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표로 날린 약속들(당신 얼굴 앞에서)

봄날의 산책길에서 만난영화

by 달삣

'휘리릭 휘리릭 툭 '


가을이 되니 거리에 낙엽이 하나둘씩 떨어지는 게 마치

공수표로 날린 약속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철석같이 한 약속들이 더 무너지는 일들이 많았다. 미국으로 이민 간 젊을 때 친구 편지 내용 중에 '영원히 변치 말자'의 문구는 몇 번의 서신 왕래로 뜸해지며 연락이 끊어진 사이가 되고


"언제 밥 한번 먹자"던 부자 사촌은 병원에서 암으로 사경을 헤맨다.


" 한번 유럽여행 같이 가자"며 계붓자던 여교 동창 친구는 사소한 오해로 연락이 끊어졌다.


지키지 못한 막연하게 했던 약속들이 떠오른다.


왜 사람들은 그런 지키지 못하는 약속들을 하며 살아갈까 하는 의문이 생겼는데

때마침 재밌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홍상수 감독의'당신 얼굴 앞에서'라는 영화이다.


동시대를 사는 이혜영 배우의 연기력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게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감상평은 각자 다를 테지만 공수표로 날린 무수한 약속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극 중에 상옥 역인 배우 이혜영은 암환자로 6개월뿐이 못 사는 왕년의 배우로 나온다.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사실에 하루하루를 살아 있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연락을 끊고 산 하남 강변 아파트에 사는 여동생 집에 머문다.


상옥은 여동생과의 강가 공원 산책 중 왕년의 배우임을 알아차린 사람도 있어서 좋아하는데 한 감독으로부터 영화 출연 제의를 논의 하자는 전화를 받는다.


죽음을 앞둔 이에게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소중할 것이다.


조카에게 작은 가죽지갑 선물을 받는 것도 감동해서 몇 번씩 풀어서 들여다보며 감사하고 어릴 적 살던 집에 찾아가서 그 집에 사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감사한다.


드디어 인사동 '카페 소설'에 가서 감독을 만나고 낮술을 먹고 영화 출연 제의를 받는다.


그러나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상옥은 감독 권해효에게 자신이 암에 걸려서 시간이 없어서 영화를 같이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제가 시간이 없어요 앞으로 몇 달 안 남았어요"


권해효는 놀라며"세상 x 같죠"하며 안타까움에 빼갈을 들이마신다.


상옥이 잘 치지 못하는 기타를 치자 비가 더욱 세차게 내리지만 세상 훈훈한 분위기다.


술이 들어가서 일까 감독 권해효는 "내일 당장 양양으로 가서 단편 영화 찍죠"하니 이혜영도 그러자 하고 수락을 한다.


비가 내리는 인사동 골목 씬이 아름 다웠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상옥은 소파에서 자다가 한통의 문자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어제 만난 감독입니다. 어제의 제안은 이행할 수가 없습니다."


상옥은 여기서 웃음을 크게 터트린다. 정말 하악 거리며 웃는다. 영화의 백미인 것 같다.


어제는 세상 진심 인척 하며 약속한 일이 하루아침에 공수표가 된 것이다.


그러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죽음을 앞에 둔 사람에게 위로라고 했던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니

하지만 상옥은 그것도 호탕한 웃음으로 받아들인다.


상옥의 대사가 인상 깊다.


"얼굴 앞에 천국이 있고 다 온갖 더러운 얼굴들도 예뻐요"

'삶의 끝에서 느끼는 살아있음의 감사함을 죽어서 거울이 아닌 내 얼굴을 바라볼 때까지 '

여기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질타가 아니다. 사람들은 원래 그러니까 그래야 편해지니까


약속 중에 영원히 함께 하자고 한 말이 재밌을 뿐이다. 영원하자고 말한 것 치고 오래가는 걸 별로 보지 못했다.


세상은 변하고 한번 연이 끊어지면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것이 인생인 것을 그냥 지키지 못한 약속들은


'너에게 행운을 빈다'정도의 바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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