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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콘 Sep 08. 2023

[차대왕] 갖고 싶으나 가질 수 없는 것

“…어림도 없다…”




입에서 피를 흘리며 한백은 자기 칼로 자신을 찌른 흑막병의 목을 그대로 관통시켰다. 목이 달아난 흑막병은 그 자리에서 피를 분수처럼 쏟아 내며 쓰러지자 한백의 등 뒤에 있던 병사가 그를 치기 위해 칼을 높이 들었다.



상오는 재빨리 한백의 뒤로 뛰어가 몸을 날려 그 칼을 받아 내며 방 밖으로 함께 나가 떨어졌고, 그는 흑막병 위에 올라타 주먹으로 부하의 얼굴을 몇 차례 날렸다.



입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에 붉은색이 퍼지며 상오의 부하는 말했다. 




“어째서…”




상오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운강은 어디 있느냐!”




상오의 물음에 그의 밑에 깔려 있는 부하는 한 번 더 피를 토할 뿐 답하지 않았다.




“아버지!”




소야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한백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상오는 배를 뚫고 지나간 칼을 빼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앉은 한백을 발견했다.



그는 너무 많은 피를 입에서 토해내 수염이 이젠 전부 붉은색이었고, 그의 도깨비 같던 눈은 눈꺼풀이 서서히 감기며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소야는 그의 아버지를 어찌해야 할 줄 몰라 그의 무릎에 손만 올린 채 목이 찢어져라 소리 질렀다.




“안 돼요! 아버지!”




한백은 그녀의 울음소리에 겨우 눈을 돌려 그녀를 바라본 후 피가 흥건한 손으로 그녀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참… 곱구나…”




소야가 할 말을 잃고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힘겹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미안하다…”




그때 상오가 짓누르고 있던 흑막병이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뜯어낸 후 방 안으로 얕게 던져 보냈다. 상오가 방심한 것이다.



까마귀의 폭탄은 한백의 발치에 닿고는 그대로 폭발해 버렸고, 방 안의 지지대를 날려 먹는 덕분에 지붕이 그대로 내려앉아버렸다.



연기 속에 겨우 몸을 날려 폭발을 피한 그는 마당까지 굴렀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니 흑막병이 주춤대며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상오는 순식간에 허리띠에 있던 단검을 꺼내 흑막병의 목을 베어 버리고는 망연자실하게 막근의 처소가 불타는 것을 바라보았다. 




‘단 하나였는데…’




그는 눈에 눈물이 가득 차 올랐다.




‘진심으로 지키고 싶은 단 하나였거늘…’




그는 혹시 모른다는 마음에 불이 한창 타오르는 나뭇더미로 올라갔으나, 이내 발견한 것은 기둥에 깔린 채 죽어 있는 소야의 시체였다.



상오는 서럽게 울며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는, 그녀의 머리에 꽂혀 있던 도라지꽃 비녀를 빼서 자기 품에 넣었다.



말 한번을 걸지 못한 자신이 너무 미웠고, 그녀를 지키지 못한 것이 한이 되면서 그는 단 한 번도 자기 뜻대로 한 적이 없다는 걸 떠올렸다.



그 생각은 곧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그늘졌고, 지켜왔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졌다. 그는 주저앉은 채로 비녀를 손에 들고 소리를 질렀다.



몇 번을 연달아 비명을 지르며 그는 밝게 빛나는 달을 저주했고, 이 모든 것들을 저주했다. 불이 그를 감싸올라 마치 상오는 달이 불에 닿는 듯이 보였고, 점점 달이 붉게 물드는 듯이 보였다.



곧 그의 시선은 세상 모든 것이 붉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힘을 느끼며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직전까지 그가 지르던 소리와 모양새가 달랐다.



무언가, 굵고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그는 씩씩대며 자기 앞에 곤히 잠든듯 눈을 감고 있는 소야의 얼굴을 보았다. 소야의 얼굴 또한 붉게 보였다. 그는 소야를 향해 손을 뻗다가 이내 자기 손을 보고 놀랐다.



