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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Oct 11. 2024

12. 네버엔딩, 김치, 김치, 김치 스토리


개인적으로 김치를 참 좋아하지만, 식습관이 많이 바뀌기도 해서 확실히 김치를 그전처럼 자주 먹지는 않습니다. 수년 전부터는 김장도 하지 않습니다. 엄마가 하던 예전의 김장과 비교하면 소꿉장난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고 이젠 비용과 시간을 핑계로 그때그때 사 먹곤 합니다. 성능 좋은 김치냉장고가 적당한 맛을 유지해 주니 실수로 잘못 담은 김치를 두고 먹어야 하는 곤욕을 피하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엄마는 매년 아직도 ‘김장 이벤트’를 합니다.(아마도 심리적 안정을 위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혼자 먹는 거라 양이 작다고 하면서도 결국 담은 김치를 다 먹지 못합니다. 귀찮아서 밖에서 친구들과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잦다 보니 소비가 안 되는 것이죠.          






고춧가루가 모자라도록 무조건,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먼저 김치를 담고 나서 무조건 가져가라고 독촉을 합니다.

“김치는 담가 먹어야 제맛이지, 사 먹는 건 맛이 없어.”

김장을 시작하기 전부터 김장 김치를 다 먹을 때까지? 음, 거기서 끝나면 또 그나마 다행입니다. 사계절 내내 철철마다 야채들은 또 왜 그리도 다양하게 나오는지, 그만큼 김치의 종류도 무궁무진합니다. 말 그대로 김치 스토리는 네버엔딩... 정말 끝이 없어 보입니다. 혼자인 엄마는 매년, 고춧가루가 늘 부족합니다. 1년 내내 엄마의 김치를 받아먹어야 하는 복에 겨운 자식의 투정(엄마가 아직 계셔서 가능한 호사인 줄은 압니다.)은 또 이렇게 구시렁거립니다.




저는 신기하거나 맛난 것을 사면 (먼저 의사를 물어보고) 자식들과 나눕니다. 그저 엄마처럼 무조건 해주지는 않습니다. ‘해준다’는 것과 ‘나눈다’는 것의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엄마에게는 ‘당신‘이 없지만 저에게는 ’ 내‘가 먼저 있다는 차이인데요 그 차이는 꽤 큽니다. 그만큼 어쩌면 제가 희생적인 것엔 재주가 없는지도 모릅니다. 엄마는 이기적인 듯해도 무조건 해 줄줄 아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필요와 상관없이.  당신이 없는 행위이기에 욕심도 없어서 강요(강제성)가 가능한가 봅니다. 저는 그저 약간의 나눔만 할 줄 아는 배포라서 적당한 거리 유지가 가능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엄마는 제 의사와 상관없이 거리감이 없습니다. 제가 멀리하려고 하든 말든. 사실 이 말은 무한 사랑이겠지만 제가 아직 엄마와의 관계에서는 잘 모르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제발, 김치에 모르는 것 좀 넣지 말아요


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습니다. 아버지가 워낙 까다롭기도 하고 혼자 이렇게 저렇게 뭘 만들어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합니다.(이런 건 저도 닮은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재료나 맛에 꽂히면 '실험'이 끝날 때까지 만들어 봅니다.) 덕분에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계절마다 먹어야 할 것들은 빠지지 않고 잘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지금은 오징어김치를 하지 않지만, 예전엔 오징어 김치가 맞는 줄 알았습니다. 사실 오징어를 넣으면 김치가 시원하고 맛이 좋습니다. 그런데 가끔 동태를 사이에 살짝 끼워 넣거나 해서... 생선을 못 먹는 저는 식사 중 깜짝 놀라 수저를 내동냉이치곤 했었습니다... 기절초풍할 지경인데, 엄마는 천연덕스럽게 김치가 익으면 동태가 스르르 녹아서 없어질 줄 알았다네요..... 아니, 그럼 그 흐물거리는 뼈는요?!



작년 김치가 아직 많다며 아예 김치통을 통째로 넘겨줘서 묵은지처럼 먹고 있는 김장김치, 뭔가 씹히는데 잘게 잘라지지도 않고 잘 씹히지도 않고 자세히 봐도 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김치를 먹을 때마다 김치를 한 장 한 장 양념을 훑어가며 먹습니다. 끝까지 엄마는 당신이 뭘 넣었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황새기 젖인지 굴인지, 또 다른 그 무엇인지...  김치를 먹을 때마다 불안해서 긴장을 해야 하는 건지 원. 아니 '액젓'이라고 좋은 게 많잖아요! 정 넣고 싶으면 그 액젓을 넣으시라고요~!






당신이 한 김장김치를 먹지 않았다가 캠핑에서 가족들과 함께 먹으며 그 맛의 진가를 문득 깨닫는 엄마,

"이렇게 먹으니까 제법 맛있네. 괜히 구박하고 안 먹었잖아?,...."  김치를 '구박'했다니, 어떻게?? 김치랑 싸우는 엄마가 보여 그저 웃습니다.



한국 김치 종류를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배추김치, 백김치, 물김치, 섞박지, 총각김치, 열무김치, 파김치, 오이김치, 무김치, 오이소박이, 고들빼기김치, 열무김치, 가자미식해(이젠 하지 않습니다.), 고추김치, 갓김치, 보쌈김치, 오징어김치, 더덕김치, 나박김치, 부추김치, 콩잎김치, 깻잎김치, 동치미, 무생채, 겉절이..... 이러고 보니 대단합니다. 이 정도로 김치 종류가 많은 줄 몰랐습니다. 저는 엄마 덕분에 이 많은 김치 종류를 알고 있었네요. 그나저나 또 김장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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