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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Oct 04. 2024

11. 밤에 무섭게 어딜 나간다고 그래?


여행이란 참 묘해서 누구나 집 밖을 나가면 안 하던 행동을 하기도 하고 평소엔 궁금해하지 않던 것도 궁금해하곤 합니다. 저 역시도 여행을 가면, 가끔씩 안 하던 행동들을 할 때가 있습니다. 평상시면 대충 먹을 것도 굳이 오랜 시간을 들여 찾아가서 먹고 싶은 것을 먹거나 괜히 여유 좀 부려보겠다고 평상시 잘 걷지도 않던 길을 걸어보곤 합니다. 특히, 지역에 따라 가끔 야간에 돌아다녀 보기도 합니다. 낮과 밤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은 많이 달라서 새로운 풍경이 주는 감흥도 좋고 낯선 곳을 두리번거리며 약간 곤두서있는 까칠한 기분을 즐기기도 합니다.






엄마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어



젊었을 땐 시간도 마음에 여유도 부족해서 하지 못했지만 10여 년 전부터 엄마와 둘이 가끔씩 여행을 가곤 합니다. 엄마가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여행 다니는 걸 보고 여행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늘 가족을 돌보느라 가족 여행을 갈 여력도 못됐었으니까요. 가족 여행이라 해봐야 모두 같이 가도 여전히 엄마는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었고 여행다운 여행으로 걱정 없이 가보기는 어려웠었습니다. 최근 들어, 둘이 떠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이 다른 가족들과 시간이 맞지 않아 시작이 되었지만, 둘이 가니 더 많이 이야기도 하고 직접 신경을 쓰고 챙길 수 있어서 좋습니다. 엄마 친구가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이건 마치 꽃할배의 이서진 같은 느낌 체험판인데요,... 함부로 동행을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전 그때 3박 4일 노동만 하고 왔었던...)               



얼마 전에 가족들과 국립치유원엘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깊은 산속에서 느긋하게 쉬어보겠다는 것이 목적이었고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을 때라 좋았습니다. 자연휴양림과는 또 조금 느낌이 다릅니다.(지역마다 특색 있는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용하고 드믄드믄 보이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사방의 물소리를 들으며 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밤하늘 별이 보일 것 같아 늦은 시간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하... 그런데, 엄마는 깊은 산속이라 산짐승이 나와서 위험하다며 한사코 만류합니다. 그전에 둘이 여행을 갔을 때 경주 시내를 돌면서도 자꾸 빨리 가자고 재촉을 하던 기억이 납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뭐 별로 힘들지는 않네, 다음에 또 같이 가자



좋은 곳에서 좋은 구경을 하자고 떠나면서도 막상 도착하면 신나고 들썩하던 기분은 금세 가라앉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예전 엄마가 젊었던 시절 혼자 어딘가로 무작정 차를 타고 떠났다가 돌아오느라 무척 애를 먹었었다고 합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떠나 도착한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그저 갔던 곳이 어둑해지면서 느꼈던 그 불안하던 기억이 아직 남은 걸까요?



일정을 다 마치고 돌아올 땐 세상 기분 좋은 얼굴로 목소리도 나긋나긋해집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요?? 어렵습니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의 경험을 극복하기란 좀처럼 어려운가 봅니다. 뻔히 알지만, 알기 때문에 더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이젠 그러려니 합니다. 다음 주 근처에서 캠핑 예정이라 기을 소풍처럼 가볍게 다녀올 계획이지만 마음처럼 그렇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상컨데,


“가까운데도 이런데가 있었어? 나오니까 좋네.”

“날 저무니까 추워진다. 가자! “...???


이 두 가지 워딩이 이미 들리는 듯합니다.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당최 알 길이 없지만 뭐 그때그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반응하는 엄마 기분이 변하는 거라고 생각하렵니다. 아무래도 저녁엔 조금 쌀쌀해지는 시기니까요. 뭐 여전히, 극단적인 반응이 예상되지만 어디 여유 있게 널브러져서 시간을 보내는 걸 해 본 적 없는 삶이었기에 그러리라 이해해야겠지요. 참 매번 같은 반응일 것이 뻔한데도 매번 같은 계획을 세우는 저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를 가자고 하면 뭐 하러 가냐, 어디를 맨날 모르는 데를 그렇게 갈라고 하냐, 그 먼데를 왜 가냐, 왜 이런 산골까지 오냐, 낯선 데를 겁도 없이 다닌다고 걱정 아닌 적정과 비난을 끊임없이 쏟아붓는 통에 좋은 소리 한 번을 못 듣고 투덜거리는 상태로 여행을 계속해야 합니다. 결국 돌아오는 차를 타고서야 조용해집니다. 서울에 확실하게 발을 딛고서야 잘 갔다 왔다며 다음에 또 가면 그때도 같이 가자고 합니다.



"안 힘들었어?"

"난 뭐 그냥 차만 타고 따라다니기만 해서 힘은 하나도 안 들었어.(이건 인사치레가 아니라 정말 따라다니기만 해서 하는 말입니다.)"


갑자기 2호가 장난처럼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할머니, 공주님이야 공주님!"

아, 엄마는 정말 공주였나 봅니다. 당신만 모르는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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