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A는 양자택일 기로에 서있었다.
바로 '물질'과 '국민'중에 한쪽을 택하는 것이었다.
A는 국민 쪽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소리쳤다.
"아니 , 이게 무슨 고민할 문제입니까?
당연히 국민이 최우선이고 최우선이고 최우선입니다.
국민이 잘되야 나라도 잘되는 것입니다!"
그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국민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손으로 국민의 목을 붙잡고 거세게 비틀기 시작하였다.
국민을 쥐어짜고 쥐어짜기 시작하였다.
국민들은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그 몸에서 피고름이 나왔고 , 그 피고름에서 현금이 나오고 있었다.
A는 자신의 계산대로 양자택일의 물질보다
국민을 쥐어짜 나오는 이 물질의 양이 더 많았다.
비명과 한숨, 눈물 속에 울부짖는 국민들을 향해 A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말했다.
"후후... 저 역시 이 나라의 국민 중 하나입니다."
그는 강단 위에 올라갔다.
순백의 하얀 옷을 입은 L 은
인자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갈 겁니다
갈 겁니다
위로
저 위로
저 위로
그대로 바닥에
천천히
편안히
누워요
따스함을 느껴요
포근함을 느껴요
솜사탕 구름 위에 있다 생각하고
천천히
누워요"
그의 말을 듣고-공중을 향해 고개를 든 (누군가는 그를 힐끔힐끔 보며) 사람들의 얼굴에는 경외, 감동, 붉게 충혈된 눈빛이 서려져 갔다.
"모두들 오른손을 펼쳐요
공중을 향해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펼쳐요"
사람들은 그의 말을 따라 오른손을 들었다.
"이제 축복의 비가 내립니다.
이제 은총의 비가 내립니다.
이제 사랑의 비가 내립니다.
빛의 은총이
빛의 물결이
우리를 환하게 비추며 감싸 줄 겁니다."
사람들은 환호. 환호. 또 환호했다.
눈물 흘리는 소녀, 소년들
같이 따라서
박수 착착착
손뼉 착착착착
그런데
축복의 비
은총의 비
생명의 비가 아닌
산성비가 내리고 있다.
검은비가 내리고 있다.
그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사랑비입니다.
이건 치료비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마음과 정성을 모아
영혼의 치료비를 내야 합니다."
몇몇이 일어나 검은 헌금함을 들고
주변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헌금함에는 순식간에 돈 봉투가 쌓여가고 있었다.
난 무심코 보았다.
인자한 미소의 그
그의 오른팔에 슬며시 드러나는 뱀 문신을
내 안에 진정한 자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무서우 게 뭔지 알아?
차갑고
서늘하고
깜깜하고
공포스러운 암흑이 아니야
바로
빛이라 굳게 믿었던 것이
사랑이라 굳게 믿었던 것이
진실이라 굳게 믿었던 것이
암흑이었을 때야"
그가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다들 그와 함께 오른손을 들었다.
그 은총 앞에
전율 부르르
감각 부르르르
한 두 명-세네 명-다섯여섯...
점차
점차
도미노처럼 쓰러져갔다.
부르르 떨며 쓰러져갔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경외, 감동, 붉게 충혈된 눈빛이 서려져 갔다.
사람들이 울고 있다.
감탄, 경배, 환희에 찬 눈물을 흘리고 있다.
L 도 겉으로 울고 있다.
하지만
그 오른팔에 뱀은 키득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