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검은 박쥐의 꼬리를 붙잡았어.
검은 박쥐의 머리를 짓밟았어.
분노의 기운을 담아
승리의 염원을 담아
그렇게 밟고 밟고 또 밟았어.
짓밟힌 박쥐의 얼굴을 보며
그는 본인이 진정한 승리자라 생각했어.
(희열감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지.)
그런데 뭉개진 박쥐도 희미한 미소를 지었어.
왜?
그의 얼굴이 점점 박쥐의 얼굴로 변해가고 있어서였지.
박쥐도 (희열감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어.)
*뜨겁던지 차갑던지
거짓인지 진심인지
이제 하나만 결정해야 해.
지금 하나만 선택해야 해.
미지근한 게 사실 악이 더 좋아하는 거라네.
섞으려는 게 사실 악이 더 조소하는 거라네.
그는 자신의 얼굴이 박쥐의 얼굴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물러섰네.
(하지만 이내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
자신의 얼굴이
검은 박쥐가 아닌 하얀 박쥐로 변해가고 있어서였어.
시커먼 색이 아닌 순백의 색으로 변해가고 있어서였어.
그는 검은 박쥐를 보며 말했어.
“그렇지. 난 이딴 더럽고 간교한 쓰레기와
다르지 암 다르고 말고”
뭉개진 검은 박쥐는 그런 그를 비웃듯
여전히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네.
*뜨겁던지 차갑던지
거짓인지 진심인지
이제 하나만 결정해야 해.
지금 하나만 선택해야 해.
미지근한 게 사실 악이 더 좋아하는 거라네.
섞으려는 게 사실 악이 더 조소하는 거라네.
박쥐가 날개를 활짝 피네.
꼬리를 살랑살랑 거리네.
그리고 키득거리며 지껄였어.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하지.
그래서 난 이 꼬리를 계속 네게 내밀 거야.
네가 내 꼬리를 잡아 이겼다 생각하게.
네가 내 꼬리를 붙들어 승리했다 굳게 믿게.
그리고 언젠가 보게 되겠지.
사실
내 뒤를 계속 따라오고 싶어 하는 네 모습을.
내 꼬리를 잡기 위함이라 하며 합리화하는 네 모습을”
친구여
이제 눈을 떠야 해.
지금 일어나야 해.
그 합리화에서 벗어나야 해.
박쥐가 머리 위에 맴돌며
여전히 긴 꼬리를 흔들고 있다고?
박쥐는
꼬리가 길지 않다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요한 계시록 3장 1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