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찍은 사진을 둘러볼 때마다 참 어리석었구나, 참 젊었었구나...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합니다. 젊고 어려서 뭘 몰랐고 대부분이 날들이 어리석음이었지만 또 그렇게 마냥 부끄럽지는 않을 때였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난 후 지난 시간을 볼 수 있는 사진이나 영상을 되돌아보면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합니다. 아이들의 모습도, 그 안에 함께한 부모들의 어린 시절 모습도 많은 이야기를 환기합니다. 그리곤 문득, 첫째 아이의 자료보디 둘째 아이의 자료가 훨씬 더 많고 그럴싸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왜일까요?
뭐든 처음 하는 것은 늘 어설프고 촌스럽습니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정성을 쏟아부어도 그 결과물은 그냥, 그렇고 그렇습니다. 두 번, 세 번의 과정이 있어야 다듬어지고 요령도 생기고 모양도 그럴듯해집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처음 부모가 되는 순간, 그 충격적인 감격은 낯설고도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주지만 그 역할을 다하기까지는 끙끙거리는 과정이 수도 없이 반복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걸 그땐 모릅니다. 물론, 그럴듯하게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만큼 어설프고 촌스럽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노력하고 성장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사진을 보면 항상 1호를 기르던 때의 사진은 참 많이 어리숙합니다. 뭔가 엉성하고 쩔쩔매는 부모의 시작이 보입니다. 2호와의 사진은 조금 다릅니다. 사진의 포즈도, 표정도 조금 여유 있어 보입니다. 경험으로 알아서 조금 자연스러워진 걸지도 모릅니다. 처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 찰나를 자주 놓치고 말았으니까요. 상대적으로 1호의 자료가 더 부족한 건 부모들의 어리숙함 때문에 놓친 경우가 많습니다. 육아의 첫 경험은 모르고 놓치는 슌간이 많습니다. 매번, 뭐지? 무슨 일이지?... 비슷하지만 다른 과정이 반복됩니다. 두 번째는 대략 어느 때쯤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때문에 육아에 관한 한, 특별히 자책할 이유는 없습니다.
첫째를 키우며 놓친 찰나의 순간도 그렇게 둘째엔 기록되기도 합니다. 기억이 기록으로 남아있던 남아있지 않던 부모의 뇌와 마음속엔 영구 저장된 시간들이 고스란히 쌓여 있습니다. 아이를 직접 키우지 못하는 부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 각각의 순간이 지나면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그런 면에서 비록 내 일을 포기해야 했지만 십 년을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로 한 결정은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내 인생의 몇 가지 잘한 것 중 가장 큰 것이기도 합니다. 더 많이 보고 떠들고 웃고 싸우고 시비 걸던 것들이 양분이 되어 다 자란 지금은 서로 할 얘기들의 연결 고리가 되고 대화의 촘촘한 그물이 되어 줍니다. 바쁜 생활들 속에서도 늦은 시간까지도 이야기가 풍부해지는 이유입니다. 피곤하지만 피곤하지 않은...
두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고 키우는 것에 한 점 의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놀 줄 알고 스스로 뭔가를 해 보는 아이들로 자라는 것이 학원을 뺑뺑이 돌며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그렇게 사는 아이들보다 조금 심심했을지 모르지만, 지나고 보니 그래도 함께 할 시간이 더 많았었기에 괜찮았습니다. 잠시 아이들을 가르치던 때, 언니 오빠들을 따라 멋도 모른 채 영어를 따라 하던 2호는 굳이 학원을 가지 않고도 언어에 대한 흥미를 유지한 채 자랐습니다. 유치원을 다니지 않은 덕에 학교 생활을 궁금해하며 매일 기대를 안고 신나게 학교를 가던 1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다들 지쳐있는 저녁 시간, 고학년이 되어서야 처음 간 학원에서 친구들의 시큰둥한 표정을 궁금해하던 1호의 질문도 기억납니다. 미워서가 아니라 어리숙해서 놓친 것들이 많았지만 부모의 기억엔 조각조각 영롱한 무늬로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보석처럼 박혀 평생 빛이 납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처음엔 무엇이든 누구나 얼레벌레 어설프다는 거? 그래서 다음이 있고 두 번째가 있지만 그다음도, 두 번째도 역시 처음이란 걸요? 우린 매일, 매번, 매 순간 처음을 맞으며 살고 있고 그렇게 처음이 쌓여 또 난생처음 죽음을 맞게 될 예정입니다. 처음은 제법 설렌다고들 하던데, 마지막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지금은 나이를 먹었지만, 어쩌다 얼레벌레 매번 처음을 시작했고 그 처음을 아직도 매일 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가 아닌 오늘입니다. 지금은 예전이 아닌 지금입니다. 내일도 있겠지만 공평하게도,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알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지금을 사는 이 순간은, 그래서 설레며 마음껏 살아도 됩니다. 그게 지금의 최선이니까요. 어설프나마 육아로 아프고 고민하던 엄마가, 그땐 혼자였지만 지금은 같이 살아갑니다. 이젠 다 커버린 아이들과 또 어영부영 어른처럼 살아보려고 합니다.
육아는 정답이 없고 모두에게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동안의 글 조각들이, 자신의 육아 과정을 혼자 힘들어하는 분들의 마음에 작은 위로와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부모로서 육아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충실한 육아를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괜찮습니다. 오랜 동안 매번 시간 내서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