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사는 맛 레시피

by 달삣


"와 물이 콸콸 시원하게 나온다"


천구백육칠십 년대에는 수돗물보다 우물이나 펌프 물을 생활수로 많이 썼다.


우물가와 펌프가 있는 곳은 어린아이들이 놀던 놀이터이기도 했다. 여름이면 바가지에 물 뿌리며 놀면 펌프 물이 옷을 흠뻑 적셨었다.


가뭄이나 겨울에 물이 안 나오면 물한 바가지를 넣어서 펌프의 힘이 없어서 못 올라오는 물을 끌어올려서 사용했다.


엄마의 명으로 모인 아이들은 한 명이 안되면 둘씩 셋씩 힘을 모아서 펌프질을 했던 게 생각이 난다.


어린 그때는 놀이처럼 펌프질 하는 게 재밌었고 마침내 물이 나오면 마치 영화 자이언트의 제임스 딘이 유전이 터진 걸 보고 좋아하듯 환호했다.


"와 짝짝짝 물이다 물"


그런데 요즘 마중물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뉴스를 보고 느낀다.


코로나로 힘든 국민들 장사 안 되는 소상공인 긴급지원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 특히 청년들에게 더욱 마중물이 절실하다고 느껴진다


몸이 커 버려 더 이상 부모에게 의탁해서 살아갈 수 없는 20세 이상의 성인들은 정말 많고 가난하다. 물론 부모의 덕으로 사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부모 없는 고아도 고아원을 나와야 하고 부모 있는 자식들도 빤한 집안 사정이 보이고 본능적으로 홀로 서야 하는 걸 안다. 처음 발걸음의 세상은 만만치가 않다.


이럴 때 마중물 한 바가지로 펌프 물을 끌어올리듯 청년들에게 힘을 줘야 한다. 혹자는 도와주면 의타심 생긴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작은 마중물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누구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안다.

너무 밑바닥까지 물이 말라 버린 사람들은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이 무기력 해지고 우울증에 걸려버린다.


나도 20 대 초반에는 가난했다. 가난한 부모님은 지방에서 나는 서울에서 학비와 쌀 김치 정도만 조달받았고 나머지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는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아르바이트래야 학교 앞 레스토랑 서빙 설거지 정도이고 장사라 봐야 졸업식장 쫓아다니며 꽃장사 여름에는 모자 장사였지만 이익을 남기지는 못했다.


친구와 모자 하나도 못 팔은 장사 끝내고 어스름한 저녁에 구로시장 쪽 거리를 터덜터덜 걷는데 숯불 돼지고기 식당 안에서 "유머 1번지 잘 될 턱이 있나 "보며 소주와 돼지갈비를 뜯는 사람들이 깔깔깔 웃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 그 유머 1번지를 보고 웃지 못했다.


"저게 웃기나 사람들은 뭐가 그리 재밌을까"했고 친구는 "돼지갈비 냄새 죽인다 언제나 돼지갈비 실컷 먹어보나"했다


지금 내 호주머니는 돼지갈비쯤이야 언제나 먹을 수 있고 그 친구도 성공해서 돼지갈비는 매일매일 먹어도 될 만큼의 돈도 벌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는 나는 우울증에 걸려있었던 것 같다. 이병에 걸리면 만사가 귀찮고 무감동 무표정이 된다. 유머도 맘에 여유가 있을 때 받는듯하다.


그때 주위에서 적은 금액이라도 받은 용돈이나 음식 대접은 나에게는 마중물이었다. 지금은 예능 보고도 깔깔 웃고 웃을 일이 예전보다 많으니 적어도 우울증은 벗어난 것 같다.


요즘 나라에서 청년들에게 지원해주는 여러 가지 제도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손끝이 파리하게 차디찬 블루 시대 청년들이 죽어나가는 이유 중에 하나는 경제적 이유가 많다고 생각이 든다.


꼭 돈이 아니더라도 "잘될 거야 파이팅"하고 진심 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 미소 표정도 마중물 역할을 충분히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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