고... 당신이 필요해서 구매한 것이라고 하지만 노인이 주기적으로 사서 쓰기엔 너무 잦은 구매입니다.(그들에겐 고정 거래처인 셈입니다.) 어쩐지 화장품을 자주 주더라니.... 못 보던 휴대폰 지갑을 목에 걸고 걸음수를 확인해야 한다(거기 총무가 알려줬다며 고마워 합니다.)며 더 분주하게 움직이는 엄마는 전보다 더 활기가 있어 보이는 건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도 보입니다. 불안합니다. 매주 3일을 오전에 가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같이 식사를 하고 헤어지면서 가끔 물건을 산다고 합니다. 이런 방문 판매, 할부거래 - 이런 류의 영업들이 끈질기게 살아남는 중심에 노인들이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그 안에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착잡합니다.






자식 걱정보다 엄마 걱정이 더 크다


속이 터집니다. 보통은 자랄 때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성장하고 스스로 부모가 되어서는 자식들을 걱정하며 나이 들지 않나요? 그런데 전 아닌 것 같습니다. 극 내향인인 저는 생활범위가 극히 단순합니다. 어릴 땐 학교와 집, 성인이 되고 나서는 회사와 집, 나이를 먹고는 더더욱 자잘한 약속은 잘하지 않습니다. 가급적 혼자 시간을 보내려고 애쓰는데도 꽤나 바쁩니다. 사실 엄마처럼 외향인들의 활동 반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엄마의 행동반경을 보면, 그 에너지의 원천이 남다르긴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일일이 이렇게 문제 해결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무리 엄마지만 도무지 무슨 생각으로 반복적으로 저러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이걸 또 어떻게 해결하고 끝내야 하나, 난감합니다. 일 처리야 어찌어찌한다 치지만 속상한 것은 젊은 시절을 그렇게 힘들게 고생하고 살았으면서 너무도 쉽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선뜻 물건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과 노력이 아깝지 않은가?!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자꾸...... 짜증이 납니다. 과연 이 반복적인 일들에 끝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각종 건강보조식품과 화장품, 지역 특산품들(항상 집에 갈 때마다 알 수 없는 보조식품들이 있습니다. 사실 엄마는 뇌경색 환자라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은 그렇게 계속 엄마 집에 택배로 도착합니다. 이런 귀찮은 일들을 이유로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안타깝고 속상할 뿐입니다.






험한 세월을 살면서 다져진 마음의 중심이 단단하다 해야 할지, 불행한 시대를 이겨내며 사느라 만들어진 고집을 안쓰럽다 해야 할지...  하... 남들은 자식 걱정하느라 정신이 없다는데, 저도 이제 제 자식들 걱정하는 시간을 보내보고 싶습니다. 사실 자식들은 각자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을 알아서 잘들 가고 있어서 뭐 제가 굳은 소릴 할 이유가 없습니다.(이건 분명히 제 복입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엄마를 보며, 제가 가진 고집과 생각들이 시간이 흐르더라도 그대로 굳어지지 않게 스스로 잘 돌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엄마가 세상 속을 사는 방식은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당신의 시간(엄마는 매번 이제 살날이 많지 않다고 말버릇처럼 이야기합니다.) 안에서 아쉬움을 줄이며 살아보려는 나름의 방식 중 하나가 아닐까도 짐작해 봅니다. 그런 면에서 안타까움이 크지만, 더 자주 만나고 더 자주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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