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층간소음가해자였다 4 (완결)

by 심효진


관심은 서울을 넘어서 경기도의 타운하우스까지도 뻗어갔다.

남편의 회사에서 30분가량 떨어진 곳에는 각종 타운하우스 단지가 즐비했다.

밤마다 누워서 경기도 곳곳으로 랜선 부동산 투어를 하고 있노라면

행복은 층간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저 곳에 있을 것만 같았다.


어떤 날은 실제로 보러 간 날도 있었다.

총 세 집을 둘러보았는데

첫번째 집은 총 4층으로 이루어진 독채였다.

아이들은 계단이 많은 그 집이 너무 좋아 당장 이 집으로 결정하자며 난리였지만

나는 4층에 있고 1층에 있는 아이들을 불러 제끼며 위아래를 뛰어다닐 생각을 하니 이 집은 도저히 무리였다.

두번째로 본 집은 부엌이 엄청나게 컸다는 기억은 있지만 그 외에 마음에 딱히 남는 것은 없었다.


가장 마음이 흔들렸던 건 세번째 집이었는데 지난 밤 랜선 부동산 투어에서 사진이 가장 인상적이었던터라 그 집을 보러 이 동네에 온 김에 앞에 두 집을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골프장에 둘러싸인 탁 트인 전망에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과하지 않은 복층구조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부동산에 들려보니 이미 사진 속의 호수는 모두 다른 사람이 살고 있고 비어 있는 집은 2층 한 채 뿐이었다. 인테리어에 손 댈 것 하나 없는 상태가 마음에 들어 강하게 흔들렸지만 결국엔 1층이 아니라는 사실이 선뜻 매매를 결정하기 어려웠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집 알아보기에 지쳤을 때 애들을 재우고 부엌으로 걸어가는데 내 걸음에 맞춰 5층에서 천장을 쳤다. 고무망치라도 하나 구비한 건지 언젠가부터 천장을 그렇게 쳐대던 터였다. 그 날은 너무 약이 올라 두 발로 쾅쾅쾅 뛰었다. 역시나 리듬을 맞춰 쾅쾅쾅 천장을 쳐댔다. 있는 힘껏 쾅쾅쾅쾅 뛰자 다시 한 번 쾅쾅쾅쾅 쳐댔다. 우당탕탕탕탕 치고 그대로 주저 앉아버렸다. 우당탕탕탕탕 화답이 돌아왔다.


이 지옥에서 빠져나가고 싶다.



며칠 뒤,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네이버 부동산에 혹시나 해서 한 번 봤는데
회사 옆 아파트에 1층 매물이 나왔어.
개인정원세대래.
내가 내일 점심시간에 한 번 가보려고.


개.인.정.워어어어언..?!!


남편의 문자를 받자마자 무언가 느낌이 뽝 왔다.


내일 나도 갈게!!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을 서둘러 원에 보내고 조수석에 몸을 싣고 회사에 함께 출근했다.


남편이 일하는 동안 점심시간까지 부지런히 동네를 임장해볼 생각으로 왔건만 비가 부슬부슬내리는 7월 한여름의 날씨에 도저히 걸어서 임장은 무리였다. 다른 곳 둘러보는 건 포기하고 스타벅스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점심시간에 말했던 아파트로 함께 향했다. 왠지 지금 향하는 이 집이 나의 종착지이기를 바라며.



대단지 고층 아파트의 1층 세대만 개인정원이 딸린 구조였다. 개인정원 세대가 몇 집 안되다 보니 매물로 자주 나오지 않는 편이었는데 그 날 마침 두 집이 동시에 나왔다고 했다. 거실과 부엌이 바라보고 있고 양쪽으로 창이 크게 나있어 맞바람이 치는 구조에 개인정원도 20평으로 꽤나 넓직했다. 흔히 말하는 초품아에 남편 회사까지 도보 10분! 지금까지 본 집 중 가장 완벽한 조건이었다.


이 집이다.



바로 계약금을 쏘자고 했지만 평소 신중한 편인 남편은 이런 중대한 결정을 이렇게 순식간에 해도 되는 거냐며 망설였지만 때로는 엄청난 결정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법이다. 사실 나는 오래 전부터 지금 이 집을 찾기 위해 기다려 왔다. 그 날 오후 정말 계약금을 쐈고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일단 건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상가에 부동산부터 들려 일주일 안에 집을 팔아달라고 했다.

맞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내놓지도 않은 채로 덜컥 이사갈 집 가계약부터 한 무모한 사람이 나였다.

그 날부터 하루에도 대여섯가량의 사람들이 집을 보러왔고 다행히 내가 살던 집이 많이들 선호하던 동과 타입이었기에 일주일 안에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층간소음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었지만 맞벌이에 외동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했다.


그 후에 여러가지 세금 문제, 인테리어 등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당시에는 하나하나 신경쓸게 너무 많아 이사 다시는 못하겠다며 혀를 내둘렀지만 이사한지 1년반이 되어가는 지금 그 모든 기억은 후루룩 지나가버린 뭉텅어리가 되어버렸다.

평생 살 것같던 두달반여의 혼을 담은 인테리어를 끝내고 한겨울이 되어서야 지금 집에 이사들어왔다. 매트 따위 모두 중고로 처분해버렸고 이제는 제발 속편하게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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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한달 후 코로나19가 터져 집에 갇혀야했지만 역병 따위 그 전 가해자 시절에 비하면 견딜만했다.

오히려 그 집에 갇힌 채 코로나가 터졌다면 아마 독자들은 나를 글이 아닌 TV에서 봤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 어려워지며 층간소음으로 인한 다툼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오늘 도저히 못참겠다며 아랫집에 가 난동을 피운 일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이런 뉴스의 주인공으로 보도되지 않았을까.


현재 나는 층간소음가해자에서 탈출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비록 여름에 집 안에 한 번, 정원에 세 번 물이 차올랐지만 나는 쓰레받기로 집 안에 차오른 물을 퍼내고 폭우 속에서 양수기를 곧추세우며 남편에게 속삭였었다.




나는 그래도 1층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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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층간소음가해자 탈출기를 4편으로 마무리지었습니다.


독자님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하네요.


누군가에겐 나의 의지와 노력과 상관없이 가해자 취급을 당하는 삶은 정말 괴롭더군요.


거실에 물이 차오르고, 정원 물을 양수기로 퍼냈던 이야기는 조만간 번외편으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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