사람의 손이 아니었다. 무성하게 자란 검은 털이 팔을 감싸고 있었고, 손이 이전에 자신이 알던 것과는 다르게 상당히 부풀어 있었다.



검은 털은 손등은 물론 손가락 끝까지 자라 있었고 손톱도 길어져 있었다. 괴이했다. 그는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힘이 터질 듯이 세지는 것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소야를 덮고 있던 지붕들과 돌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분명히 이전에는 절대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낼 크기의 돌들이었는데, 조금만 힘을 줘도 쉽게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이미 넝마가 된 소야를 죽은 후에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그는 턱이 미친 듯이 흔들릴 정도로 울음이 멈추지 않았고, 아무 힘도 없이 축 늘어진 소야의 모습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눈물을 소야의 볼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다가 그녀의 품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이전에 그가 전해줬던 부여의 돌이었다. 그는 두 손가락으로 그 돌을 집어 보면서 그날의 두 사람을 기억해냈다. 그는 그녀의 행복을 바랬을 뿐이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그는 그녀를 안은 채 고개를 쳐들고 분노와 슬픔이 가득한 고함을 질렀다.



그 고함이 얼마나 컸던지, 그를 감싸고 건물을 태우고 있던 불이 그 소리로 거의 꺼져 버렸다. 그는 소야를 다시 그 자리에 눕히며 두 손을 가지런히 허리에 올려노았고, 그 손 아래에 자신이 주었던 돌을 끼워 놓았다.



그는 잔해에서 걸어 내려오며 생각했다. 모두 없애버리겠다고.




* * *








 막덕은 서문의 병사들과 함께 한창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에게 위병 중 하나가 물었다. 




“저하. 무슨 좋은 일이 있으셨기에 이렇게 만찬을 저희에게 하사하시나이까?”




막덕은 그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내 그대들의 노고를 평소 귀히 여겨 한 번도 이런 대접을 한 적이 없음을 뒤늦게 사과할 뿐이다. 달도 밝고 고구려의 미래도 밝으니, 이 어찌 술 마시기 좋은 날이 아니더냐. 게다가 이 막덕이 아니면 누가 그대들을 이렇게 챙겨 주겠느냐?”




위병들은 술잔을 들어 올리며 세자를 향해 호탕하게 웃었고, 막덕은 잔이 지겨워졌는지 병 채로 입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그와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위병장은 그에게 말했다.




“호탕하기가 적호와 같고, 이렇게 배려하심이 하늘과 같으니 실로 세자저하는 고구려의 미래에 광명을 가져다주실 것이 분명하옵나이다!”




막덕은 그의 말에 더 크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이전 같으면 그런 말도 끝 맛이 씁쓸했다. 언제나 그가 두 번째 세자라는 점이 그를 멈칫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형은 고구려를 떠날 것이고, 이제 세자는 하나뿐일 것이다. 그렇게 웃던 도중 구석에 한 작은 노병이 중얼거리듯 말하는 것이 들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왕께서도 건재하시고 막근세자가 계시는데 그런 말씀은…”




위병장은 노병의 말에 웃음기를 싹 뺀 얼굴로 노병을 째려보았다. 왜소한 체격의 노병은 그의 표정에 고개를 숙이며 겁을 먹었고, 위병장은 그의 반응을 본 후 다시 웃으며 막덕에게 술을 따라주려는 듯 술병을 내밀며 말했다.




“아하하. 저 늙은 놈의 말은 무시하셔도 됩니다. 얼마 못 가 퇴역할 노망난 노병일 뿐입니다.”




막덕은 그의 술을 잔에 받으며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노병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노병! 이리 와보거라.”




위병장은 조금 긴장한 듯 손사래를 치려 했으나 감히 세자를 만류할 수는 없었다. 노병은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듯한 얼굴로 세자를 향해 다가왔다. 세자는 몸을 뒤로 젖혀 팔로 기댄 후 노병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자네가 보기엔 내가 훗날 왕이 되긴 그른 모양인가 보군?”




