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출출히 오는데 오이지가 또 낮술을 부르누나'
엄마 오이지를 받으러 친정집에 갔다 왔다.
요즘은 유튜브만 봐도 오이지 쉽게 담그는 방법이 많아서 물 없이 설탕 소금 식초로 만든 오이지가 김치 냉장고에 있긴 있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소금물에 끓여서 식혀 붓고 무거운 누름돌로 눌러 그늘진 구석에서 숙성시킨 엄마표 오이지는 따라갈 수가 없다.
아침에 엄마에게 보름간 숙성시킨 오이지를 오픈한다고 가져가라는 전화를 받고 뛸 듯이 친정 집으로 갔다.
처음 항아리에서 개봉한 오이지를 엄마가 손으로 쭉 찢으니 속이 텅 비어있었다.
하도 무거운 누름돌로 눌러놔서 그런지 수분기를 뺀 오이지는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쪼그라진 젖처럼 비틀어져있었다.
가끔 더운 여름날에 할머니는 한복 속치마만 입으시고 웃통을 벗고 담배를 물고는 하셨는데 그 모습이 어릴 적에 외할머니의 쪼글쪼글 한 모습으로 각인이 돼있었다.
아니 엄마들의 말라버린 눈물이 생각이 났다.
새끼들을 위해 내줬던 속 썩음으로 텅 빈 엄마 가슴이 생각이 났다. 엄마가 준 것이 어디 어릴 적에 준 젖뿐이겠는가. 사랑과 정성이 깆든 옛일들이 주마등 같이 지나간다.
어릴 적에는 감기로 열이 펄펄 끓을 때 엄마에게 병간호받던 일, 국민학교 때는 뭘 잘못했는지 매 때리고 남몰래 일 속상해하시던 일, 졸업식, 결혼식, 입덧할 때 갈치조림 의 엄마의 요리 등등이다.
자식이 많으면 걱정도 많다더니 엄마가 건너온 인생에는 자식걱정으로 가슴이 텅 빈 속이 된 것 같다. 엄지 척 보다 비뚠 약지가 맘에 걸리듯 몸과 맘이 아픈 자식들 때문에 쏙을썪어서 속이 물렀을 것만 같다.
철이 없을 때는 남들처럼 양육받지 못한 것에 원망도 했었다. 비 오는 날 우산 갖고 학교에 한 번도 오지 않은 일, 등록금을 제때 주지 않은 일, 도시락반찬이 화려하지 못했던 것, 밤잠 깨워 연탄불 갈게 한일, 동생들 건사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육십이 가까워지고 엄마의 나이를 지나치니 다 이해가 된다. 지나온시절을 엄마와 곱지 못한 세월을 함께 건너왔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무쪼록 주룩주룩 내리는 장대비야
네가 대신 울어주려무나"
비가 오니 감정이 속이 텅 빈 오이지 하나로 멜랑꼴리 해졌다.
'그나저나 짭짤한 오이지는 맥주와도 꽤 괜쟎네'.
오이지 국물은 늘 눈물맛처럼 짭조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