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날이라고 직장 다니는 아들이 빨간 카네이션을 두 송이 들고 들어왔다.
저도 쑥스러웠는지
"어릴 적 생각도 나고 지나가는데 빨간 카네이션이 예쁘더라고요"
하는데 감동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어버이날 내 부모님에게는 나이 들어서는 음식을 사드리거나 용돈만 드렸지 꽃은 드린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친정엄마는 "꽃보다 돈이 좋다 " 했기 때문인데 오늘 아들에게 꽃을 받아보니 용돈만 받는 것과는 다른 기쁨이 있었다.
엄마에게는 어릴 적에 종이 카네이션을 주기도 했지만 아버지에게는 그조차 하질 않았다.
어릴 적에 말없는 아버지는 다가갈 수 없는 사람 같았기 때문이고 꽃 같은 것은 좋아하지도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휘경동 삼육병원에 한 달 입원해 있으면서 패랭이꽃이 보고 싶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어머니 친할머니 산소는 경북 후포 바닷가 해변 근처 산에 있다.
묘 옆에는 패랭이꽃이 6~8 월에는 늘 피어있었고 새가 날아가며 오래된 비석에 새똥을 싸고 날아가기도 했다며 아버지는 친할머니를 그리워했다.
패랭이꽃을 생각하면 친할머니가 늘 생각이 난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가족과 연락을 끊고 살았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작은 아버지로부터 아버지가 삼육 병원에서 위독하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때부터 아버지와의 부재중 관계를 메워 나가기 위해 형제들은 매일매일 병원을 찾았다.
병원 의사가 아버님이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장례준비를 하라고 말할 정도로 간의 병이 심각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컨디션이 좋아지셔서 병원 복도를 운동하시며 보신탕이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청량리 시장 가서 보신탕 한 그릇 사 오라고 했는데 그때는 그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었다.
"냄비 가지고 가서 후딱 한 그릇 사온나"
"아버지 간 건강에 안 좋아요"
병원에서도 금지하는 음식이고
'하고 많은 음식 중에 보신탕이람'
하는 생각도 들고 외부 음식은 금지였기 때문에 사 드리질 못했다. 돌아 가신지 한참 됐지만 그것이 내내 걸린다.
보신탕 그것이 아버지의 살아생전 드시고 싶은 마지막 밥이란 걸 요즘 나문희가 나온 '감쪽같은 그녀' 영화를 통해 알았다.
저승 밥이란 기력을 못 찾던 환자가 갑자기 먹고 싶던 음식을 찾는 거라는데 저승길 가는데 힘들지 않으려고 먹는 밥이라고 한다.
영화 끝부분에 치매 걸린 나문희가 마지막으로 손녀에게 준다고 음식을 바리바리 해놓고는 정신을 잃고 그 밥을 다 먹고는 " 내가 미친 나 저승 밥을 처먹니 말이다" 하고 울부짖는다.
사람마다 생에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음식이 뭘까 하고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친할머니를 병원에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내내 그리워하셨다. 패랭이꽃이 피어있는 할머니 산소에 가고 싶다고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훔치셨다.
울 아들이 나에게 카네이션을 주고 내가 엄마에게 용돈 주고 맛있는 음식 사주듯 자식은 늘 부모를 신경 쓴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를 아버지도 아버지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게 자연의 이치 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