노병은 세자의 말에 그 자리에서 황급히 절을 올리며 말했다. 




“주… 죽여주시옵소서 저하!”




막덕은 위병장이 따라준 술을 입에 가져가 잔을 비운 후 손에 들려 있는 잔을 보며 말했다.




“죽을죄를 지었다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거겠지?”




노병은 어느새 온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막덕은 곁눈질로 노병을 보더니 말했다.




“허리를 들어 날 보라.”




노병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막덕은 미소 지으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막덕은 노병에게 술잔을 건네며 말했다. 




“죽을죄는 무슨… 그대 말이 옳다. 술 한잔 받으시게.”




노병은 상황 파악을 뒤늦게 하고 그의 술잔을 받아 고개를 숙이며 술잔을 올렸다. 하지만 술은 술잔에 따라지지 않고 노병의 머리 위에 부어졌다. 막덕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어이쿠. 이 내가 그릇이 안 되어 술잔도 제대로 조준하지 못했다. 미안하다.”




위병장은 이 상황에 놀라 어찌할 줄 모르다가 세자의 웃음에 장단을 맞추기 위해 따라 웃었다. 그렇게 술 한 병이 노병의 머리 위로 다 부어지자 막덕은 일어나며 뒤의 호위병들에게 말했다.




“그만 들어가자. 흥이 다 깨져 버렸다.”




그는 일어나며 위병장에게 말했다.




“너희는 오늘 걱정 말고 들어가 쉬도록 해라. 달이 밝으니 누가 함부로 들락날락 거릴 일은 없을 것이다. 술에 취한 채로 궁을 지킬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위병장은 절을 올리며 그 말을 받들겠다고 하고, 막덕이 말에 올라타는 사이 모두에게 노병을 데리고 전부 정리하라 손짓 했다. 막덕은 말에 올라타며 생각했다.




‘이제… 자고 일어나면 난리가 나 있으려나…’




그 생각과 함께 미소가 또 맴돌았다. 




‘기대되느라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을지…’




그는 그렇게 두 호위병과 함께 자기 침소로 향했다.




그가 침소로 한창 가던 도중, 저 멀리서 급하게 말을 타고 다가오는 누군가가 있었다. 진당이었다. 진당은 그에게 말을 달려와 황급히 외쳤다.




“세자저하! 어서 피하셔야 하옵니다!”




막덕은 술에 취해 꼬인 혀로 그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오? 이 시간에 어인 일이십니까?”




진당은 그의 팔뚝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가는 길에 설명해 드리겠…”




말이 끝나기도 이전에, 막덕의 옆에 서 있던 두 호위병 중 하나가 무언가 날아오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등 뒤에 꽂힌 화살은 검은 깃을 띠고 있었고, 멀리서 한쪽 눈을 가린 운강이 부하 셋과 함께 나타났다. 운강은 활을 손에 쥔 채 말했다.




“죽여라.”




그의 말과 함께 세 부하가 막덕을 향해 달려들었고, 그들에게 창을 들고 달려든 막덕의 호위병은 두 합만에 배에 칼이 찔려 쓰러졌다. 막덕은 놀라서 그 자리에서 낙마했고, 진당은 바람을 불러일으켜 세 흑막병을 자빠뜨린 후 막덕에게 말했다.




“어서 말에 올라타십시오!”




진당과 함께 말에 올라탄 막덕은 진당의 허리를 부여감고 눈을 감았다. 진당은 거칠게 말을 몰아 궁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어떤 동물의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 이후에는 양옆으로 흑막병들도 붙었다. 말을 타고 쫓아오는 흑막병들은 진당이 보기에는 대략 열 명 남짓이었으나,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막덕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진당에게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진당은 산길로 말을 몰며 말했다.




“지금 세자를 시해하기 위해 많은 자들이 세자를 쫓고 있습니다!”




진당의 말은 어느새 산길에 접어들어 다듬어지지 않은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막덕은 여전히 눈을 질끈 감은 채 진당에게 외쳤다.




“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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